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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Jul 26. 2023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는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삶과 글쓰기 철학에 대하여


젊은 작가 :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좋은 초기 훈련이 

                  무엇인가요?”


헤밍웨이 : “불우한 유년 시절을 겪는 거라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와 같이 영화로도 대성공을 한 원작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는 소위 산전수전과 공중전까지 겪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61년 엽총을 이용한 자살에 이르기까지(헤밍웨이의 아버지는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고, 헤밍웨이가 자살한 이후 그의 여동생과 남동생도 차례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글쓰기 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작가의 인생 여정은 필연적으로 그의 문체와 작품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투영되어 대체로 확립된 가치관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총, 사냥과 같은 하드보일 액티비티를 즐겨하였던 상남자 헤밍웨이.  하지만 우울증은 말년에 그를 심각하게 괴롭힌다.  결국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러한 점에서 헤밍웨이는 ‘빙산이론(Iceberg Theory)’이라 불리우는(기자생활을 경험했던 헤밍웨이가 표방한 미니멀리즘이다. 이 이론은 소설에서 심층적인 의미는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되고, 내포와 암시를 통해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본다. 즉, 이 빙산 이론에서 수면 위의 빙산은 작가가 직접 보여주어야 할 표면적 요소이고, 수면 아래 감추어진 빙산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다 깊은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간결하고 절제되었지만 투박하리만큼 강인한 문체를 주창하였고, 이것은 그의 다이나믹한 인생의 이미지와 함께 20세기 미국사회의 시선을 오랫동안 끌 수 있었다. 


 헤밍웨이는 수필보다는(1920년대 파리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소설에 대한 열정이 강했는데, 그는 글쓰기의 마지막 최고 단계가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인물과 사건, 배경을 창조하는 ‘소설’이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들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퇴고하는 습관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위와 같이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헤밍웨이는 그의 역작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다시 손보았다고 하니(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35년간 퇴고했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는 역시 재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과 성실함일 것이라고 슬며시 자위해보려고 하지만, 헤밍웨이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는 참된 진지함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감스럽게도 재능이다.         


 

 아마도 헤밍웨이는 자신의 재능을 일찌감치 인지했을 것이고,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충만했다. 작가의 능력을 배가해주는 인생의 여러 가지 미각 중 안타깝게도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쓴맛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인생을 살았던 헤밍웨이는 그 누구에게라도 작가로서의 자질에 대해 충고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1937년에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는 기자로 활동했으며, 총 네 번의 결혼생활은 그가 동료 작가들에 대해, 심지어는 칭송받는 이전 세대의 작가들에게까지 선을 넘는 오만한 발설을 하도록 하는 원자로(原子爐)로 작용하였다. 그는 자신이 수차례 전쟁을 경험한 것이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강력한 경쟁력이라 생각하였고, 자신과 같은 인생이력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가들에게도 전무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불필요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망언에 가까운 평론을 지속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 궁리를 해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형편없는 글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글을 써서 읽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걸까?          



 헤밍웨이는 사회적 지위와 나이에 있어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어르신이나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냥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일흔살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그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이 평탄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실패하거나 좌절하는 음울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었다. 

 종군기자, 야생동물 사냥꾼, 심해 어부 등 활동 영역이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로그램 수준이었고 두 번 이상의 참전과 전쟁 취재 경험으로 글쓰기나 인생에서 어떠한 수사(修辭)도 쓸모없다고 여기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 최대한 단순하며 직설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는 자연히 그의 가치관과 문체에도 영향을 미쳐 헤밍웨이를 불편한 진실을 역습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로 만들었을 것인데, 그의 (소설이나 평론에 있어서의) 고발은 기사문의 육하원칙(5W1H) 구조와 같이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했다. 


헤밍웨이는 소문난 고양이 집사였다.  나도 교회 집사인데...




