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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Jun 07. 2023

지호 엄마, 이제 육아책은 그만 읽어요~

일상의 소중함


"지호 엄마, 이제 육아책은 그만 읽어요~ 육아책 말고 심리학책, 철학책, 자기 계발서, 요런 마음 다스리는 책 읽고 지호 엄마 마음, 감정부터 들여다봅시다. 지호 엄마 마음이 편해야 아이들 마음도 편해지고 다 좋아져요~ 내일 저랑 도서관가요~ 책 추천해 줄게요."


저녁 먹고 소화시킬 겸 산책 겸 아이들과 아파트 놀이터로 나가 놀다가 우연히 만난 지호 엄마한테 나도 모르게 한 말이었다.




요즘 지호 엄마하고는 거의 매일 보는 사이다.

몰랐는데 공통점이 많다 보니 급속도로 친해졌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빠른 년생이지만 나이는 나랑 동갑이고,

큰 아이 지호랑 우리 첫째랑 같은 반이고,

지호 동생은 우리 둘째랑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


그리고 걷는 걸 좋아하는 것도 같아서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애들 등교시키고 나서 거의 매일 같이 걷는다. 마트까지 걸어갔다가 아이쇼핑만 하고 다시 집으로 걸어온다. 그리고 아주 쿨하게 헤어진다. 어쩌다 한 번씩은 같이 밖에서 점심 사 먹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각자 해결한다.


나는 이런 관계가 딱 좋다. 쿨한 사이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지호엄마와 나 사이가 그렇다.


지호엄마를 알게 된 지는 몇 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이상하게 지호 엄마는 만나도 안 어색하고 아주 오래된 인연처럼 편하고 좋다. 매일 보지만 만나면 반갑고 얼굴 보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랑 스타일이 비슷해서인 것 같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난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지호 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난 커피를 마시더라도 스타벅스보단 다방 또는 메가커피를 사 먹는 걸 좋아하고,

과일, 채소, 식품류를 사더라도 코스트코, 이마트트레이더스보단 동네 하나로 마트 로컬푸드매장 또는 노상에서 파는 과일, 노브랜드에서 사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돈 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줌마들끼리 만나서 브런치 먹으며 수다 떠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줌마들끼리 n분의 1을 하더라도 일단 브런치 가격이 너무 비싸고, 또 남편과 아이들 없이 나 혼자 돈을 많이 쓰는 게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있는 이 소중한 내 자유시간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아줌마들과의 만남이 물론 즐겁긴 하지만 자주 만나는 건 기피한. 


이런 부분들이 나랑 상당히 비슷하다. 그래서 지호 엄마한테서 매일 같이 걷자고 연락이 와도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 사이에는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 너무나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이 있는, 그건 바로 그녀가 심각하게 부정적이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있을 때, 남편 얘기를 할 때 그녀의 표정은 늘 못마땅한 표정이다. 늘 한숨을 쉬고 어깨는 한껏 축 쳐져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불평, 불만과 양육에 대한 힘들다는 온통 부정적인 얘기들뿐이다.


대충 이런 식이다.


"남편이 너무 꼰대스타일이어서 자기는 밖에서 돈 버니까,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가 해야 된대요~

그리고 반찬이 자기 맘에 안 들면 이런 쓰레기 같은 걸 자기한테 준다며 화를 내요~ 애들하고 좀 놀아주라고 하면 우리 때는 부모가 놀아줬냐며 지들끼리 노는 거라고 한다니까요~ 자기가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며 돈 버는지 아냐며 버럭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같이 집에 있고 싶지가 않아요~

애들도 남편 체질 닮아서 허약하고 잘 먹지도 않고, 감기는 늘 달고 살고 자주 아프고, 휴~ 애들 키우기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마지막엔 꼭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지 않아요? 힘들지 않아요?"


그러면 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멈칫하게 된다.

왜냐하면 난 힘들지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면 본인 말에 공감 못해주는 얄미운 사람이 될 거고,

그렇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니 내 양심에 걸려 그렇게는 말 못 하겠고 "아휴.. 고생이 많네요."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이런 부분이 참 안타깝고 안쓰럽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감사한데 말이다.

이 소중한 찰나의 순간을 감사하며 살기에도 부족한데,

이 좋은 세상을, 삶을, 하루를 불평불만으로만 보내버리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지만,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며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있는 사이라,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건 주제넘은 행동일 것 같고 또 이전의 경험을 통해 부정적인 사람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겪어봤기에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정도로만 끝났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불쑥 속마음이 튀어나와 오지랖 넓게 행동하고야 말았다. 사실 오지랖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진심이었기 때문에...


아이들로 인해 알게 된 사이는 적어도 내 기준에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흘러가는 가벼운 얘기만 하고 속 깊은 나의 '진짜'얘기는 안 해왔고 안 했는데, 이상하게 지호 엄마한 만큼은 나의 진짜 얘기가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육아책은 이제 그만 읽으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과 양육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의 못마땅한 표정과 우리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있는 지호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저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예전에 어떤 얘기하다가 무슨 책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육아 관련 책 많이 보고 온라인으로도 육아 관련 강의를 많이 듣는다고 했기에 나온 말이었다.


육아책은 많이 읽을진 모르겠지만 엄마의 마음이 저리도 힘든데 육아책을 많이 읽고 강의도 많이 듣는다고 해서 과연 그녀에게나 그녀의 아이들에게 육아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호 엄마 마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한 말이었다.


그래도 혹시 내 말을 오해할 수도 있으니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하잖아요~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저절로 행복해진대요~

엄마가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남편도 행복하고 그렇게 되면 가정도 화목해진다잖아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면 나만 스트레스 쌓이고 힘들어지니까 나를 위해서, 온전히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내 마음 다스리는 그런 책 읽으며 마음공부합시다~ 남은 변화시킬 수 없으니 내가 변해야죠~"


심리학책이니 철학책이니 마음공부니 하는 나의 말에 지호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했지만, 그래도 내일 도서관 가자는 말에는 곧바로 동의했다. 


내일만큼은 내가 그녀에게 먼저 연락해서 같이 걷다가 도서관 가서 책 읽고 오자고 해야겠다. 덕분에 나도 오래간만에 마음공부도 하고 말이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내 진심이 그녀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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