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에 대한 단상
내 스스로 확신한다면 나는 남의 확신을 구하지 않는다.
- 에드거 앨런 포 -
평소 즐겨 읊조리곤 하던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위 명언을 떠올리며 대학진학, 취업, 결혼 등 나름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사건들을 머릿속에 차례로 소환해보는 즐거움을 느껴본다.
돌이켜보면 자신만의 결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고, 필자의 경우 중요한 선택에서만큼은 부모님이 대주주 지분을 갖고 계셨다. 대체로 필자의 결심과 부모님의 조언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기에, 한동안의 대치 끝에 브라질 축구대표와의 역대 경기전적과 같은 비율로 부모님께서 승리를 가져가시곤 했다. 인생이라는 ‘배’의 키를 부모님과 함께 쥐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키를 쥐고 있는 완력은 거의 언제나 당신들의 팔에서 나왔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수많은 주변인들이 있다. 심지어 이따금씩 예측불허의 광고·스팸 전화나 문자들도 우리의 결심을 흔들기 위해 승산없는 칠전팔기(七顚八起)를 지속하곤 한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도 오롯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만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의도와 생각, 그리고 결정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절충되었고, 왜곡되었고, 혹은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변이를 일으켜왔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에세이 『자기 신뢰』를 탐독하기 전, 필자는 위와 같은 생각으로 첫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글의 전개로 인해 이 책이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종교, 예술, 정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었다. 『자기 신뢰』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은 에세이가 아니었다. 거대담론(巨大談論)을 내포하는 일종의 사상서였다. 필자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에머슨은 고대 중국의 사상가 ‘장주(莊周, BC 369~BC 289)’에 버금할 만한 파급력을 지닌 인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개인적 차원의 자기 신뢰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과 신, 그리고 자연이 결국 하나라는 범신론적인 초월주의(초절주의) 운동에 앞장섰는데, 인류를 신의 경지에까지 올림으로써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존재들이야!’라는 자신감을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에머슨은 7대에 걸친 개신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그도 결국 하버드 대학 신학부에 진학하여 반 삼위일체적 개신교회인 유니테리언 보스턴 제2교회의 부목사가 되었지만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사상을 가진 행보로 인해 더 이상 목사직을 맡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가 그의 일생의 바탕인 관계로 글은 신(神)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신과 협업을 하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결국 동양의 힌두교를 접목시켜 ‘내 안에 신이 있다’는 개별적·인격적인 아트만과 우주적·중성적인 브라흐만,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범아일여, 梵我一如)이라는 사상의 접근에까지 이르른다. 이는 뉴에이지 사상의 원류(源流)이기에 에머슨은 더 이상 성직자도 기독교인도 아님을 자명한 것과 다름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이 손꼽는 대표적인 애독서로 『자기 신뢰』가 거론될 만큼 에머슨의 초월주의 운동과 뉴에이지 사상은 미국 문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문학계만 하더라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로버트 프로스트가 에머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자기 신뢰』는 위에서 언급한 초월주의(초절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 초월주의는 인간이 우주의 대령(大靈, oversoul)과 통하는 신성한 존재라는 것과 그로 인하여 ‘자기 신뢰’의 주체이자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또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글이 시종일관 ‘나를 믿어라’라는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근저에는 역시 이러한 메시지가 자리잡고 있긴 하겠지만, 저자의 외침은 다양한 악기를 통해 각기 다른 음향으로 현출된다.
『자기 신뢰』는 분량도 많지 않고, (번역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간결한 호흡으로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장 그르니에,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까뮈와 같은 부류의 그것들에 비하여 매우 실용적이다. 19세기에 이미 실용주의가 만연했던 미국사회와 달리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은, 청교도적 금욕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염세주의 등 대체로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함이 창조주의 전능함 앞에서는 항상 불경하고 죄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고야 마는 민망함이라는 호수에 배를 띄워놓았다. 에머슨은 이 호수 위의 배를 전복시키기 위한 시도를 유럽에서 돌아온 1835년부터 시작하는데, 언제나 인간이 신 앞에서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이며, 아무 기대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철썩같이 믿는 유럽의 사상가들에게 ‘미국식 다채로움’을 작품 속의 사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채로움은 그의 저서《보상》에서 힌두교의 법 카르마를 해석하는 것과 같이 동양의 종교를 통해 나타나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그 권위와 완전함에 주눅든 자녀가 되기 싫었던 에머슨에게서 필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윤곽을 발견한다. 인간의 유한성에 집중하지 말고, 만물의 중심이 되라는 그의 외침에서 자기 자리를 떠난 타락한 천사장의 실루엣이 메아리치고 있다.
이 에세이는 『자기 신뢰』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자신(自信)’, 즉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가 핵심 내용이지만 결국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렌티큘러(Lenticular)’인 것이다. 에머슨의 렌티큘러를 어느 방향, 어느 각도에서 바라볼 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