  동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알베르 까뮈(1913~1960)도 빙산 이론과 같은 복잡·난해한 내막은 없었지만 비슷하게 보이는 간결한 문체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까뮈의 짧은 호흡은 헤밍웨이와 같이 명료하지 않으며, 간결했음에도 무의식의 안개속을 끊임없이 헤매도록 하는 정신분석적인 면모를 보인다. 보통 미국의 헤밍웨이와 유럽을 대표하는 까뮈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지 않지만, 헤밍웨이가 아웃복서라고 한다면 까뮈를 인파이터 성격의 복서에 비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노예해방을 4년간의 남북전쟁을 통해(한국전쟁(6·25)은 3년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휴전상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말이다.) 직접적으로 이루어 낸 ‘에이브러햄 링컨’을 헤밍웨이에, 동일한 노예해방운동을 하였지만 과격한 전쟁이 아닌, 여론형성과 입법작용을 통해 차근히 현실화한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에 까뮈를 대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08년에 개봉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영화는, 영국의 하원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과정을 그렸다.)          



 플로베르는 위대한 작가지만 위대한 작품은 오직 <보바리 부인한 편이며 2분의 1정도 위대한 작품 <감정교육>, 그리고 형편없는 졸작 <부바르와 페퀴세>가 있지요.


 스탕달은 <적과 흑한 권으로 위대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파르마의 수도원>이라는 작품도 괜찮은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은 졸작이고 그 나머지는 쓰레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일생과 성품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설에 가까울 정도의 솔직함은 그의 작품들과 글쓰기 철학에도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헤밍웨이는 글쓰는 작업을 마치 된장이나 고추장을 숙성시키는 것과 같이 절제와 인내심이 필요한 일로 보았다. 이는 헤밍웨이와 같은 전업 작가에게나 가능할 것 같지만, 반박할 수도 없기에 우리 모두가 유념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 작품을(무기여 잘 있거라) 여기서 마치고 두세 달 정도 던져두었다가 다시 고쳐 쓰고 싶습니다일단 한 번 써놓은 글이니 다시 고쳐 쓰는 데는 한 달 반에서 두 달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시 고쳐 쓰기 전에 글을 완전히 식히는 것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장황한 미사여구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과도한 해석을 지양하였기에 <노인과 바다>에 대한 필자 자신의 매뉴얼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기도 하였다.          



상징적 표현이란 건 없습니다

바다는 그저 바다입니다노인은 그저 노인일 뿐입니다


소년은 소년이고 물고기는 물고기입니다상어는 그냥 상어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징적 표현이란 것은 모두 헛소리입니다.          



 헤밍웨이는 톨스톨이와, 모파상과, 세르반테스와 가상의 문학결투를 하는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그만큼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스스로 높이 평가한 셈이었고, 문학에 있어서(특히 소설)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레 미제라블>을 쓴 프랑스의 국민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도 헤밍웨이와 같이 위대한 작가에의 야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는데(“샤토브리앙처럼 될 것,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빅토르 위고는 말하였다.), 세상에 문학에의 원대한 포부를 선전포고하는 바람직한 패기라고 생각한다. 꿈은 클수록 좋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필자가 읽은 헤밍웨이의 편지글 모음책과 영화배우 숀 코너리를 닮은(그 반대인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금까지 위에 소개한 헤밍웨이의 언급들은 그가 동료나 선·후배 작가들에게 보내었던 편지의 일부분이다. 필자는 특히 글쓰기에 관한 헤밍웨이의 편지글을 접하였는데, 편지글 또한 대표적인 수필의 영역이기에 이곳을 통해 소개해 보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역사적·문학적으로 영어 산문의 스타일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절대적이고, 20세기 문학에서는 그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작가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투박한 남성성과 예의에 어긋날 정도의 솔직함과 단순함, 그리고 미국식 힘의 논리가 연상되는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우리 문학이 지향해야 할 좌표가 아님을 머릿속의 전기신호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통하여,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 궁금해하기 이전에 작가는 과연 누구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지를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야생동물 사냥꾼이자, 겸업으로 어부이기도 했던 헤밍웨이. 마초적인 남성이미지를 그의 작품 내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탐 크루즈?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  준수한 외모와 강인한 신체와 같은 외적인 우월함은 확실히 그의 언행에 있어 주저함을 없게 하였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는 예외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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