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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돌고래 Sep 06. 2020

내 꿈은 구멍가게를 여는 것

자본주의 시대의 소상공인

“잘 늙고 싶어.”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잘 늙고 싶다’는 말이 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얼마나 대책 없고 순진한 말이었는지 돌아봤다. 


죽을 때까지 소소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것, 아프면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 소수의 친구들과 맛있는 차를 마시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혹시 나를 찾아와 줄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것, 감각이 살아있는 한 문화생활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가능한 선에서 타인을 돕는 것. 이 중 어느 것도, 단 한 가지도 생활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어째서 나는 ‘잘 늙고 싶다’는 말을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걸까.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젊을 때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혹시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 그전에 이 책(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수십 년간 성실한 납세자로 활약한들 노후의 존엄은 개인의 몫이 되고 마는 이 사회의 요상한 면을 보고 나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테니까. 



인간 세계의 거의 유일한 진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변화무쌍한 인간 세계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진실이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죽을 것이다. 


올해 서른셋이 되었다. 나름 30대 초반인데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하루만 밤을 새도 며칠 동안 회복이 안된다. 조금만 잘못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근육이 더디게 생긴다. 이런저런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왠지 인생이 내리막 길에 접어든 것 같다는 망상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인생의 황금기는 50대부터’라고 정신 승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연륜 때문이다. 


연륜은 체력과 반비례하게 상승한다. 20대에는 직접 부딪히는 게 능사였다면, 나이가 들수록 다방면으로 경험치가 쌓이면서 효율적으로 체력을 소모하게 된다. 30대와 40대는 가장 즐거울 시기다. 뭣도 몰랐던 20대를 지나 비로소 조금씩 개인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20대에 비해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모험한다. 왕성했던 호기심이 취향으로 자리 잡고, 사회의 응석받이에서 벗어나 경제 활동이라 불리는 것을 활발하게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50대가 체력의 하락 곡선과 연륜의 상승 곡선 중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치와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체력이 허락되는 시기일 것 같아서 ‘황금기’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운동으로 관리를 한다 해도 60대 후반에 접어들면 확실히 몸이 생각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걸음도 조금은 느려질 것이고, 눈도 몹시 침침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 멀어질 것이다. 평생 일했던 직장이라 한들 본인이 대표가 아니고서야 죽을 때까지 다닐 일은 거의 없다. 아직 수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주요 수입원이 사라진다. 평생 먹고살 만큼 모아둔 사람이야 쾌재를 부르며 평화로운 노년기에 접어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시 구인 시장에 내몰린다. 몸이 약해질 때까지 일을 하고도 마음대로 은퇴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경비직은 대기 인력이 풍부해서 해고와 채용이 수시로 반복된다. 아파트 경비일이라는 것은 뼈와 근육만 튼튼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신입일수록 충성심이 강하고 불평하지 않고 순종한다. 경비원들은 아침마다 그 이력서들을 보며 일을 시작한다. 생활정보지의 세 줄짜리 광고로 3만원이면 누구든 하루 만에 나를 대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악몽 같은 날을 보내다 보면,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할 그날이 온다. 내 한 몸 스스로 건사하기가 힘에 부쳐 사회의 배려가 절실해지는 날. 



어찌할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한 불안 


책을 다 읽은 바로 다음 날, 출근길에 눈에 보이는 벼룩시장을 집어 들었다. 생각 없이 시스템에 떠밀려 살다가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고가 빽빽한 벼룩시장


회사 동료들이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이 지금 벼룩시장을 왜 봐~”

“아무 준비 없이 퇴사하면 뭘 할 수 있을지 미리 좀 보려고요.” 


<임계장 이야기>도 같이 소개했다. 


“38년 동안 공기업 다니시다가 정년퇴직 후에 경비일 하시는 분이 쓰신 책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사람들이 진짜 멍청해요.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 선생님들 함부로 대하는 모습 보면 기가 차요. 본인들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건데, 뭘 믿고 그렇게 갑질인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날에 대한 불안을 가중한다. 극단적인 인성을 소유한 자들이 내뿜는 안하무인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일상에 만연한 무감각이다. 일상생활 중 잡담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두에게 '임계장' 이야기를 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다수는 그저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소비했고, 몇몇은 연민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느끼지 않는 척하는 건지, 차라리 내 입담이 별로라 가닿지 못한 것이길 바랐다. 


