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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Feb 24. 2021

원격근무와 생산성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탐구생활'이라는 것을 받아왔다. 그리고 방학을 맞이하면 항상 <방학 생활 계획표>를 완성했다. 아침 9시 기상, 식사, 놀이 등으로 시작하여 저녁 10시에 꿈나라로 표시되는 하루의 일과를 적어 놓은 일과표.


작년 초 미국 연구년 중에 코로나가 터지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다. 미국 초등학교도 온라인 수업이 처음이라 우왕좌왕했다. zoom을 이용한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1시간 동안 진행하였다. 수업 대신 선생님들은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다양한 옵션(읽기, 쓰기, 수학, 과학, 체육 등등)을 제시해주었다.


집 안에만 갇혀있는 아이들이 공부해야 할 과목들을 스스로 하게 하기 위해서 처음 생각해 낸 방법은 <일일 생활 계획표>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계획을 세웠다. 아침 기상부터 꿈나라까지. 그런데 그것이 잘 지켜졌을까? 신경전이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간표를 들이밀며 공부할 시간이라 알려주고, 잠잘 시간이라 알려주고, 밥 먹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시간표를 관리하는 부모도, 아이들도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일일 할 일 목록이었다. 아래 그림처럼 해야 할 일들 (심지어 동영상 시청까지)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 중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6개 선택해서 잠들기 전까지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완수한 내용은 "별"표로 표시했다.


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목록을 일찍 끝내고 자유시간을 갖는다. 아들은 공부할 마음이 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우선 아침에 실컷 놀고 나서, 공부할 마음이 들 때에 임무를 완수한다. 이렇게 시스템을 바꾸어 놓으니 관리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내가 할 일은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목록을 출력하여 벽에 붙여놓는 것, 필요한 웹사이트나 자료들 찾아주는 것 정도였다.


요즘 코로나로 원격근무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생각보다 일이 잘 되네"이다. 작년에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새로운 조직관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네이버'의 발표를 들었다. 네이버는 처음에 코로나와 원격근무로 분주했지만, 적응되고 나니 생산성이 잘 유지되더란다. 마찬가지로, 유럽 지역 9천 명의 직원들과 관리자들을 조사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도 85%는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더러 올랐다는 조사를 보여준다.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감시하지 못한다. 출퇴근도 관리하지 못한다. 생산성의 하락을 우려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업무는 잘 돌아간다.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지기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는 생소하지만 사실 '원격근무'는 과거에도 많이 있어왔고 이에 따라 연구도 많이 진행되어왔다. 논문을 찾아보니 직원들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인식된 자율성"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업무 처리 방식을 결정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 그것이 생산성을 높인다.  


원격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설문 조사해보니 그들에게는 '인식된 자율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원격근무가 생산성을 높인다기보다는, 원격근무를 통해서 오는 '자율성'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9시에 출근해서 (야근하지 않는다면) 6시에 퇴근하는 일일 생활계획표 안에서 4시간 걸리는 일도 집에서 (혹은 커피숍에서) 1시간이면 완료해보지 않았는가? 자아를 잊어버리고 머릿속의 뇌가 온전이 업무 처리에 집중되는 몰입은 자율성에서 온다.


원격근무가 좋으냐, 회사 출근이 좋으냐에 대한 논의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 아닐까: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 자율성을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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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기업은 생산성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 생산성과 더불어,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해보는 혁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생산성과 혁신. 원격근무는 기업의 혁신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직까지 혁신 측면에서 원격근무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네이버에서도 코로나 이후 자신의 조직을 진단했을 때 어려웠던 것은 "신규 과제와 프로젝트의 생성"이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조사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원격근무가 혁신성을 낮춘다고 보고한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가 기업들에게 생산성을 낮추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기업들이 아직까지 버틸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기업의 혁신성에는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이를 어찌 해결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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