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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Jul 06. 2021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실패할 엄두 내기

교복을 입는 학생이던 때 이런 저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저녁시간부터 새벽까지 듣곤 했다. 늘 안테나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방에 있던 미니 컴포넌트의 주파수를 맞추느라 바빴다. 라디오가 시작하는 시간에 바깥에 있을 땐 바쁜 마음으로 귀가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mp3 플레이어가 생긴 이후론 사정이 좀 나아졌다. 부가 기능에 있는 라디오를 이용하면 바깥에 있을 때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 집에 느긋하게 가도 됐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낄 수 있어 방의 바깥으로 라디오 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만나는 라디오 부스에는 진행자 외에도 '작가'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메인에 나서는 것보다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막연하게 글밥 먹고 사는 꿈을 꾸던 때여서 소설을 열심히 읽을 때엔 소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에세이가 좋을 땐 수필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어떤 드라마를 보고 코가 찡해질 땐 극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습자지 같은 마음이 닿아있는 부분마다 쉽게 물들다 보니, 라디오를 탐독하듯 듣던 때에 라디오 작가를 꿈꾸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직업의 세계를 궁금해 하다 "라디오 방송작가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 같은 걸로 입봉해서 경력이 쌓이고 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는 식의 흘러다니는 정보를 주웠다. 그런 말을 보고 났더니 뭔가가 마음 안에서 한 풀 꺾이는 소리가 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 거라 여겨지는 불확실한 영역에 자신을 내맡기고 도전하는 일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해왔다. 실패하고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내 선택은 크게 틀렸던 적이 없었다. 틀릴 만한 선택지를 택한 적이 없으니 그것 또한 당연한 결과다.

곽푸른하늘의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래요
애꿎은 시간을 다 쏟아버렸는데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두 눈만 꿈뻑이고 앉아 있던 내 탓이잖아요

다시 돌이켜보니 하고픈 일도 참 많았어요

부르고 싶은 것도 많았고요

그러나 난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방송작가를 해보겠다고 부딪혀 봤으면 어땠을까?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지, 꼭 예능프로그램을 먼저 경험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지 해보질 않아서 영영 알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근래에 고심했다고 생각한 선택이 몇 차례 안 좋은 결과를 내면서 마음이 무너졌고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재건해야 하는지 몰라 마음 길을 헤멨다. 이른 꿈을 꾸고 있을 때 실패할 엄두를 더 냈더라면 최근의 좌절에 조금은 덜 헤멜 수 있지 않았으려나.


노력을 절약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는 어떤 검사 결과를 보고 한참을 그 문장에 골몰해 있었다. 효율을 위해 노력을 절약하는 게 아니라 실패하고 싶지 않아 노력을 절약해온 것 같아서. 그리고 관성처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이제 방송작가는 안 해도 그만인 저 너머의 추억이 되어 아쉽지는 않다. 그때의 나는 그랬지. 그럼 지금의 내가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뭘까. 이젠 노력을 절약하고 싶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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