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위스에서 소소한 일상이란 : 스위스 물가 체감

by 리라로

스위스에 산다고 해서 매일이 영화 속 풍경 같은 건 아니다. 아침이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출근이나 등교 준비를 하고, 하루의 반을 학교나 회사에서 보내다 돌아와 저녁을 먹고, 숙제나 이런저런 일들을 마무리한 후 잠이 든다. 우리처럼 여기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휴가 때면 모를까 평상시엔 이 아름다운 스위스에서 비슷비슷한 단조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이곳의 계절별 이벤트나 다양한 문화를 즐기곤 한다.


20대 때는 여행에 푹 빠져 지냈다. 배낭 하나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밤늦게 숙소에 돌아와선 다음 여행지를 계획하느라 설렜던 나날들. 생각해 보면 20대 때 에너지가 가득한 시기 열심히 여행 다녔던 게 참 잘한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다니진 않지만, 여전히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 여행과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나서려 노력은 하는 편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평일인데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나만의 특별한 하루를 보내보기로 했다. 커피를 좋아하니 우선 노트북을 챙겨 예쁜 카페를 찾아갔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한 카페. 내 옆자리에서는 한 스위스 여성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카페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익숙한 이곳 사람들. 사실 나도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적당한 소음이 집중력을 높여주니까.


한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려다 옆 사람의 배꼽시계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침묵의 압박에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나온 기억이 있다. 물 마시는 꼴깍 소리까지 메아리치는듯한 조용함에 숨이 막혀 왔다. 그런 면에서 카페는 적당히 활기차고 자유롭다. 하지만 이 작은 행복에도 스위스 물가의 현실은 피할 수 없다.


라벤더 허니 라테 한 잔이 7.90 CHF, 한화로 13,200원 정도. 나는 카푸치노를 시켜서 5.90 CHF, 약 9,800원을 냈다. 커피를 좋아해서 종종 마시지만, 계산할 때마다 ‘아, 맞다. 여기 스위스지’ 하고 새삼 깨닫는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점심도 먹고 가야지 싶었다.


간단한 포케 한 그릇. 그런데 가격이 간단하지 않다. 24 CHF, 한화로 약 4만 원. 그나마 포케는 간단한 점심용이지만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스타터, 메인, 와인 등까지 시키면 100 CHF(17만 원)는 가볍게 넘는다. 그래도 이제는 스위스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24 CHF짜리 점심값 정도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아니, 놀라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아무것도 못 사 먹으니까. 그래도 야채 듬뿍, 신선한 참치가 들어간 한 끼라 기분 좋게 맛있게 먹었다.



기분 좋은 봄날의 공기를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단히 장도 봤다. 그런데… 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통이 12 CHF(약 2만 8천 원). 커피, 점심, 장 본 것까지 합쳐보니 ‘소소한 하루’ 치고는 지출이 꽤 큰 하루가 되어버렸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구나 싶다. 매일 밖에서 먹고 마시다 보면 지출이 어마어마해지니까.



그래도 가끔은 이런 하루도 나쁘지 않다. 나 자신에게 맛있는 커피를 사주고, 평소보다 특별한 점심을 대접하고, 집에서 영화를 보며 먹을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하는 날. 이런 날의 행복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오늘 창밖에서는 새들이 짹짹거리고, 봄꽃들은 활짝 피어 손짓한다. 다행히도, 봄의 포근한 바람과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공짜다. 이 봄을 마음껏 즐겨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500억을 가진 부자다. 하얀 책상이 내게 온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