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또 미치고, 또 미치자.
나와 비슷한 나이(20대 후반-30대 초반) 라면 어릴 적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한 번은 봤을 거다. 작품 속 강아지들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크루엘라가 미친 표정으로 차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나에게 크루엘라는 강아지 털로 모피코트를 만들겠다는 미친 여자로 남아 있는데, 이번에 영화 「크루엘라」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가 됐다. 이전 실사화 영화에서도 크루엘라는 악역으로 나왔을 뿐, 주인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였다.
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매우 마른 모습, 모피 코트 성애자,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등이 있다. 그래서 크루엘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번 영화에서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굉장히 궁금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과거와 달리, 강아지를 죽이는 것이 아닌 유기견을 키우는 모습, 모피코트보다는 레디 투 웨어 패션을, 담배보다는 지팡이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과거에는 악역의 이미지만 강했다면, 이번에는 에스텔라(Esther는 별을 의미한다)와 크루엘라(Cruel은 잔혹한, 잔인한을 의미한다)라는 두 가지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 크루엘라가 자신의 부하직원으로 있는 사람을 막 부려 먹었다면, 영화 속 크루엘라는 재스퍼와 호러스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걸 인지한다.
영화 속 크루엘라가 자신에게 드 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꽤 재밌다. 원작에서 이름을 보면 그녀를 “잔혹한 악마”라고 표현하기 위해 드빌을 붙인 것 같은데, 이번 영화에서는 원래 de vil이 없다. 작중 크루엘라와 재스퍼가 발코니에서 얘기를 나누던 도중 밑에 있던 호러스가 자동차 이름이 데빌이라고 말한다. 이때 재스퍼가 그건 데빌이 아니라 드빌이라고 읽는 거라고 말한다. 호러스가 데빌이라고 잘못 읽은 차는, Panther Westwind 사에서 1974년에 출시했던 Panther De Ville 차량으로, 당시 영국에서 명품 차로 유명했던 자동차다. 이 장면에서 크루엘라는 드빌을 읽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이름을 크루엘라 드빌로 정한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당시의 패션과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음악에 있다. 먼저 패션에 관해 말하자면, 작중 남작 부인이 운영하는 바로네스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드레스를 많이 선보인다. 흔히 말하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의상들인데, 이를 통해 바로네스가 가진 이미지가 70년대의 크리스챤 디올이나 샤넬이 가진 이미지와 버금가는 걸 알 수 있다. 가령 작중 아트의 옷집에서도 디올과 샤넬 컬렉션은 옷걸이에 걸려있지만, 바로네스 옷은 쇼윈도에 디피된 상태다. 이를 통해 당대 영국 세빌 로나 바다 건너 오트쿠튀르 의상이 패션의 주를 이루던 걸 보여준다. 이런 시대에 작품 속 크루엘라처럼 70년대 영국에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디자이너가 등장했는데, 지금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그녀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인생의 귀인을 만나게 되는데, 당시 영국의 유명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말콤 맥라렌이다. 1965년에 만난 둘은 서로가 잘 통한다는 걸 알았는지 커플이 되고, 이후 첼시 킹스로드에 “Let it Rock”이라는 가게를 열고, 본디지 의상과 펑크록 의상을 팔았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당시 추구한 의상과 작중 등장하는 크루엘라 컬랙션을 보면 유사한 측면이 많다. 영화 속 배경 음악으로 Bee Gees, Queen, Deep Purple 등 영국의 유명 록밴드의 음악이 등장하는 것도 당대 영국의 펑크락과 하드락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각색하는 과정에서 크루엘라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이런 것들을 많이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서사적인 측면을 보면, 크루엘라는 현대의 오이디푸스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크루엘라는 자신의 친엄마를 감옥에 넣고, 그녀가 가졌던 모든 것을 차지한다. 서사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크루엘라스럽다. 영화적 연출로 대충 때우는 것이 아니라, 작중 크루엘라가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여러 장면 보여준다. 자신의 특출난 디자인 감각과 옷을 잘 만들어 자선 파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의 옷을 크루엘라처럼 꾸미는 장면, 유명해지기 위해 쇼를 만드는 장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캐서린을 물었던 달마시안 개들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장면 등 여러 장면을 통해 서사를 쌓아 나간다.
크루엘라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신문이다. 그녀는 앤디 워홀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일단 유명해져야 남들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 준다는걸. 그래서 크루엘라는 유명해지려고 바로네스의 행사 장소에서 온갖 쇼를 다 한다. 이것이 유아틱 했다면 쇼가 아니었겠지만, 자신의 디자인 실력과 특별한 의상이 겹쳐 화려한 퍼포먼스가 됐다. 이를 통해 그녀는 신문에도 나오고 티비에도 나오는 유명 인사가 됐고, 자신의 복수를 향한 계단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일에도 성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캐서린과 가기로 했던 분수를 딱 5번 찾아간다. 첫 번째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다음 방문하여 후회와 절망이 남았을 때, 두 번째는 리버티 백화점에 취업했을 때, 세 번째는 남작 부인에게 인정받았을 때, 네 번째는 남작 부인이 자신의 엄마를 죽인 걸 알았을 때, 다섯 번째는 알고 보니 자신의 진짜 엄마가 남작 부인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다. 첫 번째로 분수에 갔을 때 그녀는 어떻게든 에스텔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지막에는 에스텔라를 버리고 크루엘라를 선택한다. 그녀는 5번의 분수 방문 이후, 자신이 침대에 누워 분노의 5단계를 말하고, 6단계인 복수를 말한 것처럼, 복수를 향해 나아갔고, 복수에 성공했다.
작중 남작 부인이 처음 에스텔라를 보고 남다르다고 말한다. 현대 예술과 아방가르드 한 패션이 등장한 이후, 남다른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조건 남과 다르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스텔라는 자신이 남다른 걸 인정받기 위한 기반을 착실히 쌓았다(물론 도둑질에 사용할 옷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기본이 탄탄하니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었다(오트쿠튀르를 잘 만드는 사람이 프레타포르테도 잘 만든다). 「크루엘라」는 우리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남다른 것 같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정말 미친 듯이 일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PS. 이 영화도 쿠키 장면이 있다. 이전 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로저와 아니타는 부부 사이로 나오지만, 「크루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저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변호사로, 아니타는 기자로 나오고, 서로 결혼하지도 않는다. 그런 두 사람에게 크루엘라는 달마시안 개를 보내고, 그때 로저가 뭔가 영감을 얻었는지,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로저가 연주하는 Cruella De Vil을 연주하며 영화가 끝난다.
출처 : Panther De Ville - Wikipedia
[크루엘라 리뷰②] 두번 보아야 보인다. 크루엘라도 그렇다...리젠트 분수 갈 때마다 바뀌는 그녀의 심리 < 문화/연예 < 기사본문 - 열린뉴스통신 (onews.tv)
크루엘라 ost 가 듣고 싶은 사람은 아래의 링크를 누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