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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온 May 06. 2020

연인간에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고 있나요?

그렇다면 누구와 연락하는지도 다 알고 있나요? 

그와 나 사이에는 핸드폰 비밀번호가 없었다. 서로 핸드폰을 보는 것 역시 금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믿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철저히 숨길 줄 아는 사람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다. 어느날 우연히 주말 아침에 내가 먼저 잠에서 깰 때, 그가 먼저 잠들었던 평일날 저녁에, 나는 그저 그가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의 핸드폰을 보곤 했다. 카카오톡. 문자. 전화. 그리고 스케쥴. 어떤 날은 이것 저것 다 읽어보고, 어떤 날은 그냥 곤히 잠에 든 그를 보기도 하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처음엔 아마도 전화였겠지. 전화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 시간도 함께. 같은 집에 사니까 잠결에 "나 다녀올게"라는 말을 하고. 원래는 늦게 출근한 이가 먼저 출근한 이에게 "출근 잘했어?" "오늘은 바빠?""내 스케쥴은 오늘 이럴 것 같아"라고. 이런 이야기들도 조금씩 적어졌다.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었어?" "오늘 저녁 약속 있어?" "오늘 외식할까?" 그런 이야기들도. 


전화가 줄고, 카톡이 줄었다. 그러다가 그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12시가 넘어도, 연락하지 않게 됐다. 연락해봤자 그는 "응. 금방 들어가." "응.이제 3차야. 곧 끝날거야." 이런 말만 되풀이했기에. 술을 진탕 먹고 온 날이면 그는 몸을 좀처럼 가누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가 닿는 대로 잠에 들었다. 처음엔 그런 그를 깨워서 거실에서 방으로 데려오고, 양복을 갈아입히곤 했는데, 그는 몸태질을 하며 짜증을 있는대로 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그를 그대로 두었다. 그가 거실에서 엎어져서 잠들면 그냥 이불 하나를 덮어줄 뿐. 


그저 결혼해서 사는 게 다 이런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불꽃이 튈 때 처럼 보기만 해도 설레고, 가슴이 콩닥일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젠 그저 가족으로서 안정적으로 서로 함께 삶을 영위해나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족끼리 자는 거 아냐. 그런 거 안 돼."란 농담이 진짜인 줄만 알았다. 우리 사이엔 아이가 없었는데, 이제와서 알고보니 남들은 우리가 난임커플 혹은 DINK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당연히 처음엔 나의 서운함을 남편에게 토로해본 적이 있다. 연락을 더 자주 하자.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게도 조금 이야기를 해 달라. 나는 당신의 일상이 궁금하다. 나도 당신이 내 일상을 좀 더 알고, 남보다 더 깊은 공감을 해주면 좋겠다. 남편은 어떤 날 공감했고, 어떤 날은 회사 일 안그래도 지긋지긋한데 당신한테까지 또 이야기해야하냐며 성질을 내기도 했고, 아예 내 말을 무시하고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적도 있었다. 나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니 나대로 맥이 빠지고, 서운하고, 속상해서 우리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텀은 점점 길어졌다. 1주, 2주, 한 달, 두 달, 석 달... 그러다 그냥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예를 들자면 내 취미를 만들어본다거나,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친구를 더 자주 만난다거나, 비행기표가 저렴하게 나오면 훌쩍 떠난다던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였다. 우리 사이의 실이 엉킨거라면, 도대체 언제부터였는가 하고 곰곰히 곱씹어봤다. 그건 마치 수학문제의 알고리즘 같았다. 작년 여름 언제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내가 더 챙겼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 전엔 무슨일이 있었지? 작년 봄에 여행갔을 때는 괜찮았었나? 그 재작년 겨울은?.......


결국 이 문제엔 답이 없었고, 그와 내 사이의 벌어지기만 했던 간극은 이제와 보니 '벌어져' 있던 거지,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니였다. 그저 남편의 외도로서 우리 사이가 '내 생각보다 실제로는 우주만큼 떨어져' 있었던 게 증명된 것 뿐이다. 드라마적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우연히 남편의 외도를 알게됐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밤을 무척이나 원망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우리의 끝맺음이 아름다웠을 것 같진 않다. 남편은 끝까지 외도 사실을 부인하며 우리가 잘 안맞는다며 이혼소장을 써달라고 종용했으니까. 더 바보같게 물러터지게 끝나버렸겠지. 


이 일이 벌어지고서야 알았다. 어른들의 씨가 있는 농담에 "세상엔 바람피고 걸린 남자와 안 걸린 남자" 두 종류의 남자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내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걸.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도를 하고, 그 외도의 이유는 진지하기도, 안 진지하기도 하다는 걸. '혼외자'라는 단어가 있을만큼 법적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지 않는 아이가 많다는 것도. 그리고 많은 커플들이 권태기에 한 번 쯤은 내가/상대가 바람을 필까? 바람을 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난 너무 순진무구했다. 남편이. 내가 선택하고 선택한 반려자가. 나를 이렇게 뒷통수칠 줄은. 그 날 밤까지 전혀 몰랐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끝난 것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종종 마음을 후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고, 많은 이야기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바람을 핀 게 한 번 이었는지. 성매매는 얼마나했는지. 그가 이제와서 모두 실토한다해도 나는 그 말의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가 없다. 그가 나와의 관계에서 모든 신의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소송을 하면서 날 가장 괴롭히는 건 '그래서 내 잘못은 어디까지인가' 이다. 박수도 손이 마주쳐야 짝! 한다는데. 내가 어떤걸 잘못해서 그가 그렇게 나를 등지게 되었는가. 그 고민이 자꾸만 나를 누르고 누른다. 그게 바람핀 배우자가 가장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기에, 그게 너무도 큰 좌절감을 준다. 보통의 경우에서 바람핀 배우자가 바람 안 핀 배우자보다 더 뻔뻔하고 더 잘 사는 듯? 보인다고 한다. 우리 역시 그렇다. 그는 아주 멀쩡히 사회생활을 계속하고있다. 나는... 겨우겨우 버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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