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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story by 역사 Apr 07. 2020

아바의 노래, 워털루! 그 속에 담긴 배신자 이야기

스웨덴 국왕이 된 나폴레옹 장군

국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비틀즈와 아바의 노래를 활용한 2차 창작이 활발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맘마미아.


지금의 비틀즈 급 인기만 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지만, 사실 아바는 그렇게 레전드 급(?)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명곡이 있지만,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곡은 달랑 1곡, 'dancing queen'.


https://youtu.be/xFrGuyw1V8s


물론 홈 그라운드인 유럽에서는 이미 슈퍼스타이었지만, 그만큼 미국의 벽이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스 역시 미국에 처음 진출하기 전, 그 흥행을 자신할 수 없었죠. 새삼스레 대단해 보이는 BTS와 Bong 


인기 한 철인 연예계에서 은퇴한 아바가 지금과 같은 불후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99년 4월 6일 초연한 뮤지컬 '맘마미아'. 아바 마지막 명곡 중 하나인 'The Winner takes It All'을 듣고 감명을 받은 후, 아바의 노래에 뭔가 특별한 것을 느꼈던 한 여성 프로듀서에 의해 뮤지컬이 시작되었습니다.


https://youtu.be/eVjUU993LHM


The Winner takes It All는 당시 부부이었던 비요른과 아니에타(모두 아바의 멤버)의 관계에 대해 쓴 것이라고 하죠. 특히 영화 맘마미아 해당 OST 부분(링크)을 보면 한층 더 그 감정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가사부터, "I don't wanna talk".. 


아마도 그 프로듀서 또한 꽤나 복잡한 감정이라 제대로 쀨을 받았는 듯.  


영화에서 지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와 아름다운 목소리 모두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흠이라면, 이런 분이 영화 '플로렌스'에서 역대 최악의 음치 역을 하는 모습에 잘 몰입이 안 된다는 정도?





지컬 초연 날짜인 4월 6일은 또한 스웨덴 출신 아바가 1976년 그 유명한 '워털루'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1위를 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날이기도 합니다. 아바 특유의 후크 가사 "워러루~"가 참으로 듣기 좋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곳이죠. 


아바 노래는 특히 한국에서 영어 공부 교재로서 많이 사용됩니다. 쉬운 노래 가사 때문이죠. 대부분 남녀 관계 사이를 표현한 유치짬뽕 가사를 굳이 수준 높은 이 포스트에서 거론할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네 있습니다


이미 소녀시대의 복고풍 닭살 오글거리는 '라이언 하트'에서도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발견했는데, 아바의 노래라면 더더욱 참 쉽죠! 


이번 글에서 다룰 노래는 '워털루'


분히 얼마든지 다른 가사를 사용해 남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데, 굳이 워털루와 그에 관련된 내용을 가사로 쓴 점이 매우 신기합니다. 


워털루는 다름 아니라 나폴레옹이 생전 마지막 패배를 당한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워털루 노래가 나오는 맘마미아 2 장면에서 나폴레옹 시대 복장을 입고 있는 종업원이 나오는 이유이죠. 


https://youtu.be/IQDJyKmqej8


굳이 사랑 노래에 전쟁에 대한 가사를 쓸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나폴레옹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전투를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죠.


아름다운 지중해에 있는 엘바섬


래서 조금 더 보태자면, 러시아 원정 패배의 책임을 지고 실각한 나폴레옹은 1차 유배지인 엘바 섬에서 탈출해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2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호되게 당했던 주변 국가들은 전쟁 기계의 부활에 다시 한번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가 우연히 엘바 섬에 갇힌 나폴레옹에게 편지를 전달했고 거기에 여러 가지 사연이 추가되어 외딴섬 감옥에서 무려 14년 동안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죠.   


