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해외취업] Sideway로 가도 괜찮아.
지난 8년간,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는 다양한 이민자 노동자들을 만나왔다.
특히, 더블린에는 다양한 글로벌 IT 회사(아마존 웹서버, 구글, 메타 등)의 유럽지역(EMEA) 본사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직종의 대기업(메타, 애플, 틱톡, 구글 등)에서 일하는 이민자들을 만났었다.
오늘은 그중 애플에서 만났던 15년 차 애플 매니저 앤, 그리고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
앤 하고는 면접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리쿠르터로부터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때 면접관으로 만난 사람이 앤 이였고 우리는 45분간의 온라인화상회의를 통해 일대일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은 형식적이었으며 별도의 특별한 점은 없었다. 면접관이었던 팀장 앤과 면접자였던 내가 서로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각각 마친 후, 앤은 5-6개의 질문들을 내게 하였고 나는 준비해 왔던 대로 답변을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앤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면접이어도 궁금한 것은 못 참기에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한 직장(애플)에서 15년을 근무할 수 있나요?'
앤은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애플에서 계약직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유럽지역과 글로벌마켓을 관리하는 팀의 리더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MZ 세대가 아니더라도 아이티기업 이직은 1-2년 주기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15년간 한 아이티기업에 재직했다면, 승진을 자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도 사실 2-3년 주기로 이직을 했었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앤의 답변은 간단히 말해 이러하다.
앤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커리어와 인생여정은 사이드웨이(Sideway)이지 직선도로가 아니더라'.
캠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사이드웨이(Sideway)란, '왼쪽 또는 오른쪽 방향으로 난 길, 또는 측면' 등을 일컫는 단어이다. 즉, 정면 혹은 직진이 아닌 방향성, 돌아가는 길 혹은 몸을 틀어서 방향을 바꾸어서 지나가는 길 등을 이야기한다.
커리어 대해 앤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이드웨이란, 이런 것이였다.
시작했던 직무가,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직무 혹은 꿈의 직업 (Dream job)은 아니었지만 그때그때의 목표와 니즈를 충족하면서 (실제로 처음 일을 시작하던 그때의 앤의 목표는 고국인 독일을 떠나 새로 정착한 아일랜드에서 돈을 벌고 생활을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고 했다.) 걸어가는 것, 하지만 동시에 주어진 업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 가고, 꾸준히 개발해 나가는 길이였다.
직선도로로 당장의 원하는 것들을 바로바로 이루는 그런 커리어 여정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있었고 돌이켜보니 나의 시작지점보다 멀리멀리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고 했다. 그 여정은 길었지만 돌고 돌아 내가 목표했던 지점 가까이에 다가와 있더라 라는 이야기였다.
사이드 웨이로 돌고 돌아가는 그 과정은 단순히 오래 걸리는 길, 시행착오가 많은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다만 천천히 내 페이스로 걸어가는 나만을 위한 낭만적인 길이다.
나 또한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간 근무하는 것으로 내 여정을 시작했다. 그 후엔 사회복지와는 연관성이 낮은 국제관계학과 국제법 관련 학문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을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코로나로 꿈꾸던 국제기구 진출이 가능하지 않게 되자, 전혀 다른 아이티기업에 입사하였다. 그렇게 지난 8년간 수많은 사이드웨이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내가 걸어온 진로방향에 좌절하고, 한 분야에서 깊게 자리를 잡고, 자기 분야에서의 명성을 쌓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동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그 모든 20대의 커리어를 후회하지 않는다. 더 이상 부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사이드웨이에는 낭만과 과정의 행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로 커리어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빠르고 깊게 아일랜드 로컬 문화에 대한 이해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누구보다 자유로운 언어구사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치열하게 영어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빠르게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관계학과 국제법을 기반으로 하는 인권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대학원 동기로 만나고 교류하며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덧붙여 그때 연구와 논문 읽기 쓰기, 토론 등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 후 전혀 다른 분야인 아이티 기업에서도 보고서 쓰기와 발표하기, 리서치하기 등을 진행할 때, 대학원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원어민 아이리쉬들 보다도 더 퀄리티 있는 연구보고서와 리포트를 쓸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사이드 웨이로 돌아 돌아가는 길에는 낭만과 과정의 행복이 있었다. 커리어만을 바라보고 직진해 갔더라면 서로 마주할 일조차 없을 사람들과 배움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 전체를 만들어가고 성장시키는데 큰 가르침이 되어 주었다. 그 성장은 커리어라는 나의 한 부분을 채우는 것보다는 '나'라는 전체를 채우기에 조금은 느렸지만, 값졌다.
예컨데,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했던 경험들은 근무지나 미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Do you want some cup of tea? (차 드실래요?라는 말로 아일랜드에서는 한국에서 '밥 먹었어?' '식사는 하셨어요?' 만큼이나 자주 쓰이는 인사. 주로 내 업무공간이나 사적공간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하는 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와 문화를 배우게 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공부들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 젠더, 나이, 출신지역을 가진 사람들을 동료와 고객, 파트너로 만났을 때 어떤 자세로 협업하고 대화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튜드와 처세술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사이드 웨이를 갔기에 그 길목에 놓여있는 풍경들을 느끼고 경험하며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의 아름다움, 푸르른 나무들과 그 길목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들을 모두 눈에 넣으며 내 여정을 걸어갔기에 돌이켜 보면 성장통은 있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였다.
지금 당장 내 커리어가 불안하고, 남들보다 승진이나 원하는 커리어 목표에 닿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나는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금은 느리게 느껴져, 때로는 절망적이고 초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사이드웨이를 걷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더욱 꽉 채워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기에,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 과정의 아름다움과 배움을 충분히 느끼면서 걸어가도, 그 걸음을 멈추지만 않고 꾸준히 걷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목표들에 수많은 추억과 경험을 한 바구니 들고, 도착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 최근 보았던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인기 동영상인 Yoann Bourgeois라는 예술가의 작품을 함께 넣어 본다. 작가의 '인생(Life)'에 대한 표현이며, 오늘 이야기한 Sideway와도 닿아있는 영상이기에 당신에게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_DA3dgRS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