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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하는 에스텔 Aug 29. 2024

프랑스 예술축제에서 묻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목화씨] 2024 샬롱거리예술축제, 아비뇽페스티벌 기행문

2024 아비뇽 off 페스티벌 참가작 홍보용 전단 게시판

2024년 7월, 한여름의 절정에 프랑스에서 2주간 머물며 두 개의 예술축제를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경험한 축제는 샬롱거리예술축제와 아비뇽페스티벌이다.


샬롱거리예술축제는 프랑스의 부르고뉴에 위치한 크지 않은 도시 

샬롱쉬르손(Chalon-sur-Saône)에서 매년 7월에 4일간 열리는 거리예술 축제다. 


축제 기간 동안 샬롱이라는 도시 전체가 거리예술로 물들다 못해 아주 범벅이 된다. 거리예술과 도시가 노른자와 흰 자가 뒤엉킨 스크램블 에그처럼 하나가 되어 거리가 예술 그 자체인 마법 같은 마을이 된다.



제37회 샬롱거리예술축제

CHALON DANS LA RUE

2024년 7월 10-13일


in(공식초청작) 19개 작품

off(자유참가작) 149개 작품

Dawn of Creation(쇼케이스) 10개 작품



1. 아비뇽페스티벌off 참가작 포스터 2.공식아비뇽페스티벌 빌리지 내 표지판 3. 아비뇽오페라극장

프랑스 남부 론강이 흐르는 아비뇽에선 1947년 교황청에서 공연을 올려달라는 요청에 JEAN VILAR(장 빌라르)는 연극 3편을 교황의 성 안뜰에서 공연했는데 이것이 아비뇽페스티벌의 시작이다.


"지역의 국민들에게 전기, 가스, 물처럼 공연예술을 저렴한 값에 공급해야 한다.” 

JEAN VILAR(장 빌라르)


평소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장 빌라르는 

매년 7월 아비뇽에서 연극제를 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올해로 78회를 맞이한 역사 깊은 아비뇽페스티벌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가지 축제로 나뉘어 있다.

예술감독의 뛰어난 안목으로 작품을 초청하는 공식 아비뇽 페스티벌과

1966년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해 전 세계 예술가들이 아비뇽에 극장을 대관해서 

축제에 참가하는 자유참가 형태인 아비뇽 off이다.

아비뇽 공식 참가작을 보통 in이라고 지칭하는데 아비뇽 in과 off는 운영사무국도 다른 구분된 축제이다.



제78회 아비뇽페스티벌

The Festival d'Avignon

2024년 6월 29일-7월 21일


in(공식초청작) 33개 작품

off(자유참가작) 157개 작품


공식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장 중 하나인 아비뇽 교황청

올해 7월, 공연예술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2개의 축제(사실상 3개의 축제)를 경험하며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은 축제에서 공연을 소개하고 홍보하고 있는 방식이었다. 샬롱거리예술축제는 프로그램북으로 공연을 확인할 수 있고 축제에서 제공하는 어플은 없었다. 아비뇽축제는 공식축제와 아비뇽 off 각각 어플이 있어관객들은 핸드폰으로 공연 일정이나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티켓 예매도 어플로 할 수 있었다.


앞서 작성했다시피 이 축제들은 규모가 꽤 큰 편이라 in과 off의 공연을 모두 합치면 거의 200개에 달한다

그런데 내가 놀라웠던 점은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 있어서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렇게 많은 작품들 중에서 어떻게 내가 볼 공연을 선택할까?

글을 시작하고 이제야 고백하자면,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 한다.


10년 전 파리를 혼자 여행할 때는 내가 프랑스어를 못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리지앵들은 프랑스어를 못하는 외국인에 익숙해서인지 먼저 영어로 도와줄까 하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내가 영어로 질문하면 수려하진 않더라도 애써서 영어로 답해줬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내가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서 공연에 대한 후기나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고

중요한 건 볼 수 있는 공연도 제한적이었다.

대사로 진행되는 작품들이 해당됐는데 장르를 불문하고 대사가 없는 작품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경험담을 하나 풀자면, 

아비뇽 off 어플에 들어가서 볼 공연을 찾다가

무용이나 서커스같이 몸을 쓰는 장르의 작품을 선택하면 공연을 보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소극장에서 하는 한 서커스 공연을 예매했다.


