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전 열한시 Jul 26. 2022

내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큰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내고 부모인 내가 첫 번째로 걱정했던 것은 누군가가 내 아이를 괴롭히지 않을까? 였다. tv뉴스나 인터넷 기사로 쉽게 마주하는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걱정거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들 둘 엄마에겐 더더욱 그랬다.

원만한 교우관계는 학교생활에 있어 학업만큼이나 중요하다. 공부에 집중하려면 정서적인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큼 부모를 안심되게 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아이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반 친구가 없는지를 살폈다. 하지만 후에 나는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초등 2학년 체육대회 날이었다.

반 대항으로 공 굴리기를 하였는데 아이들은 승부욕에 불타올라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친구의 실수로 결국 지고 말았는데 아이들이 그 친구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또래보다 조금 느린 아이였다.

나는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는데 후에 반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다수가 한 아이에게 행하는 폭력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는 그 친구가 답답하다고 했다. 그 친구 때문에 조별 활동에 지장이 생겨서 반 아이들이 모두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 친구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눈망울이었다. 너무도 말갛고 당당해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차 싶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무엇인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 눈에는 착하디 착하고 어린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쁘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걸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이해의 폭이 좁다. 자기와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긴 대화를 했고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싶은 단 한 가지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 친구 집에 아이와 함께 갔다. 약속을 잡던날 그 친구의 엄마가 너무나도 기뻐해 주어서 나는 마음이 아렸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는 그 친구와 오랜 시간 레고를 만들며 함께 놀았다.

그리고 돌아와 그 아이가 그 집에서, 그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나와 다르다고 느리다고 해서 누구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아이에게 티끌 같은 상처가 생기면 엄마는 태산 같은 아픔을 느낀다. 우리는 누구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 함부로 상처 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세상의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존엄성의 부재에서 온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는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더 슬플까

아이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 더 슬플까


어쩌면 후자가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전자의 슬픔은 주변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후자의 잘못된 인성을 바로잡는 일은 더없이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때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그 후로 나는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아이의 마음이 언제나 건강하길 바란다.

선한 마음밭에서 행복의 씨앗은 자라난다.

오전의 인스타그램

오전의 살림 탐구


매거진의 이전글 고3, 사교육비가 0원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