다급한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등 주변 강대국이 오직 나폴레옹을 다시 끝장 내기 위해 뭉쳤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엘바 섬 탈출 후 백일이 조금 지나는 동안, 부활, 복수, 복수의 실패와 같은 드라마틱 한 수많은 사건이 모두 발생했죠. 


당시 교통 수준으로 봤을 때, 약 20만 명의 거대한 병력이 한곳에 모이는 시간만 족히 3달은 걸렸을 것 같은데.. 요즘 세상처럼, 5G 스러웠습니다. 


그만큼 나폴레옹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이죠. 그 결과, '백일천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몰락한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오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쓸쓸히 죽습니다.


아프리카 망망대해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나폴레옹으로선 잊고 싶은 이름, 워털루


대로 그를 이긴 영국의 웰링턴 공작은 승승장구합니다. 차후 정치가로 변신하여 수상으로 선출되기도 하죠. 지금도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이 있는 나폴레옹을 이겼으니, 그 명성은 대단했니다. 전쟁의 신을 이긴 갓갓


지금도 쉽게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이었던 뉴질랜드 수도 이름이 바로 그의 작위에서 따온 것이죠. 



또한 영국에서 넬슨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는 동상이 바로 그입니다. 

아무래도 육군이다 보니, 말을 탄 간지있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기 때문이죠. 배불뚝이 처칠은 영 간지가 안나니.. 구국의 영웅이니, 당연히 영국(United Kingdom)을 구성하지만 늘 잉글랜드에서 벗어나고 싶은 스코틀랜드에서도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워털루 전투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한 나라가 되어 같이 싸웠습니다. 그런 만큼 웰링턴 공작 동상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의 눈에 잉글랜드의 영웅이 스코틀랜드에 간지스럽게 있는 모습이 왠지 아니꼬운 것 또한 사실! 

그렇다고 파괴하는 건,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자꾸 교통 고깔을 씌운다고..




폴레옹의 패배가 쓰라리게 느껴졌다면, 이처럼 전쟁 후 두 지휘관의 극과 극 인생 때문이기도 하겠죠. 모든 걸 가졌던 나폴레옹은 결국 모두 잃었고, 별 볼일 없는 귀족의 3남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했던 웰링턴 공작, 아서 웨슬리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아마도 이런 배경을 알면, 가사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 배경을 알면,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라는 가사는 그냥 진 게 아니라 정말 심하게 졌다는 의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콩깍지가 쓰인 것입니다. 과거엔 나폴레옹처럼 당당했지만, 당신을 보는 순간 사랑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하며 Game Over.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 간과 쓸개조차 내줄 정도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자신의 마음은 오직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개박살 난 것으로만 '겨우' 비교할 수 있습니다.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


책장의 역사 책은 항상 그런 식으로 반복된다고 나름대로 위로를 하지만, 개인적으로 워털루에서의 개박살은 역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패배가 그렇게 많이 반복되지는 않죠.


다행히 그 사람에겐 마지막 기회가 있습니다. "My only chance is giving up the fight" 사랑의 싸움에선 지는 게 이기는 것("I feel like I win when I lose")이기 때문이죠. 

나폴레옹은 1차 유배지인 엘바 섬에서 탈출하며 마지막 기회를 사용했습니다. 무조건 이겨야 했습니다. 지면, 지는 것이었습니다. 





털루 전투는 나폴레옹 인생만큼이나 극적이었습니다. 비교적 나폴레옹의 우세로 진행되던 전투 후반, 그동안 수없이 나폴레옹에게 당했던 프로이센의 블뤼허 장군의 증원군이 도착했습니다. 싯누런 노장의 광기로 가득 찼죠. 


나폴레옹은 그 순간 끝났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를 따로 격퇴하기 위해 상당한 병력을 파견했는데, 그들이 프로이센 군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도착했던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가끔 역사는 사소한 작은 행동에 의해 커다란 변환점을 맞이하고는 합니다. 

