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by 도토리수집가

내 기억에 아마 그의 요리를 처음 맛본 것도 유부초밥이었을 것이다. 한강으로 놀러가던 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하지는 않다. 유부초밥 재료를 파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의 정성스러운 유부초밥이 매우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감동보다는 감탄을 한다. 대충 만들어도 모양이 나오는 게 유부초밥인데 은근 밥의 양을 일정하게 맞추는 게 참 어려운데, 그는 참 예쁘게 한입에 먹을만한 사이즈로 잘도 만든다. 유부가 모자라면 조미김 한봉지를 뜯어 김초밥도 만드는데, 마찬가지로 한 입 사이즈로 동그랗고 예쁘게 참 잘 만든다.

대단하다.


더 대단한 건 사실 김밥이다. 주로 냉장고 털이로 김밥을 만드는 나와 다르게, 그는 김밥재료를 종류별로 준비한다. 햄, 우엉, 단무지는 기본이고, 초록색 재료로 오이나 시금치 등과, 당근, 어묵, 맛살이나 분홍소시지까지 하나도 빼뜨리지 않고 준비한다. 뭐 그렇게 다 있어야 하나 싶은데, 그는 각 재료가 내는 맛이 있다며 그 모두를 준비한다. 밥에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맛을 낸 후 식혀 준비하고, 당근을 매우 가늘게 채썰어(심지어 채칼로 써는 것보다 가늘게) 볶아내고, 다른 재료들도 다 손질하여 썰고 볶고 식혀 준비한다. 그런 다음 식탁 앞에 앉아 커다란 손으로 김밥을 동그랗게 예쁘게 만다. 모양도 맛도 감탄을 부른다.


아이들이 소풍(요즘 말로는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면, 나는 그렇게 예쁘게 만들 자신이 없으니 늘 그의 일정을 확인했다. 출장이라도 가게되면 낭패니까.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출장이 겹치는 날에는 전날 밤 다 준비하고 새벽에 열심히 김밥을 싸주고 가기도 했다. 김밥 싸는 앞에 앉아 한 개씩 집어먹고, 김밥을 열심히 싸고 있는 그의 입에도 하나씩 넣어주며, 애들 도시락을 싸고, 남는 김밥으론 내 도시락도 하나 싸곤 했다. 그렇게 그는 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내 또래에선 흔치 않은 남편이긴 하니까 말이다.


어릴 적부터 먹어서 그런가 애들도 유부초밥도 김초밥도 김밥도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는 김밥보다는 사이즈가 작은 유부초밥이나 김초밥을 좋아했고, 지금은 다양한 재료가 골고루 들어간 김밥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진짜 잘 먹는다. 재료 준비할 때 보면 한 양푼이에 해당하는 밥 양이었는데 어느샌가 다 먹고 없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김밥을 10여년쯤 얻어먹고 나니, 이제 김밥을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토요일 아침, 그가 하는 것처럼 대단하게 재료를 준비하진 않지만,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잘 털고, 내가 사랑하는 당근을 가득 볶아서, 김밥을 싸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토요일에 종종 그렇게 김밥을 싸고 있는 건 아마 그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하숙했었는데, 하숙집에서 토요일이면 아주머니가 김밥을 산처럼 쌓아놓았고, 특히나 김밥, 비빔밥 등 간이 되어 있는 밥을 좋아하는 그는 토요일마다 김밥을 정말 원없이 먹었다는 얘기를 꽤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느지막히 일어난 그는 당근이 한가득한, 냉장고 털이로 만든 나의 김밥을 보고, 자주 들었던 그 이야기를 또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그의 옛날 이야기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였을 뿐이지만, 내 마음에 남은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닐까. 무의식의 영역이라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애들은 엄마가 주말이면 당근이 잔뜩 든, 혹은 냉장고 털이 김밥을 싸주었다고, 아빠가 체험학습 날마다 김밥을 싸주었다고 기억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그들도 김밥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마음에 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식구란 그런 사이인 것 같다. 음식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새로운 기억을 마음에 품는 사이.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