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3년차 철학 덕후가 알려드리는 철학 공부 시작하는 법

+처음 철학을 공부할 때 읽으면 좋은 책 추천

서점에서 여전히 철학 고전이 꾸준히 팔리고, 인문학 콘텐츠가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철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철학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싶어도 어려움이 많은 학문입니다.


철학은 정확히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기 어렵고 또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지도 막막한 학문이기 때문이죠.


저에게도 철학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막막한 학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처음 철학을 공부했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이 생생한데요.


20살 때부터 철학을 전공해서 4년을 공부하고,



꾸준히 철학 책을 읽으며 <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이란 제목의 인문교양서를 출간한 지금에서야 저는 철학이란 학문에 어렴풋한 이해를 갖게 됐습니다.


오늘은 처음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서 저의 경험과 읽었던 책들을 기반으로 해서 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면 좋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문적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철학 책을 읽어보려는 분들, 철학적 인사이트를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고 싶은 분들에겐 이 글이 도움 되실 겁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 학문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매력적인 하나의 답은 버트런드 러셀이 정의한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 학문이다"입니다.


버트런드 러셀(1872년 5월 18일 ~ 1970년 2월 2일)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


과학은 관찰, 실험, 논증을 통해 명확한 지식을 추구합니다.


반면 신학은 인간 지식 너머에 있는, 지식으로 다룰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논합니다.


이 사이에서 철학은 증명 가능한 것만 논할 수 있다는 엄격한 과학과도 싸우고, 명확히 알 수 없는 것들을 알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독단적인 신학과도 싸웁니다.


이런 점에서 러셀은 철학은 과학과 신학, 양측에 공격을 받으면서 두 학문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하죠.


러셀의 정의는 철학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철학책은 명확한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 쪽에 더 가까이 있거나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 논하는 신학 쪽에 더 가까이 있는 철학책으로 나눠집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철학이 뭐 하는 학문인데?"라고 물어봤을 때,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 학문이다"라고 답한다면 꽤나 명확답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과학과 신학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물음을 탐구할까요?


러셀은 자신의 책 『서양철학사』에서 철학이 풀어야 할 대표적인 7가지 문제를 제시합니다.



러셀이 제시하는 철학이 풀어야 할 7가지 질문들(참고)


1.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나뉘는가? 만일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이고 물질은 무엇인가? 정신에 물질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독립된 힘을 가지는가?

2. 우주는 통일성 혹은 목적을 가지는가? 우주는 어떤 목표를 향해 서서히 진화하는가?

3. 자연법칙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오직 질서에 대한 선천적 사랑 때문에 자연법칙을 믿게 되는가?

4. 인간이란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듯 작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행성 위로 무력하게 기어다는 불순물이 섞인 탄소와 물로 구성된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으면 햄릿에 등장하는 고뇌에 찬 존재인가? 혹은 인간은 두 가지 면을 다 지닌 존재인가?

5. 고귀한 삶의 방식과 비천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다 헛된 것에 불과한가? 만일 고귀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이 그러한 삶을 이루며, 우리는 어떻게 고귀한 삶을 성취하는가?

6. 선은 진가를 드러내려면 영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주가 엄연히 종말을 향해 가도 선이란 추구할 만한 것인가?

7. 지혜란 존재하는가? 아니면 지혜란 최고로 세련되게 포장된 어리석음에 불가한가?)1




위의 물음들은 실험실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기 때문에 과학은 설명할 수 없고,


이 모든 문제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자처한 신학 역시 전지전능한 신이란 허술한 전제 위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는 걸 근대에 이르러 들키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7가지 물음들은 과학과 신학 중간에 있는 철학이 탐구해야 할 과제라고 러셀은 말합니다.


방대한 인류 학문의 역사에서 철학의 자리를 예리하게 포착해 낸 러셀의 작업은 철학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요.


그런데 러셀의 정의는 철학 공부를 시작할 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러셀의 정의는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선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부터는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철학의 정의를 알아보겠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무지를 자각

새로운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모르겠다"라는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해 그 무지를 메우는 지혜를 탐구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 철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라고 말했고,


동양 철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공자 역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앎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동서양 철학의 시초로 불린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무지를 강조한 건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그들이 위대한 건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통찰을 후대에 전해 인류 지성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여기서 두 철학자가 말하는 '무지'의 의미는 우리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났을 때 입에서 튀어나오는 "아 모르겠다" 정도의 가벼운 뜻이 아닙니다.


