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사관이 진료실에 들어온다. 피부는 그슬렸다기보다는 익은 듯한 갈색이고, 귀에는 아무리 봐도 신형이라고는 보기 힘든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는 주머니에서 봉투와, 몇 가지 다른 물건을 꺼내더니 그중 내게 다른 병원에서 검사한 검사 결과지를 건넨다(본인이 말하는 것보다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중증 수면무호흡증이다. 검사 결과를 읽고 나는 다시 환자를 슬쩍 바라본다. 아주 비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과체중 언저리에는 있을 듯하다. 평범한 문진이 시작된다. 어떤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고혈압이나 당뇨는 없는지... 얼굴과 코, 목구멍을 살펴본 후 나는 그에게 체중 감량과 양압기 치료를 권유한다(양압기는 잠잘 때 차는 마스크 같은 장비이다. 본체는 침대 옆에 두는데 가습기에 마스크를 연결해 놓은 모양새를 상상하면 비슷하다).
여기까지는 이비인후과 의사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아주 전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환자는 양압기에 대해 묻더니 갑작스러운 비전형적 반응을 꺼내든다.
"양압기는 제가 쓸 수가 없을 것 같고, 체중 감량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왜죠?"
"제가 영내숙소가 따로 있어 집에서 잘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고, 훈련 때문에 숙영도 많습니다. 그런 장비를 매번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요?"
"체중 감량은요?"
"..."
"그러면 수술로 치료하셔야 하는데... 환자분의 경우는 수술을 권장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전형적인 상황으로 돌아와, 수술에 대한 평범한 설명이 이어진다. 환자의 코와 목 진찰 결과에 덧붙인 수술 방법을 설명한다. 환자는 이 설명이 더 길어질까 두려운 듯 급하게 말을 끊는다.
"양압기나 수술 말고 약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요?"
"효과가 있을만한 약이 딱히 떠오르지 않네요"
"결국 아무것도 안 되는군요"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비록 쓸 수 있는 날이 1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더라도 양압기를 강력하게 권유하여야 할까? 아니면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교과서적으로는 이 환자에게 권유되지 않을 수술을 해야 할까? 체중감량은 왜 포기했을까?
이번에는 다른 환자 얘기를 해보자. 20대의 강인한 인상을 주는 여자 환자다. 3개월 전부터 오른쪽 목부위가 저리고 아프다고 한다. 관절통이나 근육통의 느낌이 아니라 찌릿하는 느낌의 통증인데, 하루 종일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2-3회 정도만 발생한다고 한다. 앓고 있는 질환도 아무것도 없고, 다친 적도, 다른 증상도 전혀 없다. 목을 만져보고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아무런 특이 사항이 없다.
환자가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여린 말투로 말한다.
"증상의 원인이 뭔가요? 혹시 안 좋은 질환일수도 있나요?"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악성 질환의 경우 워낙 온갖 증상들을 일으키긴 합니다만, 환자분 같은 경우는 연령대도 낮고, 다른 증상도 없구요(정말 아무 증상 없으신게 맞죠?)"
"CT를 찍어보면 원인을 알 수 있는거죠?"
"원인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 찍지 않는게 맞나요?"
내가 말장난을 한다고 느끼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걸!
진료를 마친 나는 인터넷에 접속한다. 세계의 수많은 의사들이 쓴 사례보고(Case report)와 리뷰가 나온다. 그러나 이 사례들 중 어떤 것이 내 환자의 사례일까? 브라질의 60대 환자에게 발생한 비특이적 목 통증이 내 환자와 동일 질환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환자는 내가 준 약을 며칠 먹고 증상이 호전되었다. CT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찾아 온 그녀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환자가 원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가능성의 나열이 아닌(신경 충돌 때문일 수도 있고...갑상연골 때문일수도 있고...) 명확한 하나의 답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해답을 줄 수 없었다.
6년간의 의과대학 교육을 통해 한 명의 의사가 만들어진다. 어느 학문과 다를바 없이 의학은 기초가 되는 학문에서 시작하여, 그 응용과 세부 학문으로 뻗어나간다. 기초 생물학과 화학을 배우고 생리학과 병리학, 해부학을 배운다. 이어 호흡기, 감각기, 근골격계 등 각 계통의 질환들을 배운 후 본과 3학년이 되면 대학병원에서 실습 교육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의사가 심부전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생물학(심근 세포에 대한 지식, 호르몬), 생리학(정상 심장의 박동, 혈역학에 대한 이해), 병리학(심부전이 발생했을 때 심장조직과 기능, 혈액의 변화), 해부학(심장의 구조와 주변 혈관)에 더불어 순환기의 질환들(심부전의 진단과 치료)을 배우고 최종적으로 대학병원에서 그 환자들을 대하는 교수들의 진료 과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초년 시절에 고등학교 친구에게 토로했던 불만이 기억난다.
"내가 배우는 건 다 정해져있고 가이드라인화 되어 있어서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 뭐랄까, 거대한 의학의 오버마인드(Overmind)가 있고, 나는 그 대리인, 아니 뻗어나온 촉수 하나에 불과한 느낌?"
