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후에 최종 보고서와 같이 내놓았을 위 말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포 곳곳에 촉촉이 스며들어옴을 느낀다. 삶에는 표면과 이면이라는 복수의 양상이 있음을 모르던 바 아니었으나, 어떠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하느냐에 따라 기능과 용도가 달라지는 스마트폰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모드(Mode) 설정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할 수 있음을 믿는다.
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8~1392)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스승과는 달리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였다.
권위있는 성리학자이면서 명문장가였던 그는 『상대별곡(霜臺別曲)』이라는 경기체가를 남기었고, 하륜 등과 함께 역사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나의 유년시절에 인기리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 의 한 장면. 이성계를 도왔던 권근이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살펴볼 『주옹설(舟翁說)』로 우리에게 비유를 통한 깨달음을 주고 있다.
손(客)이 주옹(舟翁)에게 묻기를,
“그대가 배에서 사는데, 고기를 잡자 하니 낚시가 없고, 장사를 하자니 돈이 없고, 진리(津吏)노릇을 하려 해도 물 가운데만 머물러 있어 왕래(往來)가 없구려.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물에 조각배 하나를 띄워 가없는 만경(萬頃)을 헤매다가, 바람은 미친 듯이 불고 물결은 놀란 듯이 몰려와 돛대는 기울고 노까지 부러지면, 정신과 혼백(魂魄)이 흩어지고 두려움에 싸여 생명이 지척(咫尺)에 있게 될 것이로다.
이는 지극히 험한 곳을 밟고 지극히 위태로움을 무릅쓰는 일이거늘, 그대는 도리어 이를 즐겨 오래오래 세상을 멀리하고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 주옹설(舟翁說)-
손(客)은 장마철 폭우가 있은 후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하는 것 같이, 일부러 위태롭기 그지없는 배 위에 머물고 있는 주옹(舟翁)에게 그 연유를 묻는다. 권근은 손(客)의 질문에 대해 늙은 뱃사공이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여기에서의 역설적 발상이 자못 흥미롭다.
주옹(舟翁)은 배 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배가 편하다고 했다. 문득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GOD의 노래가 떠오른다...
“아아, 손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대개 사람의 마음이란 다잡기와 느슨해짐에 일정함이 없어서 평탄한 땅을 밟으면 태연하여 느긋해지고, 험한 지경에 처하면 전율하여 두려워하는 법이다.
전율하여 두려워하면 마음을 다잡고 든든하게 살지만, 태연하여 느긋하면 반드시 흐트러져 위태로이 죽게 되나니, 내 차라리 험한 곳에 처하여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데 살아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중략)”
주옹은 배를 타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면서, 인생이 편안하고 느긋하면 위기에 처하게 되고, 반대로 험한 환경에 처하면 스스로 긴장하게 되어 결국 문제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역발상을 보여준다.
문제없는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문제에 뛰어드는 삶을 추구했던 권근은 ‘리스크(Risk)’라고 하여, 이의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리스크는 영원하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기업이 존속하는 동안 리스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참, 내가 출간했던 책과 같은 출판사이네 ㅠㅠ
현재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조직에서는 ‘리스크 관리부서’라고 하여 향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만약 제거가 어렵다면 더 이상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management)’하는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의 리스크 관리는 특히 금융 및 경영 분야에서 활발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반갑지 않은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조선 초의 권근과 작금의 우리 사이에는 리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의 작지 않은 간극이 존재함을 느끼며,
‘과연 우리 삶의 리스크가 관리가 되는 것이기는 할까?’
위와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던져보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삶은 다양각색이겠지만, 평생동안 리스크를 잘 ‘관리’한 덕분에 걱정없이 평안하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나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리스크는 삶의 연수에 비례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가져왔기 때문에 갈등과 사건사고의 발생확률 및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세월이 쌓여감에 따라 리스크가 누적되기에, 혹은 해결되는 속도보다 누적되는 것이 더 빠르기에 인생의 말년에는 리스크로 뒤덮인 환경에서 괴로움의 몸부림을 칠 것 같지만 실제 그러하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인생의 말년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초연과 침착함, 그리고 깊은 물이 소리내지 않고 흐르는 듯한 심연의 평안함을 엿볼 수 있다.
“또, 무릇 인간 세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이란 한바탕 거대한 바람이니, 하잘 것 없는 내 한 몸이 아득한 그 가운데에서 표류하는 것은 마치 한 잎 조각배가 만경창파(萬頃蒼波)위에 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배에서 사는 것으로 사람 한 세상 사는 것을 보건대, 안전할 때는 환란을 생각지 않으며, 욕심을 부리느라 나중을 돌보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빠지고 뒤집혀 죽는 자가 많다. 손은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하는가?”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Anti fragile. 가혹한 세상과 쉽지 않은 삶에 대하여 도전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느낌을 주는 노래를 부른 '르세라핌'의 뮤비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