'임계장' 이야기는 20대 중반부터 내 삶에 큰 화두다. 모두가 예외 없이 나이가 들면 노동자로서의 효용성을 잃는다.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될 삶과 그 안에서 살갗으로 느끼게 될 사람들의 무감각이 내게는 오래전부터 실질적인 위협으로 존재해왔다. 사회 초년생일 때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한 데다 훌쩍 혼자 여행을 잘 떠나서 그런지 지인들은 나를 보고 자유분방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사실 나는 루틴을 좋아한다. 방만한 자유보다는 일정한 틀 안에서의 자유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지러운 책상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정신없는 승강장에서도 늘 같은 칸에서 전철을 타며, 아이스크림은 십수 년째 탱크보이를 좋아한다. 한없이 떠돌아다니며 즐겁게 살 수는 있으나, 돌아갈 집이 있을 때 가능한 성향이라는 걸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다. 끊임없이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이유도 노동 시장에서 내가 원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일찍이 버렸기 때문일 거다. 어차피 언젠가는 홀로 서야만 하는 날이 올 테니까. 


만약 노동 시장에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나이가 들어 몸과 두뇌가 도태된 사람들도 본인이 원하는 시기까지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혹은 어느 시점부터는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이 되는 사회라면, 그랬다면 조직에서 자아실현을 해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일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마 지금보다 최소 두 배는 몰입해서 하고 있을 거다. '온전한 나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게으름을 이기지 못할 텐데, 그 마음에 조직도 사회도 책임져주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면서 신기한 시너지가 난다. 그 덕에 재미있게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늘 떠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소상인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는 노동 시장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되기를 택했다. 딸기잼을 만들어 팔든 파프리카로 피클을 담가 팔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팔든. 물론 불안하고 불편하겠지만 어차피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줄 게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실패를 극복할 육체적인 힘이 남아있을 때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게 그나마 안전한 방법인 것 같아서다. 마음처럼 잘 안돼서 힘들다 해도 '나로 살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노동자의 미래를 책임져주지도 않을 시장에 하루 10시간씩 쏟아붓는 것에 비해 훨씬 나은 일 아닌가. 


일본 시골마을에 직접 연구한 효모만을 사용하는 빵집이 있다. 빵집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가 쓴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 홀로서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구체화됐다. 


산속의 작은 빵집에서는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을 발효시켜 만든 빵을 판다


'썩는다', '부패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절대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그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작아도 진짜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사회를 병들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반대점에 있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대신 소상공인이 많은 사회를 제안한다. 개개인의 개성이 모여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 내의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다.


그가 제빵에 쓸 효모를 직접 개발한 이유도 시스템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큰 회사가 만드는 효모를 사서 쓰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 - 공장 직원,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는 온갖 정치 등 - 이 여전히 시골빵집에 영향을 줄 테니, 시스템에 환멸을 느껴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고 빵집을 연 그로서는 효모까지 직접 개발해야 직성이 풀렸을 테다.


동일한 선상에서 시골빵집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빵집 주인은 이것을 소상인의 핵심 가치라고 말한다. '이윤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 산다는 거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는 굉장히 명쾌하게 이를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이윤은 타인을 착취하는 것과 직결된다. 이윤을 많이 남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재료비를 줄이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사업주는 인건비를 최대한 적게 써야 많은 이윤을 남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착취가 발생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다 마칠 수 없을 양의 일을 던지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은 지불하지 않는 식이다. 엄연히 따지면 착취인데 너무 일상적이라 누구도 착취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노동 인구가 찌들어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구멍가게


내 꿈은 구멍가게를 여는 것이다. 떼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기 때문에 큰 사업체는 필요 없다. 작지만 진짜인 것을 만들고 싶고, 그것으로 배고프지 않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핵심 가치는 시골빵집과 같이 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것.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결국은 기존 시스템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부패와 발효는 모두 미생물의 분해 과정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 인간에게 해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라고 한다. 나의 작은 구멍가게가 누군가의 삶을 발효시킬만한 것을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은 못돼도, 살아있는 동안 내 그릇에 맞게 정성껏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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