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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May 30. 2021

서른이 되면

열여섯 살 친구에게

서른 살로 딱 앞자리 바뀌던 날 말이야, 그래 1월 1일. 나 술집에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살다 보면 나도 그런 날 술집에 있을 수도 있지. 그거 맨날 하잖아, 티비에서 카운트다운해주는 거. 나 집에서 자거나 딴짓하느라 그거 작정하고 세어본 적 별로 없는데 이번엔 사람들하고 술집에 있었다 보니까 그걸 같이 셌어. 오! 사! 삼! 이! 일! 같이 소리 질렀지. 사람들하고 잔 부딪히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쩌렁쩌렁 인사도 나눴어. 근데 웃긴 건 나 그 자리에 누구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


뭐가 크게 바뀌겠어. 60초 사이에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 게 뭐. 사회적으로 말하는 나이가 바뀐 거잖아. 그게 무슨 변곡점이라도 돼줄 거라는 기대는 없어. 근데 이십 대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얼렁뚱땅 서투른 10년을 보내고 났으니까 다음 10년은 좀 괜찮지 않을까 말이야. 근데 사실 엄청 괜찮을 거라는 기대도 안 해. 인생이 언제 내 사정 봐준 적 있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만 그거 다 이 세상만 살아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잖아. 저세상이 좋은지 이 세상이 좋은지 죽어봤다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선 모르잖아.


개똥밭에 구르는 때가 계속 오겠지. 그래도 좀 더 나은 건 덜 구를 요령이 좀 생겼다는 거? 아님 구르기 전에 똥만 밟고 나올 수도 있고. 왜 시험 같은 거 보고 나면 맞은 문제보다 틀린 문제 답 더 잘 기억하게 되잖아. 안 좋은 경험이라도 유익하다고 믿는 건 그런 것 때문이지. 오답노트 만드는 이유가 뭔데, 비슷한 거 나중에 틀리지 말라고 참고하게 해주는 거잖아. 끝내 능숙하게 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덜 틀릴 수 있으니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 고3 때 만든 오답노트 아직 갖고 있는 거 같아.


나 일하다 그런 적 있었어. 무슨 워크숍 같은 걸 열었는데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손님들은 다 '장'들이었어. 그 사람들 오면 접수하고 응대해 줘야 하니까 접수하는 쪽에 쪼르르 직원 몇 명이랑 같이 서 있었는데, 공교롭게 다 여성이었어. 그러다 뭐 어디 누구라는 50대 남자가 한 명 왔는데 다들 어이구 오셨어요, 하면서 인사를 하길래 나도 그냥 꾸벅했지. 그 사람은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서 있는 여성 직원들에게 자기중심적인 덕담을 남겼지. 엄지와 검지를 튕겨가며 “여기는 다들 얼굴 보고 뽑나 봐? 다들 스튜어디스 해도 되겠어~ 여기는 대한항공, 여기는 아시아나, 아 여기는 타이 계열인가?” 개새끼.


그때 거기서 같이 일하던 팀장은 숙박해야 하는 출장이 있으면 농담이랍시고 이런 소리도 했었어. 방을 2인 1실로 2개 예약을 하거든. 방 하나는 나랑 동료가 같이 쓰고, 하나는 과장이 혼자 쓰고. 연수원 같은 데라서 1인 1실이 없더라고. 그 새끼가 그때 그러더라. “내 방에 침대 하나 남으니까, 좁으면 내 방으로 와” 그러고 웃더라고. 이 새끼는 시발 새끼야.


그리고 꼭 회의를 다 하고 나선 내 동료를 자기 방으로 따로 불러서 못다 한 업무에 대해 지시할 게 있다 그랬어. 나는 동료한테 방문을 다 닫지 말고 조금 틈을 남겨두라고 했어. 그리고 나는 문밖에서 조용히 서성이곤 했지. 무슨 일이 나면 쳐들어가서 걔 대가리 깨 주려고. 그 새끼는 여성 팀원들을 맨날 회의실로 불러냈어. 꼭 그렇게 일 대일의 상황을 만들더라고. 막상 가보면 별 얘기 없고 사무실 지 자리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야. 난 그 새끼가 나 부를 때마다 휴대폰 비행기 모드 해놓고 녹음기 켜서 회의실 들어갔어. 아이폰은 전화가 걸려오면 녹음이 끊기더라는 걸 그 개새끼 덕분에 알았어.


그래서 그때는 내가 이십 대의 여성이라 이런 일을 쉽게 당한다고 생각했어. 어리고 사회 초년생이라 만만해서 이렇게 막 대하는구나. 스무 살 땐 스물일곱 살이 그렇게 멋져 보였거든? 소위 말하는 ‘어른 여자’. 성숙하고, 세련되고 막 그래 보였는데 그 나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나 방금 말한 일들 다 스물일곱 살 때 겪은 거다?


서른이 되면 좀 달라지겠거니 했어. 서른, 삼십 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주 어리지도 않은 나이. 사회적으로 그렇게 용인되는 나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서른이 되고 나서도 그런 일은 계속 생겼어. 이게 나이의 문제가 아니더라. 얼마 전 퇴사한 직장에서 내가 거래처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거든. 그 사람도 여성이었는데, 그걸 들은 상사가 “그 개 같은 년한테 한 마디 해주지 그랬어” 그러더라. 걔는 그게 내 편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도 ‘년’인데.


