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종차별, 어디까지 만나보았니?
오늘은 조금 심오하고도 우울하지만 꼭 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꺼내본다. 바로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
나는 한국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아일랜드에 왔다. 그렇게 9년을 살았고 그 시간은 매우 많은 행복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맘먹는 적지 않은 양의 '인종차별'의 시간이 있다.
그렇게 그놈의 '인종차별'에 질리고 질려, 끝장을 내보자는 심정으로 대학원 인권학과를 들어가 졸업한 후, 지금까지 나는 생계와 더불어, 이민자들을 위한 자원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그런 내가 언젠가는 말하고 싶었던 너무 어둡지만은 않지만 생생하고 뼈 있는 이야기.
몇 개월 전 한국에서 캐나다로 유학을 간 친구와 오랜만에 영상 통화를 했다. 친구는 진지하게 나에게 자신이 경험한 무례한 백인 은행원 이야기를 하소연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
친구가 학비와 생활비를 위한 통장을 온라인으로 개설하였는데, 이름을 정확히 기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이 '백(Paek)'이 아닌 '박(Park)으로 기재되어 정정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 어렵게 예약하여 방문한 은행에서 담담 은행원은 이름 정정을 마친 후, 다짜고짜 친구의 이름으로 요청하지 않은 신용카드를 만들고는 사인을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원치도 않는 그 카드를 만들며 그 은행원은 시종일관 무례한 태도와 억양, 말투로 자신을 대하여 매우 화가 났고, 내가 원어민, 백인이 아니기에 이런 대우를 하는가 싶어 속이 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고 항의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며 친구는 이윽고, '혹시 내가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내가 문화적으로 맥락이 달라 오해를 한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기분 나빴으면 그건 그냥 그 사람이 무례했던 거야.
네 영어실력과는 상관없어'.
지난 9년간 아일랜드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일랜드라는 공간이 아직 이민사회가 성장하고 있는 과도기라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이나 성숙도가 높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워낙 백인중심주의가 강한 유럽사회이다 보니 아일랜드 주변국 유럽여행을 하며, 혹은 아일랜드 일상에서 대놓고 벌어지는 인종차별 혹은 이게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조차 모호한 상황들이 잦아 마음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곤 했다. 특히, 갓 정착을 한 워홀러들이나, 정기적으로 도움을 드렸던 난민분들 그리고 유학생들은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피해를 겪으면 곧잘 자신을 탓하곤 했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더더욱 '내가 그때 하필 거기서 핸드폰을 하고 있어서' 혹은 '내가 그때 하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정확히 계약서나 구두계약 때 확인하지 않아서' 라며.
나 또한 대놓고 불쾌한 인종차별 그리고 모호하지만 화나는 미세한 인종차별들에 한동안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두며 자책이란 자책을 정말로 많이 했었다. 많은 시간 그렇게 내가 상처받거나 불쾌감을 느꼈던 상황들 혹은 신체적으로 위협을 당하거나 수치심을 느꼈던 상황들의 원인들을 나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다음번엔 내가 좀 더 변화하면 그 상황들이 바뀌거나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신이 영어를 모국어만큼 잘해도, 인종차별은 언제고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올 것이며, 당신이 짧은 치마를 입지 않고, 아무리 긴 바지를 입고 운동복 차림으로 밖을 나가도, 이곳에서 당신에게 휫캣슬링과 희롱을 할 사람들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인종차별과 혐오적 생각을 갖고 사는 '그들'이지, 피해경험으로 불쾌감과 수치심, 속상함을 느끼는 '내'가 아니다. 인권학에서는 이 개념을 '피해자 중심 접근 (A victim-cetred approach)라고 부른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중요시 이야기되는 말이 바로 '피해자 중심 접근 방식(A victim-centred approach)'이다. 피해자 중심 접근은 모든 사건의 해결과 대응에 있어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 존엄성을 가장 최우선에 두는 접근 방식 (UN,2023)으로 본래 성폭력과 관련한 피해자 지원 및 대응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현재에는 혐오범죄에도 적용을 넓혀가고 있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내 친구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캐나다라는 다양한 인종이 사는 나라에서, 특히 대학가의 은행 지점이라면, 당연히 너무 많은 해외유학생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이미 만나왔고 고객으로 두고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그 지역의 고객이다. 그렇다면 해당 은행에서 내 친구와 같은 외국인 고객이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보다 상세하고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는 것 또한 그 은행직원의 업무범위가 아닐까?