공연 설명에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에게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작했다고 적혀 있었고

페르난도 페소아에 관한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러닝타임 50분 동안 서커스는 모든 장면 합쳐서 8분~10분 남짓 정도였고

거의 다 아티스트의 대사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절망적..)


in과 off 모두 50년 이상 된 축제이고 예술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모두 들어봤을 

그 아비뇽페스티벌에 외국인이 내가 처음인 것도 아닐 것이고...

심지어 프랑스어를 못하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로 된 공연책자도 따로 있었는데,

어플에 외국인이 봐도 재밌을 공연 카테고리를 만들어놓은 탑 10이 왜 없는 것일까 답답했다.

그러나 그날 빌리지 off에 가서 순위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빌리지 off는 아비뇽 off 축제의 티켓부스와 종합안내소, 공공화장실, 간이서점, 매점 등이 준비되어 있는 축제 쉼터 같은 곳이었는데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한 중년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이 부부가 아주 유쾌하고 친절하셨는데, 빌리지 off에는 직접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홍보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한 30분 앉아있으면 적어도 5번 정도는 온다.

쉴만하면 오니 꽤나 귀찮은 방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귀찮다고 화내는 사람이 없어서 놀랐고

심지어 이 부부는 아주 친절하게 홍보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다.

홍보를 다 들으면서도 아내분은 책자에 줄을 치며 그날 볼 공연을 찾으시는 건지 열심이셨다.


꽤 오래 같이 앉아있으면서 눈인사하다가

오늘 볼 공연은 결정하셨냐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비뇽축제에 처음 왔다는 이 부부가 본 공연, 앞으로 볼 공연을 체크해 두신 걸 보여주셨는데

나는 프랑스어를 못 해서 어떤 공연을 봐야 할지 너무 어렵다고 말하니 

어제 본 공연이 아주 좋았다며 책자에서 공연을 찾아서 추천해 주셨다.

무언극이고 영국식 유머로 이루어진 유쾌한 공연이라고 설명도 덧붙이면서.


아! 
작품에 순위를 매기지 않으니 사람들은 도전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실패와 성공을 공유하기 위해 사람과 대화한다. 
이것을 반복해 우리는 취향이라는 걸 찾는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아주 외로웠던 나는

이 중년부부와의 대화 동안은 외롭지 않았고 축제와 하나가 되었다고 느꼈다.



90년대생인 나는 내가 살아온 환경이 취향을 만들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인기가요, 뮤직뱅크로 매주 1등 가수를 확인했고 멜론 탑 100을 듣고 자랐다.

고등학교에 갔더니 공부 외에 좋아하는 것은 다 시간낭비였고 심지어 예체능이었던 나는

수능과 내신공부에 전공까지 연습하느라 매일매일 24시간이 모자란 입시생활을 했다.


대학에 가서도 비슷했다. 옷을 살 때도 인기순. 웹툰을 볼 때도 인기순. 

이제는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로 일상을 관음하고 친구 선물은 뭘 하면 좋을지, 화장품은 뭘 살지, 

하물며 일기는 어떻게 쓰면 좋은지 유튜브로 추천을 받는다.


모두가 입는 대로 모두가 듣는 대로 모두가 사는 대로 살면

나라는 사람의 취향은 어떻게 생길까.


취향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뜻 취(趣) + 향할 향(向)



나는 2주간 예술축제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내 예술취향을 감각했다.


나는 개인적인 주인공의 서사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좋아한다.
어둡고 무거운 작품보다는 유쾌한 작품이 좋다. 그렇다고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 앉아서 보는 것도 좋지만, 극장을 나와 거리에서 배우와 가까이 호흡하는 작품이 좋다.
함께 공연/축제를 경험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생기는 일시적 커뮤니티를 경험하는 게 좋다.



나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취향을 감각하길 바란다.

옷에도 집에도 말에도 삶에도 묻어나길 바란다.

실패하기 싫어 모두의 선택을 따르기보다는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하길 바란다.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각자의 취향을 찾아가길 바란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가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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