그 무슨 무슨 년 하는 소리, 결국 나도 피해가진 못했어. 나한테 “야 이 씨발, 이년아” 하더라고. 지금 저한테 욕하신 건가요? 저 기분 굉장히 나빠요. 이 말을 했더니 걔가 그러더라고. “야, 그게 욕이냐?” 씨발 뭐라고? 하면서 침 뱉고 나올걸. 난 그때 점잖았던 거 진심으로 후회해.


그래도 한 마디 했다는 거, 기분나쁘다고 말 한거. 그게 생각보다 마음을 괜찮게 하더라고. 나 스스로 좀 비굴하게 느껴질 때, 이년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기분 나쁘다고 한 순간을 떠올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렇게 기분 나쁘다고 하고선, 맞을 각오도 좀 했던 거 같아. 사실 운이 좋았어. 업무도 안 맞았던 차에 상사가 저래서 마음이 붕 뜬 상태였는데, 새로운 일자리 제안을 받았거든. 그래서 박차고 나왔어. 제안받은 그날 그만두겠다고 했어.


그만둔다고 하니까 갑자기 다른 동료들과 깊고 진솔한 대화의 문이 열렸어. 사람들은 상사가 나에게 욕 한 걸 전혀 놀라워하지 않더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한숨을 폭 내뱉곤 했어. 언행이 쓰레기 같은 게 나한테만 그랬던 문제가 아니더라고. 나더러 어느 동료가 그랬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꼭 그 사람에게 사과받고 나가라"라고. 내가 왜? 남아있지 못해 나가는 내가 왜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야 하지? 내가 남아있도록 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못 견디게 하는 저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고작 수습 기간 중인 내가 왜?


뻑하면 회의실에 따로 부르던 팀장 때도 그랬어. 과장보다 직급 높은 상사들은 과장이 여성 직원들만 그렇게 부른다는 거 뻔히 알고, 지나가면서 혀도 끌끌 찼지만 그 행동에 대해 어떤 제재도 하지 않더라. 그러니까 그걸 대응할 생각을 못했어. 팀장님이 출장 가서 숙소 침대 남으니까 자기 방 오래요, 전체 회의 끝나고 자꾸 따로 방에 불러서 일 대 일로 일 얘기한다고 그래요. 팀장보다 윗사람들도 팀장 안 건드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람 행실을 문제 삼겠어.


믿을 건 알량한 내 주먹과 핸드폰의 녹음 기능뿐이었던 순간들의 기억이 이따금씩 모멸감과 어깨동무하고 나를 찾아와. 갑자기 무슨 상황이라도 생기면 경찰 신고해야 하는데 비행기 모드에서 그게 가능한가?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다고. 나는 그 새끼랑은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도 싫었어. 끈끈한 점액질이 내 온몸에 달라붙은 것 같았지. 전 직장 상사도 그랬어. 나한테 욕하기 이전에, 농담이라고 하는 말들이 기묘하게 성적인 것들이 많았어.


걔네들은 그걸 농담이랍시고 하고, 언짢아하면 농담인데 왜 그렇게까지 반응하냐고 했지. 암만 여성이래도 본인보다 높은 직급한테는 한 마디도 그런 말 안 하면서. 내가 권력 체계에선 자기 아래에 있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어. 머리로 의도하진 않았을 거야. 그냥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 난 이 새끼들 진짜 질이 낮고 천박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위계와 힘의 질서에 눌려 저항하지 못했어. 당장 다음 달의 밥그릇이 궁해지니까. 애초에 파렴치한 짓을 한 사람이 분명히 따로 있는데도 문제의 원인을 나한테서 헤집었어. 상대방 탓하고 문제를 드러내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으니까 내 문제라면 덜 괴로웠을까 싶었던 거 같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고 못할 거라는 공포가 꽤 오래가더라.


나는 가끔, 아니 종종 그런 새끼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있어. 에, 웃어? 나는 진심인데. 알아, 나 그래도 생명 해치는 저주는 정말 안 하려고 하거든. 근데 쟤네도 내 마음의 명줄 줄어들게 한 적 있었잖아.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적 있으니까 나도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서른 살즈음 어쭙잖게 살아보고 나니까 좋은 건 그래도 말 좀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지. 기분 나빠요! 그 한 마디 참지 않고 곧장 툭 뱉는 게 꽤 힘이 크더라. 흠흠, 별거 아니지만 너도 잘 알아두면 좋을지 몰라. 언제 써먹을 줄 알고?


그래도 나는 개똥밭에 있으면서 너 나이만큼 더 살았으니까 네가 참고할만한 게 있을지 몰라. 근데 너는 내 얘기가 다 이해되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하긴 이해가 되면 이상하지. 너보다 두 배쯤 더 산 언니가 푸념하는구나, 생각하고 한 귀로 흘려도 돼. 그러고 보니 너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은지, 아니면 네가 있는 세상이 더 좋은지 알 수 있겠다. 개똥밭에 16년, 저세상에 15년 정도 살아보니까 어때, 비교가 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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