물론 대학원에서도 수업에 참여하고 토론하고 논문을 읽을 정도의 내 친구의 영어실력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는 논외로 내 친구가 속상하여 며칠을 고민하고 그 순간을 곱씹고, 나에게까지 이야기할 정도의 속상함을 느낄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업무에 소홀하고 고객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마 내 친구와의 대화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껏 억울함과 속상함은 우리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은 쉽게 그 일을 잊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대부분 부당한 상황을 이야기하여도,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백인이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러한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제를 공론화하는 경우에도 피해를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어려워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들도 많다. (전혀 공감을 못하거나 왜 문제인지 이해를 못 하거나 심한 경우 피해자 탓으로 돌려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억울한 피해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네가 화가 났다면 분명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야. 네 잘못도 부족도 아니야.
라고 말해 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깊숙이까지 이러한 불쾌감과 속상함이 나의 하루하루를 망가뜨릴 수는 없기에 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광대'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도 나의 유머소재를 쌓는다.
광대가 되어 웃기는 것이 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되냐고? 그건 바로 '풍자'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심각해지지 않으면서 웃으면 비판할 수 있으니.
물론 심각한 신체적 위협이 드는 상황에서의 인종차별라면 해당하지 않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매뉴얼은, 내가 해당 상황에서 저항하여 더 큰 위협을 느끼게 될 여지가 있다면, 해당 공간을 벗어나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며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여야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혹은 여행 중, 언어폭력으로 다가오는 차별적인 태도들, 미세하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차별을 행하는 태도들((microracism / microaggressions)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여 바로잡기도, 화를 내기에도 여간 에너지 낭비일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이 '유머'이다.
이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다. 내 흑인아이리쉬 친구들과 퀴어친구들에게서 배운 연륜과도 같은 것이다. 아주 산뜻하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에게 인권감수성 없이 치고 들어오는 그 불쾌한 차별적이고 인종적 하대를 일삼는 그들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웃으며 비판해 보자.
예를 들어, 파티에서 만난 안면하나 없는 그 백인이 갑자기 다가와 거만한 말투로 더블린 엑센트로 대화하고 있는 나에게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하면? 나는 우리 동네는 'Dublin 12 혹은 Walkinstown'이라고 답한다. 이 말은 본래 뜻 때로 '너는 어디서 왔니?'라는 뜻의 질문으로만 쓰이진 않는다. 특히 상대방이 해당 지역의 엑센트나 유창한 언어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맥락에 따라 미세한 차별의 의미로 사용된다. 질문자가 백인, 답변자가 비백인이라면, 질문자는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백인들의 나라임을 가정하고, 답변을 해야 하는 사람이 해당 나라 사람 혹은 원주민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 하에 물어보는 질문이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 상대방을 타자화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미세한 인종차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부분이 질문자들은 자신이 질문한 것이 부끄러운 질문임을 알고 화제를 돌리지만, 끈질기게 'Where are you really from? (그래서 네 진짜 고향은 어딘데?) '이라고 묻는다면, 'Is it a party or ethnic profiling? ( 지금 이거 파티 중인 거야 아님 취조하는 거야?) Oh, I didn't know you were a police officier, your friend said you were a student!' (네 친구가 너는 학생이라고 했는데 네 직업은 경찰인거지?)라고 '웃으며' 받아치는 것이다.
그럼 이 짧지만 숨 막혔던 토크쇼는 끝이 나고 광대인 나는 스테이지에서 퇴장한다. 나와 관중은 웃지만, 그중엔 질문자를 포함 웃지 못하는 '그들'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무대도 성공적.
이야기로만 풀기에 부족한 듯하여,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BBC의 ' Where are you from?' 게임이라는 영상을 함께 넣어 보았다. 한국어 자막 또한 지원되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에게도 오늘 하루, 아무도 우리를 광대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
링크: https://youtu.be/RU_htgjlMVE?si=7PDVQS-el5cKFhUe
출처: BBC Three Youtube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가 그런 무례한 주류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나 스스로를 한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 주변에도 이주민들이 참 많이 살고 있다. 우리는 해외에서 소수인 아시아인이지만 동시에 한국사회에서의 주류민족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