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전수필의 백미, 가모노 초메이의 『방장기』
나에게 작지 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과는 교류는 커녕 인연을 끊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또한 과거 일제에게 받았던 피해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활발한 교류는 다소 늦은 편이었는데,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문학’, 그 중에서 ‘수필’, 또 그 중에서도 일본의 고전수필은 미증유(未曾有)에 가까우리만큼 교류나 연구가 희소하였다.
이번에 살펴볼 작품은 위의 연유로 인해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미 일본에서는 중국 루쉰의 『아Q정전』과 같이 학생들 교과서에 문학작품으로 실릴 정도로 인지도를 가진 ‘가모노 초메이(鴨長明)(1155~1216)’ 의 『방장기(方丈記)』라는 고전수필이다.
『방장기(方丈記)』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다섯 가지 종류의 재해(대화재, 회오리바람, 갑작스런 천도(遷都), 극심한 기근, 대규모 지진)를 중심으로 인간의 무력함과 인생무상이라는 작가의 정서를 비교적 직접적이면서도 문예적인 문체로 잘 나타내고 있다. 간결하고 사실적인 표현은 서양의 여타 고전수필과는 달리 중의적인 해석을 허락하지 않으며, 인생의 끝자락에 저술한 이 책은 작가 초메이의 불교적 인생관을 이곳 저곳에 흩뿌리고 있다.
필자는 인간사를 염세적으로 본 초메이의 위 글을 접하고는 작금의 부동산 시장을 떠올려 본다. 약 800년 전 선각자의 충고는 특히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운신(運身)의 폭이라는 한줄기 빛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우리들을 향하는 것 같다. ‘세상의 관습을 따르면 자주성을 빼앗겨 몸이 괴롭다.’와 같이 부동산이라는 시대적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하였지만, 결국 지금 이 순간도 번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에게 초메이는 이와 같이 당부하는 것이다.
초메이는 18세에 부친을 여의고 시모가모 신사의 신관이 되지 못한 개인적 충격으로 50세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출가 이후 히노(日野)의 산속에서의 초암(草庵)생활을 통해 『방장기』와 같은 초암문학을 꽃피웠으며, 그의 초암은 ‘방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좁은 공간에서도 취미, 생활, 종교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었다. 초메이의 이러한 초암생활과 불교적 사상은 조선 전기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삶의 흔적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초메이는 일본 특유의 자연재해로 인해 김시습의 그것보다 훨씬 미약한 현실 극복의지를 가졌으며, 안타깝게도 전기적(傳奇的) 성격은 흔적도 없고, 유교·불교·도교(선)의 종교적 색채는 윤곽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이 떨어지는 사유를 하였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험을 다섯 가지 재앙을 통해 몸소 겪은 초메이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며 숙명까지 극복하려는 김시습과는 달리, 인간의 운명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며, 받아들임의 미학을 자기반성과 성찰의 경지에까지 확대시키는 시도를 하였다. <자연과 인생이라는 거울>을 통해 초암생활, 즉 진솔하며 소박한 그의 생활상이 불교적 향취와 함께 잘 버무려져 있는 『방장기』는 일본의 불교문학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손꼽히고 있다.
가마쿠라(鎌倉) 시대 말기에 ‘와카(和歌)’로 명성을 떨쳤던 문학가 초메이는 『방장기』를 저술하고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무소유’의 가치를 십분 체득한 위대한 문학가이지만, 신과 세상에 대한 반항 한번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자연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운명이 두려워 그 자신이 스스로 운명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