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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Apr 06. 2024

봄날의 자전거

올봄 들어 처음으로 주말에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딱 이맘때쯤, 벚꽃이 날리면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자전거를 탄다.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꽃잎이 서글프게 떨어지는 걸 바라보며 달리면 처음엔 행복했다가 나중엔 조금 슬퍼진다. 너무 아름다운 때를 마주하면 곧잘 슬퍼지는 감정을 느끼는데 언젠가는 이 아름다움을 더는 못 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순간 스치지 때문이다.

오십도 되지 않은 내가 벌써 노인 같은 생각을 하나 싶지만 언젠가부터 그랬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컸고 부모님은 내 아이들이 크는 동안 하루만큼 멀어졌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울리는 전화벨에 가슴이 철렁한다. 아빠가  두 번의 앰뷸런스를 타신 후였다.

두 번의 입원과 한 번의 수술, 두 번의 퇴원이었지만 오래도록 남아 나를 불안하게 했다.

아무것도 나는 붙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붙잡고 싶은 것일수록 모래알갱이처럼 더 잘 빠져나간다는 걸 살아갈수록 느꼈다.

아무 일 없는 것, 무탈의 감사함을 아는 나이가 된 건 쓸쓸하지만 일상에 흩어진 소중함들을 놓치지 않을 만큼 깊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저 꽃이 피고 지는 걸 마음 아프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었다.


아빠는 자전거를 잘 타셨다.

연년생인 동생을 엄마가 돌보고 있으면 어린 나를 자전거 안장에 앉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사실 내가 그걸 기억하는지 앨범 속 사진을 보며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 건지 헷갈리지만 아빠의 기억 속에 아빠는 가끔씩 페달을 밟으며 어린 나와 함께하고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몇 달 전에 친정집에 실내용 자전거가 들어왔다.

더운 날 추운 날 산책이 불가능한 날의 다리 운동을 위한 운동기구다.

아빠가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

을까? 다리가 가늘어지고 지팡이를 짚는 지금의 아빠는 자전거를 잊으셨을까? 잊으실 수 있으실까?

길에서 자전거를 마주하면 아빠는 어떤 기분이 될까?

나 역시 언젠가 더는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람이 나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그 기분을

햇살이 어른거리며 다가왔다 사라지는 그 느낌을 더는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는 이 일상을 마주할 수 없는 노년의 시간이 나에게도 분명 온다.

이상은의 노래가사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날들이 그렇듯 언젠가는 오늘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오늘을 행복했노라고 기억할 테지….

내가 오늘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의 절정이다.


꽃이 다 지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더 멀리까지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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