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작엔, 다 이유가 있어요이‒ 자알 따라하세요잉‒”
아침 두 시간, 저녁 두 시간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줌바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한 말이다. 1시간짜리 움직임 하나하나에 어떤 이의 목적이 담겼다니. 그걸 자신 있게 공표하다니! 오늘부터라도 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내 몸을 맡기기로 했다. 몸을 쓰는 사람들은 몸의 모양만 봐도 그가 어떻게 사는지가 다 보인다. 민망할 정도로 다 보여서 보는 게 미안할 정도다. 온갖 시간들이 모여 선생님의 몸을 이뤘을 테지. 그 축적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심통빈의 모친 김민재는 살면서 본 근육 중에 선생님의 근육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줌바(Zumba)는 빠르고 재미있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이곳엔 인생이 느리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주로 온다. 이 수업의 여자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뉜다. 남에게 먼저 말을 거는 여자들과 그렇지 않은 여자들. 남에게 먼저 말을 거는 여자들은 대부분 이곳에 오래 다녔고, 아이가 있고, 탑에 딱 붙는 레깅스나 화려한 무늬가 있는 의상을 입고 와 모든 동작을 열정적으로 끝까지 따라 춘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주로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가 없고, 헐렁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버겁게 추다가 중간에 물을 마시러 나간다. 그리곤 지친 얼굴로 들어와 설렁설렁 동작을 따라한다. 나는 중간에 나가 언제쯤 안 힘들어하고 1시간을 꽉 채워 춤출 수 있을지 걱정을 마시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취향인지 춤추는 여자들의 취향인지 1시간 수업 과정에는 꼭 트로트가 섞여 있다. 처음 왔을 때는 '한잔해'를 백번쯤 말하는 노래에 우아하게 술잔을 꺾는 동작을 하셔서 당황했었다. 이 춤을 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지만 신명나게 기합을 넣는 여자들 사이에서 춤추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무엇도 내 의지가 아닌 것을 해야 하니 저절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번 달에는 '내 지갑에 있는 돈 다 갖다 써라'*는 가사의 노래를 새로 들고 오셨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가진 건 돈뿐이라 해줄 게 따로 없어'라고 하는 걸까? '돈이에요 나예요'하고 묻다가 '나의 돈이었군요~!!'하고 단전에서부터 슬퍼한다. 노래가 끝나기 직전엔 '돈이 아닌 나를 사랑했다면 내 지갑에 있는 돈 다~ 갖다 써라~'라고 하고 마지막엔 그 목소리보다 작게 '한도가 초과되었습니다'라는 사무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청자는 화자를 사랑하긴 했다는 거니까 해피엔딩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줌바 덕분에 평생 들을 일 없던 이 노래의 서사를 알게 되고야 만다. '내 지갑에 있는 돈 다 갖다 써라'는 가사에 맞춰 온몸을 써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돈을 날리는 춤을 추는 것은 줌바가 아니었으면 평생 하지 못할 경험이다. '한잔해'를 출 때까지만 해도 종종 허무하곤 했는데, 이제는 오로지 몸을 혹사시키는 데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가도 동작의 순서를 매끄럽고 활기차게 이어가는 언니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까? 그렇다면 모두가 수행자가 아닐까? 시골 학교서 정신 수양을 위해 백팔배를 했을 때의 환경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때처럼 오로지 몸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가끔 어린이가 와서 이런 가사에 맞춰 같이 춤추는 날에는 이 곡을 들려줘도 괜찮을지 혼자서 전전긍긍한다.
먼저 말을 거는 여자들이 묻는다.
“딸인가?”
내가 대답한다.
“예.”
“아들인 줄 알았네!”
하며 팔을 퍽퍽 친다. 줌바로 팔 근육도 단련되는 게 분명하다.
“아. 하하하.”
놀라고 머쓱했지만 티내고 싶진 않아 웃는다. 그들은 나의 대답과 상관없이 서로 대화를 이어간다.
“내 주변에도 이러고 머리 짧은 사람 있는디. 여가 또 있네?”
“누구누구! 새로운 사람이여?”
“어. 몇 달 됐는디 처음 본가?”
줌바 수행자들의 건강한 수다에 아찔해지고야 만다.
*카피추 - 내 지갑에 있는 돈 다 갖다 써라(feat. 전원주)로 추정된다.
글, 사진 심통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