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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온 May 05. 2020

어느날 특별송달 우편이 왔다

이혼소장이었다 

그와 내가 별거한 지 6개월째. 어쩌면 이렇게도 이상한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었는데. 겨우 겨우 살얼음판을 걷던 나를 또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 일어났다. 어쩌면... 우편함을 지날 때마다 섬칫했던 느낌은 이렇게 현실화됐다. 다만 우편함에 꽂혀있는 게 아니라 '본인 외 개봉 금지'라는 꼬릿말을 달고 내게 직접 건네졌다. 이상하게도 그 우편배달부는 꽤나 고압적이었는데. 알고보니 이런 특별송달만을 취급하는 법원의 행정직원이란다. 


첫 날은 우편물을 받지 않았다. 글쎄. 김민희와 바람난 홍상수의 본처가 우편을 받지 않고 이혼을 미루고 있다는 얘기를 카더라로 들었어서...? 그리고 마음이 좋지 않아서 주변 지인들에게 아는 변호사란 변호사는 다 소개받아서 내 사정을 얘기하고 이 우편물을 안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그럴 경우 남편 맘대로 모든 것이 진행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고, 그의 맘대로 재산을 나누고, 그와 법적으로도 남남이 되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했다. 


둘째 날 같은 시간에 온 집배원에게 우편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소장. 그걸 내가 평생 반려자라 생각했던 그에게 받을 줄이야. 감회가 남달랐다. 아. 사람이 이렇게 모질 수 있는건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걸까. 그가 변한걸까. 그 사실은 영영 알 수 없지만, 그 사실이 궁금할지라도 일단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만 했다. 나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맞고소를 해야할지. 아니면 더 좋은 묘수를 생각해 내든지. 


이 일을 겪으면서 가장 힘든 건 같은 말을 몇 번이고...어쩌면 스무 번 이상 반복하면서 내 상처가 어떻게 1번부터 100번까지 생겨났는지를 말해야 하는 거다. 의사는 그 중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물으면서 내 상처를 한 번 더 쑤시고. 다른 병원을 가게 되면 이 절차를 또 반복하고. 친구들에게 말할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다. 어떨 때엔 내 몸보다 더 큰 돌에 매달아져 강물로 가라앉아지는 것 같다. 


내 친구들은 남편이 비싸고 좋은 변호사를 썼을 거라고 했다. 아는 사람도 많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얼마든지 그럴 여지가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도 급을 맞춰야 할 거라고 잘 알아보라는 조언도 받았다. 일단 알아보니 우려와도 다르게. 큰 로펌에 일을 맡긴 건 아니었다. 그렇게도 유명한 로펌 아들을 안다고 자랑을 하더니만. 제 딴에도 부끄러운 줄은 아나보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아주 잠시동안의 위안이 될 뿐이었다. 


내 손엔 다양한 사람의 연락처가 들어왔다. 최근에 이부진 소송을 담당했다는 변호사. 여긴 큰 로펌이었다. 김주하 아나운서의 이혼을 담당했다는 변호사. 방송에 자주 출연한다는 B변호사. 친구 로스쿨 동기며 개업한지는 얼마 안 된 C변호사. 내 절친한 친구의 형부인 D변호사. 고대 법대를 나온 지인의 절친한 친구인 E변호사. 그 변호사 번호를 들고 고민하고 있는데 내 처지가 너무 웃겨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학창시절엔 좋은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고. 대학시절엔 좋은 과외학생을 받으려 소개받고. 결혼준비할 땐 플래너 번호를 소개받았고. 집을 구할 땐 부동산 연락처를 저장하면서 내가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사이가 삐그덕 거리며 소개받았던 부부상담사. 내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찾은 좋은 정신과 상담소. 그리고 이젠 하다하다 이혼소송전문 변호사까지.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인걸까. 내 친구 하나는 이런 모든 걸 할 줄 아는 게 어른이라면, 굳이 어른일 필요 없어도 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거 하나도 안 겪고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다고. 


이제와 안 사실이지만 이혼소송엔 이혼만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고했다. 이혼에서 중요한 건 누가 유책자인지. 재산형성에 얼마를 기여했고, 이를 기반으로 얼마씩 가져갈지가 전부인 '다소 단순한' 사건이기 때문이란다. 형사사건이라면 '전관예우 변호사'를 찾고 큰 로펌을 가야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사건은 그저 사무장이 형식적으로 상담하는 곳이 아닌 경험있는 변호사가 직접 발로 뛰는 곳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함께 알게됐다. 


평소의 나라면, 모든 걸 꼼꼼히 비교하고 서비스와 가격까지도 다 따져본 후에 결정을 내렸겠지만, 나는 너무나 많은 일로 지쳐있었다. 겨우겨우 살아가고있었는데, 남편이 나한테 또 한 번 돌을 던진 거다. 그래서 그저 두 명의 변호사와 전화 상담을 했고, 한 명의 변호사를 찾아가서 만나고, 그에게 대략적인 방향을 들은 후 그를 법적대리인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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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실이 내겐 너무 치부라 이야기하는 게 가끔은 너무 속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글을 쓰는 건, 문자 그대로 내가 너무 혹독히 이 시간을 지내고 있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말 못하고 있는 그 누군가, 나와 비슷할 일을 겪지 않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을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부부의 세계>를 드라마로만 보는 누군가는 절대 모를 사실들. 그저 협의이혼서 한 장으로 표현되는 드라마의 장면과 다르게. 부부의 연을 맺었다가 다시 그 끈을 풀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도 혹독하며, 연인과의 이별과는 그 감정선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불륜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치가 떨리고, 너무 분해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결혼을 했기에 나와 상대뿐 아니라 모두의 가족, 모두의 친구역시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동안의 시간이 무색하게 각자는 다 편을 고른다. 잘못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건 부부 중 누군가와 더 먼저 알고지냈으며, 누군가가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그리고 편을 한 번 고르면 그 편은 못바꾼다. 그 후 상대에 대한 욕만을 해댄다.


지금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건, 1. 앞으로 사람(연인이건 친구이건)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을까 2. 사람이 어디까지 못되질 수 있는가 이 두 개다. 이 두 명제가 나를 자꾸만 앞으로 못 나아가게 한다. 이 모든 게 끝나도. 결국 사람이 만나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못 믿으면, 도대체 내가 사회구성원으로써 뭘 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고 하면 내가 왜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나면 안되는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남편에게 먼저 본때를 보여보기로 했다. 그 동안 나를 무시하고 바람을 폈으며, 끝까지 바람핀 적 없다고 소장에 글자를 적은 남편에게. 세상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알려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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