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는 수업 시간에 졸아도 꿈을 꿨다. 매일 매시간 꿈 일기를 썼다. 영어 시간엔 로코, 어젯밤은 누아르, 그저께 밤은 판타지, 엊그저께 밤은 공포. 그의 꿈은 온갖 장르를 아울렀다. 오늘 꾼 꿈이 어제와 이어진 시리즈가 되기도 하고 하룻밤에 옴니버스를 찍기도 한다. 맨날 똑같은 하루를 보내서 일기 쓸 게 없는 고등학생 심통빈은 하루하루 다른 꿈으로 채우는 경이의 일상이 얼만큼의 축복일까 가늠했다. 꿈을 꾸고 기억하면 잠을 얕게 자는 거랬는데 경이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항상 꿈 얘길 하며 신나했다. 아무리 피곤하대도 꿈 얘길 하며 볼에 도는 생기가 그 피로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짧고 기억조차도 안 나는 내 꿈과 다르게 경이의 것은 늘 선명하고 다채롭고 시끄러웠다. 현실에서의 감각보다 꿈에서의 감각이 더 선명한 적도 있댔다. 어디서든 뚜렷한 경이의 감각을 몹시 갖고 싶었다. 딱 한 번만 훔쳐보고 싶었다. 도대체 감각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궁리하며 일기를 채웠다.
어느 날 꿈을 꿨다. 온통 파란 워터파크 한가운데 빨간 미끄럼틀 위에서 경이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초록색 베이스 트로피칼 무늬 사각 빤쓰만 입고서는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나와 경이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서서 당차게 “경아 잘 들어줘” 따위의 멘트를 치고는 <스윗소로우 - 첫 데이트>를 부르며 유난히 길고 경사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그 꼴이 끔찍하게 우스웠다. 경이한테 말해줬더니 왜 그딴 꿈을 꾸냐고 으캬갹 웃으며 질색했다. 걔가 남자 이야길 할 때마다 나는 꿈속에서 봤던 빤쓰남처럼 ‘경아, 잘 들어줘.’ 느끼하게 쳐다보며 멘트를 치고 <첫 데이트>를 부른다. 빤쓰남이 불렀던 것처럼 삑사리도 살살 내며 불러준다. 그러면 경이는 미간을 한껏 들어 올리고—눈썹 앞코만 뾰족하게 들린다— 눈꺼풀과 콧구멍과 입을 동시에 동그랗게 열며 나를 쳐다봤다.
언제부턴가 나는 현실과 분간되지 않는 꿈을 꾼다. 조금 신나고 대부분 버겁다. 밀린 자극들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일주일 전 꿈에선 문이 없는 1인실에 입원했다. 통인이 내 명치를 사정없이 때렸기 때문이다. 병실엔 간호사도 들어오지 않았다. 건너편 할아버지 병실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원망했다. 문이 없어서 보인 사람들 들린 말소리 맡게 된 꽃 향 모든 것이 외로웠다.
어제는 처음 보는 교복을 입고 큰 버스에 탔다. 매연 냄새가 났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엄마가 없다, 아빠가 없다 수군거렸다. 그제야 내가 고아임을 알았다. 높은 콧소리를 내며 옆에 민지가 앉았다. 꿈에서도 민지는 한 명씩 번갈아 가며 괴롭히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저께 꿈에선 먼 친척이 죽었고 며칠 전엔 내가 죽었다. 오늘은 연예인 누구부터 내 지인 누구까지 한 조가 되어 나와 조별 과제를 했다. 전부 여자였고 커플인 사람도 있었다. 이상하고 당연하게도 조장은 나였는데 아무도 과제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꿈에서까지 조별 과제를 하다니. 소금이나 뿌려야겠다.
꿈은 뭘까 어떻게 작동할까 궁금하다. 무의식이라기엔 좀 의식적이고 의식이라기엔 참 지멋대로다. 자주 의식해서 익숙해진 것이 구석탱이로 밀려나 꾸물꾸물하다가 자는 중에 활개를 펴는 것일까, 전혀 몰랐던 것이 어느 날 어쩌다 감각에 걸려 운동화 안에 들어간 돌조각처럼 모든 신경을 거대하게 휘젓고 다니는 것일까. 아무튼 삶에서는 명백히 크고 작은 것들이 꿈에선 똑같은 무게로 뛰어다닌다. 같은 파동으로 바닥을 울린다. 깨고 나면 참 얼척이 없다. 모든 게 지나치게 관대한 낯선 풍경을 꿈속에서만큼은 편견 없이 수용하는 내가 간혹 불쾌하다. 이렇게 비판의식 없이 살아도 되나?
빈곤한 기억력과 상상력 덕에 아직 감당할 수 없는 내가 된 적은 없다. 오늘 통인이 꾼 꿈에서처럼 버스에서 똥 눈 사람이 되었다면, 똥 눈 감각이 놀랍도록 생생하다면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글, 사진 심통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