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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pr 26. 2023

울프와 함께 춤을

미래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울프의 편지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그만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동생이 있었다면

그녀는 과연 오빠만한 명성을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위와 같은 가정적 화두를 당돌하게 내던지며 자신이 바로 그 여동생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18세기에 있어서의 문학과 사회》의 작가로 이미 명망있고 저명한 지식인이었기에, 여러 분야의 지적 호기심을 배양시킬 충분한 자양분이 그녀의 지근거리에는 항상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를 이용할 수 있었고, 부모님이 교류하는 유명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하면서 그녀의 문학적 소양은 만개하여 그 암향(暗香)을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 이번에 살펴볼 『자기만의 방』은 그녀의 대표적인 에세이로 1928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자 대학인 뉴넘 칼리지와 거턴 칼리지에서 울프가 했던 강연 일부를 출간한 것이다. 비교적 단편의 에세이로, 출간 당시보다 오히려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 페미니즘의 선구자격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울프의 시대는 우리에게 있어서 조선 후기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라 볼 수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의외로 서양이라고 할지라도 마땅한 높이가 아니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가 뉴질랜드이며, 이도 거의 20세기가 다 되어버린 1893년이라는 사실은 짐짓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후 1902년에 호주, 1906년에 핀란드, 이후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 당시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를 일찍이 꽃피운 국가에서 여성 참정권이 늦은 것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울프는 위 칼리지에서의 강연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한 주제를 훗날의 어음으로 바꾸어 놓고, 최대한 단순하고 현실적인 전제조건을 제시하며 차라리 ‘여성과 자립’이라는 주제에 어울릴 것 같은 아래 사양(仕樣)을 권유한다.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


하는 것입니다.     




 울프는 애초에 ‘여성과 픽션’은 (당시의) 현대문학으로는 논할 만한 내용이 아니며, 이는 마치 수업에 잘 참여하지도 않는, 기본 자세도 안된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울프는 모더니즘 문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특히 ‘의식의 흐름’이라 불리우는 기법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기법으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말해, 자유연상을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떠오르는 것을 서술해나가는 기법인데, 이 서술에는 어떠한 논리나 체계가 없기 때문에 산만한 홑문장으로 이루어진 글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가 현재 우리나라 대학들이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VR 캠퍼스투어’와 같은 시점으로 옥스브리지 구석구석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면, 그녀의 천재성과 비범함에 찬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등 자신의 명성을 확립시켜 준 울프의 작품들은 단순히 잘 쓰여진 것에서 더 나아가 총 27권의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계시록이라는, 차원을 달리하는 한 권의 묵시록 마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울프는 남성성을 혐오하였고, 또 두려워하였다. 남성은 여성을 거울삼아 자신들의 거만과 독단을 우월함으로 착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였고, 단순히 남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과대평가 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울프는 단지 남자들을 싫어하고 여성만을 옹호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의 장점을 모두 가진 ‘양성성’을 지향하였고, 이것의 영향이었는지 양성애자이기도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 그녀는 어릴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왜곡된 남성상을 지니게 되었고, 사실 이것이 그녀를 문학적 위대함으로 이끌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불안함의 결정체로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1912년 그녀는 부부관계를 하지 않을 것자신의 전업작가 활동을 위한 지원을 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지만 이는 진정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닌 집필을 제대로 하기 위한 최적화된 생활방식의 거래에 불과했다.           



그대에게,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요. 그 끔찍한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에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력을 잃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주었어요. 누가 했더라도 당신보다 낫지 않았을 거에요. 이 병이 오기 전까지의 우리들 보다 어느 두 사람도 더 행복하진 못했을 거에요. 이제는 견딜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 내가 없는 것이 당신에게 나을 것이라는 걸 알아요. 나 없이 당신이 잘 해 나가리라는 것도요. 봐요, 이제 글도 제대로 못 쓰겠어요. 읽을 수도 없어요.      

   

  

 울프는 요즘 말하는 소위 ‘남사친’ 같았던 남편 레너드에게 위와 같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강물에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1895년에 어머니를 잃은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04년 아버지를 잃자 급속도로 악화된 정신질환과 우울증, 의붓오빠에게 어린 시절 당한 성적 학대 등으로 이미 그녀의 영혼과 마음은 피폐해졌고,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영국침공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실수 없는 자살로 그녀를 차분히 안내하고 말았다.     


 울프는 당대 최고의 지적인 문화를 향유하였고, 또한 초차원적인 의식의 흐름 기법과 미래를 통찰하는 예리함으로, 어찌보면 오빠보다 나을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우리는, 불안한 음감의 협주곡인 배경음악의 조력을 더하여, 영상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것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라도 마치 혈육이 낭자한 잔혹 스릴러와 같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그녀는 괴로웠고 불행해했다. 불행했고 괴로워했다.


 『자기만의 방』은 당시 전적으로 집필을 위한 결혼생활과 성공한 작품들의 인세로 인해 생활의 자립을 위한 경제력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울프 자신을 위한 글은 아니었다. 이 글은, 오늘날과 같이 여성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활동하는 시대를 예견한, 바로 미래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그녀의 격려편지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가엾은 버지니아 울프는 미래의 여성들에게, 남성과 함께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나아갈 선택권을 제시해 주었고, 현재의 여성들은 이미 울프와 함께 마음껏 춤을 추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필자가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수작이라 생각한다.



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울프가 강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울프가 살아있다면, 스벅에 가서 인생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물론 난 뜨거운 아메리카노.  울프누님, 잘마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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