세상에, 그때만 해도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다. 매주 치던 시험에 나오듯, 증상 A와, 검사수치 B, 그리고 CT에서 보이는 C을 조합하면 진단과 치료의 정답지는 정해져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내 동료들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가 어떤 의사이던, 진단과 치료는 뻔하게 정해져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대체한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달라질 것이 하나 없어 보였고, 난 그것이 불만이었다. 수많은 명의들은 거대한 의학의 시스템 속 지식과 법칙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자, 그것을 추가할 자격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 당시 내게 있어 의사의 성장은 의학적 지식의 축적이었고, 내 미래에는 계속되는 축적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의사 면허를 취득했을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고,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두려웠다. 그러나 인턴 1년과 전공의 4년, 그리고 군의관 3년을 거치면서 나는 의대생 시절의 저 두루뭉술한 인식, 그리고 의과대학의 교육이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들과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들에서 커다란 빈틈들을 발견했다.
증상 A와 검사수치 B, CT의 C따위는 없었다. 의료는 변수를 넣고 결과를 확인하는 자판기가 아니라, 성냥개비 4개로 정육면체를 만들라는 류의 퍼즐에 가까웠다. 모든 정보는 항상 부족했고, 모든 검사는 항상 오래 걸렸고, 환자들은 약속한 듯이 수많은 금기증들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한 거짓말들을 하며 의사의 직관을 회피했다. 의과대학 시절, 수많은 시험의 문제는 이런 식이었다.
"40대 환자가 갑작스런 복통과 토혈로 내원하였다. 2주전 췌장머리암으로 췌십이지장절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혈압과 혈액 검사는 어떠했다. 배에는 압통이 있다. 다음은 CT와 혈관조영 사진이다. 다음 치료는?"
어떤 문제도 이런 식으로 묻진 않았다.
"40대 환자가 갑작스런 복통과 토혈로 내원하였다. 그는 만취상태로 행패를 부리고 있으며 채혈은 3번째 실패했다. 그는 출혈성 질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만성 간염환자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보호자는 연락이 되지 않는데 이 사람이 말한 번호가 보호자의 번호인지도 의심된다. 당신은 뭘 할래?"
설령 모든 정보가 주어진다 해도, 가장 적절한 치료를 정해주는 법칙 역시 없었다. 언제나 내게 주어지는 것은 표준적인 치료와 통계들이었다. 이런 환자에게 가장 흔히 쓰이는 항생제가 무엇인가? 이 종양의 수술적 절제 안전 마진(margin)은 몇 mm인가? 하지만 표준적인 치료는 있어도 표준적인 환자는 없다. 가이드라인과 컨센서스(학계 대다수가 동의한 공통된 의견)에 잘 따르는 것이 무조건 최선의 치료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서두에 언급한 환자의 경우처럼 해야 하는 치료와 할 수 있는 치료 사이에 환경적 간극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 무조건적으로 믿던(그리고 그 내용을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떠벌리던) 논문들에도 맹점이 있고, 어떤 논문들은 다른 논문들만큼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것도 배웠다.
게다가 이러한 진단과 치료 선택에 뛰어난 최고의 명의들도 의학의 한계를 넘어설 순 없었다. 학생 때는 기적처럼 보이던 치료들이 실제로는 불완전하고, 까다롭고, 고통이 동반된다는 점. 마치 신처럼 보이던 교수님들도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으며, 놀랍게도 그 애매한 무지 위에서도 치료는 계속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한동안 실망했다가, 차차 그것이 의학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빈틈들은 책이나 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짧은 기간 내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의사로서 나는 그 틈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고,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이 어려움이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 때문이라 여기고, 지식으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아무리 교과서와 데이터베이스를 헤매고 다녀도 어떤 공백들은 메꿔지지 않았다. 이제는 이 어려움의 상당 부분이 '내가 아는 것들'의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견고하다 믿었던 내 발 밑의 기반을 재발견한 것이다.
크레바스(Crevasse)는 빙하에 만들어진 골짜기나 틈을 말한다. 다른 지질학적 골짜기들과 달리 크레바스는 응력에 의해 빙하가 찢어지듯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틈이 얇더라도 매우 깊어 빠진다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틈이 얇기 때문에 눈이 내렸을 때 쉽게 숨겨진다. 야심 찬 젊은 의사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빙하(의학)의 견고함을 믿고 섣불리 발을 뻗다 얇은 눈의 장막 아래 숨겨진 깊고 깊은 공백, 크레바스를 만나게 된다. 이 크레바스는 하나가 아니라 끝없이 계속된다. 이 수많은 크레바스들을 바라본 짧은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을 나는 쓰게 되었다.
의학적 지식과 의사의 지혜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틈, 과학과 의학 사이의 철학적 골짜기, 기술이라는 환각이 눈처럼 덮어놓은 함정들, 환자들이 속한 사회와 이상적 의료의 간극. 그 수많은 크레바스들에 빠지지 않으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학은 완벽하지 않다'라는 부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완벽이라는 단어와 의학은 너무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완벽하지 못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렇지만, 그 A도 완벽한 사업가는 아니야" 뭔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일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느낀 의학은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의학은 한쪽 발엔 운동화를, 다른쪽 발엔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망치 대신 숟가락으로 못을 박고 다니는 사람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래서 단어를 조금 바꾸었다.
'의학의 불완전함'
그런데 이번에도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다. 의학의 깊은 크레바스를 바라보는 나는 두려움과 불편감에 차 있었지만 동시에 의학과 의사, 세계에 대한 어떠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주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그 미완을 드러냄으로서 강한 신뢰를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무결한 구조의 폐쇄성과 비교되는, 거대한 불완전성이 품고 있는 장엄함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의학이라는 빙하의 틈을 메우고자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메울 수 없는 의학의 불완전함과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 도입부에 나온 두 환자의 이야기는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환자에 대한 내 기억을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