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희망 Mar 30. 2023

내 책을 비난하는 자와의 대적 그 후,

독자 평가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그 책이 그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내 애정이 담긴 도서 

<귀향한 어느 홍천청년의 열두 달 홍천살이>의 

첫 블로그 후기 작성자였던 

000 씨의 게시물이 최근 다시 인터넷상에 올라왔다. 


2월 22일경 나는 그와 댓글로 논쟁을 하다가 

너무 뻔뻔하고 약 오르는 그의 대응에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네이버를 통해 게시물 숨김 신청을 했다. 


바로 다음 날 신청이 받아들여졌으나...

당일 그의 이의 제기로 

한 달 후인 3월 말 그의 게시물이 

다시 전체 공개 처리돼버렸다. 

게시물을 영구적으로 내리려면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재판을 해야 한다는데 

그렇게까지는 진행하지 못했다. 

돈도 시간도 없었다. 


한 달 전 그와의 일 때문에 

며칠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분야와 연관된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로 물어보면 

독자의 평가는 자유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을 받았다. 


나는 아무리 책이 마음에 안 들고 솔직한 평가를 내린다고 해도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책을 깔아뭉개는 평가의 글을 

서슴없이 전체 공개로 작성해 인터넷상에 검색이 되도록 

게시한 그가 괘씸하기만 했다. 


네이버에 '열두 달 홍천살이'를 검색했을 때 

첫 후기 블로그 글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미리 보는 본문의 내용에는 

'여러 기대를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 예감이 불길했다. 


주간 챌린지로 독서 후기를 정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는 그는 

다른 글들을 보니 원래도 날카롭고 냉소적인 컨설턴트(?)이며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로 도서를 공동 집필한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홍천과 인인이 있고 

도시재생 같은 분야와도 연관이 있어 

이 책에 관심이 가 집어 들게 되었는데 

기대한 만큼 충족을 시키지 못했고 

청년활동 보고서를 조금 수정해 업로드한 듯 보이며 

지자체 지원금으로 제작된 것에 대해,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작품에 지자체가 '돈지랄'을 했다며

거침없는 비난을 적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 처음에는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댓글을 달았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보통은 저자가 직접 자신의 적나라한 비판을 봤다는 걸 알았을 때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어떻게든 글을 수정하거나 답변을 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평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혼자 보기 위한 작성은 상관없지만 

내 책이 궁금해 검색해 본 제삼자에게도 

이 블로그 글이 제일 먼저 보일 텐데 

내 책에 대해 얼마나 큰 선입견과 

의심을 갖게 될지에 대한 우려가 앞섰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나의 친절한 

첫 해명 댓글을 대중들에 대한 

정보공개 목적으로 공개처리 했다. 


얼마 후 나는 약 오름과 분노에 휩싸여 

'문제의 다섯 문장은 지워주시죠' 하고 

단호하게 두 번째 댓글을 달았다. 

그때도 아무런 답이 없었고 

나는 더 화가 나서 댓글을 공개 형태로 바꿨다. 

혹시라도 제삼자가 글을 보고 양측의 의견을 기반으로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이 사건을 잊어 갔다. 

잊힌 듯했다. 


그러다 2월 말경 다시 책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검색하게 되었는데 

댓글은 없고 글의 내용이 더 추가돼 있었다. 

내가 지난번 단 댓글에 대한 '반박글'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했을 때

 '아... 이 사람 뭐지... 나 잘못 걸렸네.' 싶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도 이이 글을 더 풀어써서 

자세하게 올렸음을 그의 반박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비난을 더 자세하게 길게 해 놓은 것이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다시 세 번째 댓글을 달았는데 그는 뻔뻔하게 답장을 했다. 

너무 화가 나서 또 다른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블로그 글 숨김 신청을 했다. 

가슴과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아침에 알림에 떠 확인한 그의 답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내 댓글에 대한 다음 반박글도 

공개적으로 적겠다고 선전포고하고 있었다.  

그분의 논리는 떳떳하면 공개댓글로 달고 공개적으로 논쟁하지 

왜 비밀 댓글로 다냐 이 의미였다.


연락처가 없으니 1 대 1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비밀 댓글을 달아야 했고 

사생활이기도 하고 좋은 내용이 없으니 

그분에게도 실례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의 1 대 1 대화를 거부하고 

대중들과 나를 대상으로 본인이 떳떳함을 

증명하는 반박글을 썼다.

그 점이 내 가슴을 충격의 떨림에 휩싸이게 했다. 


그의 게시물은 이후 곧 네이버 조치로  숨김 처리됐다. 

그리고 그 행복도 잠시뿐 그가 이의신청을 해 한 달 후면 

다시 글이 살아난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다니... 


뭐 이런 정책이 다 있나...

내가 몇 년 전에 라섹수술 후 

퉁퉁 부은 얼굴사진을 적나라하게 전체공개로 올렸을 때는 

그 게시물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렸었다. 

