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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통빈 Sep 06. 2023

나를 대신할 수 없는 것들

나이와 엠비티아이와 에니어그램

1.

 나이듦은 권력이나 지혜의 신장이 아니라 세포와 장기들의 노화일 뿐이다. 생물학적 나이는 염색체 말단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정도를 뜻할 것이다. 텔로미어도 인간마다 다른 속력으로 줄어들고 있을 터라 1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1살을 더 먹는 사회적 나이의 시스템은 생물학적으로 무용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사회적 나이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다들 각자의 삶을 각자의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을 게다. 


 “저는 요즘 스페인어 배우고 싶더라고요.” 

 “스페인어? 너 영어 잘해?” 

 그는 나를 위아래로 흘기며 묻는다. 

 “아뇨? 잘 못 해요.”

 “야. 영어부터 하고 스페인어 해. 요새 애들 다 영어가 기본이잖아. 너 토익 봤어?”

 한숨을 푹 쉬며 그가 말한다.

 “아뇨.”

 나는 왜인지 기죽은 목소리로 작게 답한다.

 “토익 먼저 봐. 영어도 못 하는 게 무슨 스페인어야.” 

 그는 코웃음을 친다. 남들한테 기본인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지. 살짝 억울하다. 문득 나는 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저기, 혹시 나이 여쭤 봐도 되나요?”

 “아. 나? 몇 살처럼 보이냐?”

 그는 싱글벙글 웃는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을 꾸욱 누르고 웃었다. 45세 어디 대학 교수란다.

 “어디 대학이요?”

 “어? … 있어‒.”

 하곤 말을 돌린다. 대학 이름이 맘에 안 드나? 성에 안 차나? 아무튼. 기억해야지 45세. 




2.

 “ESTP죠?”

 “검색하면 나오는 사이트에서 검사하면 ISFP 나와요.”

 “엥? 완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단 말 많이 들어요.”

 살짝 웃는 척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사력을 다해 사회력을 떤다.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친절하게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까뒤집고 까르륵 박수친다. 당신에게도 최대한의 사교력을 터는 중이다. 고작 몇 시간 나를 본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았는지, 어떻게 그렇게 단호히 선언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알파벳 네 개는 최근에 가장 많이 사용했던 상황 인식 방법과 대처 방법을 알려줄 순 있어도 경험, 가치관, 성숙도 같은 건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혹시 선생님은 엠비티아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ENFP요. 검사는 따로 안 해봤는데, 그냥 ENFP가 좋아요. 사람 좋아하는 그 댕댕이 같은 이미지 완전 호감이지 않아요?”

 이번엔 엠비티아이로 세 가지 특이한 정보를 얻었다. 이 사람이 원하는 가면은 ENFP 댕댕이구나, 이 사람은 엠비티아이를 방금 쇼핑하다가 산 팔찌정도로 생각하는구나, 이 사람과 자의로 다시 만날 가능성은 0이다! 본인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면서도 과하게 신경 쓰지 않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고도 괴로운 일이다. 




3.

 “동빈쌤은 7번인가 봐.”

 “7번이요? 그게 뭐예요?”

 “에니어그램이라고 있어. 두려움을 바탕으로 형성된 성격. 1번부터 9번까지 있어.”

 “아, 저는 그중에서 7번인 거예요?”

 “응. 7번은 쉽게 말하면 ADHD야.”

 “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주의력이 부족했던 순간, 행동을 과하게 했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8번 날개 같기도 하고 6번 날개 같기도 하고.”

 “그건 또 뭐예요?”

 세상에 사람을 구분 짓기 위한 척도가 몇 개일까. 온 세대를 걸쳐 사랑받는 나이 척도에 유행 따라 혈액형, 띠, 엠비티아이, 에니어그램을 곁들인다. 누군가는 성적, 학벌, 재산, 출신 지역, 외모, 본관, 성별, 인종을 따지기도 한다. 피로하다. 분류학에서는 그 결과로 동정이라도 하지 이 사회에선 끽해야 모두 인간 종일뿐이다. 그런 기준들을 존재를 이해하는 데 쓰고 싶다. ‘넌 7번이라 차분한 일은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데 쓰기보단 ‘넌 7번이니까 이런 성향이겠구나.'하고.




글, 사진 심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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