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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9. 2021

어쩌다 보니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2)

재취업이 금방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임신 7개월 차부터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그때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 친지 모두 한국에 있었고 모르는 중국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자니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하던 곳에서는 1년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한 3년 정도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계획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 회로를 너무 열심히 굴렸던 것 같다. 


세 돌 무렵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고 나는 그 즉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왜 내가 지원하면 나를 다 뽑아줄 것이라고 착각했을까. 물론 나의 무능력함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4년 넘는 공백 기간 동안 감도 많이 잃었고, 나는 영어도 잘 못하니까ㅠㅠ) 4시 반까지는 아이를 픽업 가야 하고, 집과 너무 멀리 있어서는 안 되고, 주말에는 일할 수 없고, 나에겐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너무 많았다. 


몇 번의 면접을 보면서 결국 내가 마음 편히 일하기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나를 백업해줄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나 둘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맞벌이로 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알게 되었다.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일주일은 유치원에 못 갈 텐데 그땐 어떻게 할지, 우리한테는 급할 때 아이를 잠깐 맡길 친정도 시댁도 없으니까 누군가는 언제나 백업 인력으로 있어야 한다. 일과 가정의 병립이라는 표현이 자주 보이는데, 과연 그런 게 나에게 애당초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결국 내가 일을 하려면 헬퍼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홍콩에선 상주하는 필리핀 국적의 가사 도우미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을 헬퍼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가 신생아인 시절에도 청소 도우미 아주머니 한번 부르지 않았던 고지식한 사람들이다. 낯선 이가 우리 집에 함께 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나의 구직 활동은 잠정적 중단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음에 생채기도 적지 않게 생겼다. 이제까지 난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 이런 허무함에 한동안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내 인생에 있어서는 내가 엄마로 잘 서 있어서 아이를 잘 가르치고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가치였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를 잃었으니 또 내가 얻게 되는 한 가지가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얻게 될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서 더 노력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또 언젠간 나에게도 이제까지 나의 배움과 노력의 시간들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기회들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종종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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