안과 측의 조치인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작성했던 글인데... 


네이버는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지는 못하나 보다. 

실망스럽고 그가 부활한 뒤 어떤 악담을 쓸지 

생각하면 두려웠다. 


아무래도 그는 내 첫 완곡한 댓글을 봤을 때는 

'네 책이 별로여도 이렇게 말하는 참 안쓰럽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마음을 내게 표현하지 않았고 

나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 수치가 올라간 듯했다. 

그다음 댓글에 내가 적은 '아래 다섯 문장은 지워 주시죠'에 

그가 분노와 함께 감정의 반동을 일으킨 듯하다. 

자신이 쓴  솔직 담백한 평론을 누가 지우라 마라 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빴을 거다. 


내 두 번째 댓글 표현을 보고 

그는 좋게 생각하려는 마음을 접고 

단순히 독자로서 솔직한 의견을 적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참, 나쁜 타이밍이 겹치고 겹친 것 같다. 

나나 그나 이렇게 화낼 생각이 없었던 거다. 


더불어 '작품 논쟁'이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한 개인이 정성으로 쓴 작품을 

어떻게 그렇게 비하할 수 있냐'

라는 내 댓글 표현에 대해 

그는 내가 내 책을 감히 '작품'이라고 칭하는 것이 겸손하지 못하다며 

유명한 작가도 첫 작품에 대해 스스로 졸작이라고 표현하는 

예의를 갖춘다며 내가 거만하다고 했다. 

하 참, 말이 또 그렇게 되나. 


나는 내 책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급하게 준비해 적고 싶은 내용을 다 못 적기도 했고

목차나 편집 면에서 아쉬운 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책을 쓰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책이 나오기까지 

끝까지 노력한 결과로 이렇게 결과물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잘난 척은 아니었단 말이다. 


그는 그냥 내 책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꼬운 것이다. 

그의 기준에서 아무 말도 안 나오게 할 만큼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 자체는 

애초에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만들었어도 그는 

'홍천', '청년사업' '지자체 사업' 등에 

스스로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찾아 내 블로그에 적었을 거다. 


그냥 우린 피할 수 없는 악연이었고, 

내 삶에 찾아온 배움의 계기였을 뿐이다. 

나는 말했다. '그 책이 당신의 손에 들어간 게 참 안타깝다'라고.

첫 댓글에 나는 그가 실망할 책을 구매하게 만든 게 미안해 

직접 환불해 주겠다고까지 했었다. 

내 책으로 남에게 손해감을 주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사달라기보다 

지인들에게는 내가 가진 재고를 직접 무료로 준다. 

남이 살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널리 읽히게 하는 책의 존재 가치가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득을 못 얻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만나게 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작품'에 대한 '겸손함'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내 책을 사줬다는 걸 알게 될 때는 

이만큼 행복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기대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 책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돈을 지불하는 결정을 내려준 것이니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자와 독자 사이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책을 내놓는 순간 독자들의 어떤 평가든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책을 내놓는 건 자유지만 책에 대한 후기의 내용을 선택하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수히 많은 호평 중 악평 몇 개라면 나는 멘탈 유지가 되었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네, 참나.' 하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내 책은 유명하지도 않고 온라인상 후기가 많지도 않다. 

그래서 몇 안 되는 후기들이 내게는 하나하나 소중했을 거다. 

게다가 첫 후기가 악평이라니... 

더욱더 충격적이고 의기소침해졌을 거다. 


그 뒤로 두 개의 후기가 더 올라왔는데 

한 분은 춘천 독립서점에서 책을 우연히 구매하신 모르는 분, 

한 분은 내가 직접 책을 드려 읽게 된 분이었다. 

둘 다 책에 대해 조금은 아쉬운 점에 대해 적었고 

나는 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앞에 분은 내 댓글에 대해 

'저자님이 보실 줄 알았다면 좀 더 신경 써서 후기를 작성할 걸 그랬다'

라며 멋쩍어하는 표현을 남겨 주셨다. 

그 댓글에 내 마음이 좋아졌다. 


이런 반응이 정상이 아닐까?

내가 미리 정해 놓은 답대로 결과물을 주는 세상은 없을 거다. 

그들의 행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만 통제할 수 있다. 


그의 글을 다시는 클릭하고 싶지도, 

자세히 읽고 싶지도 않다. 

읽을 때마다 당시의 감정이 살아나고 

그의 단어 표현 하나하나에 내 가슴의 상처가 되살아난다. 

그 글은 인터넷상에서 내 책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독을 퍼뜨리고 다니겠지만 

나는 눈을 감고 다니련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훗날 하늘이 결과를 보여 주시겠지.

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참 행복하면서도 무거운 일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우리 고향 문화재단이 나를 '돈지랄' 대상으로 선택해버려

세 번째 책 출간 준비 중인데 어쩌지. ㅎ 


매거진의 이전글 약수역 소수책방과의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