워털루 전투가 바로 그렇습니다. 전술의 천재라는 별명답지 않게,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은 평범한 능력을 보여 줍니다. 그래도 큰 실수는 없었고, 워낙 프랑스 군에 베테랑이 많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에 근소하게나마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 군을 추격하던 프랑스 군에게 급히 복귀하라는 명령서를 가진 전령을 어처구니없게도 나폴레옹의 부하가 단 1명만 보내고,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전투가 늦게 시작되어 적절한 때에 프로이센이 도착할 수 있었다거나, 오랜 전장 생활로 인해 몸이 망가져서 나폴레옹(썰에 의하면 특히 치질이 심했다고..)이 적극적으로 지휘를 할 수 없는 등, 작고 사소한 여러 원인이 겹쳐 결국 나폴레옹이 졌습니다.

최소한 전령을 많이 보내어 나머지 프랑스 군이 제때 도착했더라면, 결과는 알 수 없었을 듯합니다. 


웰링턴과 블뤼허의 만남


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습니다. 스웨덴 그룹 아바가 굳이 나폴레옹 이야기를 가사로 써야 할 만큼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폴레옹의 비참한 패배를 사랑에 무참히 멘탈이 나간 모습과 비교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근데 왜 나폴레옹? 역사는 반복된다는 노래 속 가사처럼, 얼마든지 스웨덴 예시를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굳이 어떤 연관성을 찾자면, 있습니다. 나폴레옹과 스웨덴과의 지독한 인연이 숨어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왕세자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여, 후계가 끊겼습니다. 이미 스웨덴은 나폴레옹이 인정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군사 천재이었던 왕이 전투 중 사망하며, 충분할 만큼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강국 나폴레옹의 지인을 왕으로 스카우트하여, 조금이나마 그 콩고물을 맛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장군 시절 


그 결과, 나폴레옹의 장군 중 하나인 베르나도트에게 오퍼를 보냅니다. 과거 스웨덴 포로를 잘 대해 줬던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된 것이었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장군이었지만 베르나도트를 좋게 본 듯합니다.   


베르나도트의 아내


만약 그가 유능한 장수이었다면, 나폴레옹도 거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했고, 더구나 그의 아내가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결혼하기 전 약혼자이었기 때문에, 서로 껄끄러운 사이이었죠. 게다가 베르나도트 역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에 반대하는 등 사이가 여러 번 악화될 뻔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아내가 중간에서 둘 사이 관계를 중재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의 승인을 받고,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왕세자, 곧 왕이 됩니다. 바로 칼 14세!


따스한 프랑스에서 추운 스웨덴에서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는 종교도 바꿀 정도로 완전히 스웨덴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왕으로서..


근데, 운명적이게도 스웨덴의 국익은 프랑스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북쪽 한 켠에 있는 스웨덴으로서는 해양강국 영국과 무역이 중요했고, 바로 옆에 이웃한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모두들 프랑스 나폴레옹의 강력한 적들이죠.


그 결과 그는 조국, 나폴레옹을 배신


그는 스웨덴 백성을 선택한 것이죠. 갑자기 등장한 스웨덴 군의 참전으로 나폴레옹은 라이프니치 전투에 결국 지죠. 그래서 엘바 섬에 유배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으로서는 철천지 원수이자 배신자, 매국노. 베르나도트가 로또에 당첨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스웨덴이었죠. 베르나도트는 최대한 전쟁을 피하며, 스웨덴을 정말 잘 다스립니다. 지금도 스웨덴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이라고 하죠. 지금도 그의 후손이 왕입니다.

어쩌면, 나폴레옹 전쟁의 최대 수혜자. 역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입니다.





르나도트와 나폴레옹의 질긴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베르나도트의 아들이 나폴레옹의 양아들의 딸(즉, 조세핀의 손녀)와 결혼했던 것입니다. 양아들은 나폴레옹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한 것으로 유명하죠. 


배신자와 충직한 부하의 사돈 관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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