조금 더 확실한 이해를 위해 철학이 어떻게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새로운 지혜를 탐구하는지 현대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정의해 왔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해 곳곳에서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하고,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의 등장이 예정되어 있는 지금,


"인간은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라는 정의는 설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동안 갖고 있던 답을 잃어버리면서 이제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됐죠.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라는 무지를 고백하며,


그와 함께 밀려오는 좌절감과 허무함을 딛고 우리 인간을 설명할 새로운 개념을 찾아 나설 때,


이때 철학은 시작합니다.


이렇듯 마주한 예외적인 사건에서 무지를 자각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구를 하는 게 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과 철학함이 나눠지는데요.


철학자 강신주는 스피노자를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아 스피노자의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스피노자 전문가'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그 대신 스피노자를 딛고 일어나 자신만의 사상을 펼치는 사람은 '철학함'을 한 것이고 그러면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신주는 소크라테스, 공자,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소개하며 중요한 건 '누구누구의 철학'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으로 스스로 탐구할 줄 아는 '철학함'이라 강조합니다.


무한한 생성이 일어나고 끝없이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는 이 세계에서 필요한 능력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이니까요.


무지를 자각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구하는 활동으로 철학을 정의한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철학함이 필요한 이유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혜를 찾아야 할 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마주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업하면 행복할 거란 말을 듣고 자린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부모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한국 최고 기업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회사를 다녀보니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면 어떨까요?


이때 이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생관이 틀릴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심각한 고민 없이 "승진해서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믿음에 의지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태도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지를 자각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찾는 것이죠.


개인의 차원에서도 철학함이 필요한 이유는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철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철학 공부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알고 싶어", "니체의 철학을 알고 싶어"와 같이 어떤 철학이 알고 싶은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걸 모르는지 먼저 알고 그 무지를 매워가기 위해 책을 펼 때 제대로 된 철학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철학 공부여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도 있고 수많은 천재들이 남긴 책에 압도되어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마지막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은 무엇이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철학 공부를 시작할 때 읽기 좋은 책과

주의할 점 한 가지




제가 생각하는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학사 책을 먼저 읽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물음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철학사 책을 통해 여러 철학자들을 만나면 자신의 물음에 가장 매력적인 설명을 해줄 철학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 해당 철학자를 집중적으로 다룬 인문교양서와 고전을 읽는 전략이 처음부터 한 명의 철학자를 선택해 공부하는 것보다 철학을 더 흥미롭고 와닿게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철학사 한 권을 책을 추천드린다면 저는 앞서 말씀드린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철학자의 사상을 설명하기 앞서 그 철학자와 관련된 역사, 문화적 맥락을 먼저 서술해 줍니다.


이를 통해 한 명 한 명 철학자의 사상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죠. (이러한 철학사 서술 방식은 러셀의 서양철학사 이후 많은 철학사 책에서 벤치마킹 했기 때문에 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닙니다)


특히 이 책은 러셀의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영향을 주었을 만큼 문학적으로훌륭한 책입니다.


물론 그 매력은 원서를 읽었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한글 번역본도 저는 큰 무리 없이 읽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 밖 장점은 한 권이라는 점과 다른 철학사 책에 비해 가벼워 휴대하면서 읽기 부담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밖에서도 총 3권으로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2권)


총 2권으로 출간된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의 <서양 철학사>도 완성도가 높은 철학사 책입니다.

닐스 길리에, 『서양 철학사』 1권



러셀의 서양철학사보다 훨씬 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처음 시작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두 권도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는 철학사 책은 다양하게 보면 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철학자들은 철학사 책을 쓴 저자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됩니다.


단적인 예로 러셀은 엄밀한 논증을 강조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철학을 바라보기 때문에 니체와 같이 창조와 열정을 강조한 철학자들을 비판적으로 다루거나 낮은 비중으로 다룹니다.


따라서 한 권의 철학사 책으론 철학자들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권의 철학서를 읽어야만 개별 철학자의 사상을 더 폭넓고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강조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주의할 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철학자를 만나도 그 철학자를 추앙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철학자를 발견하면 그 철학자의 말이 진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나 긴 철학의 역사에서는 틀릴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뛰어난 사상을 펼친 철학자의 작업도 그 사상의 약점과 한계를 파고드는 후대 철학자에 의해 수정-보완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한 명의 철학자가 주장한 관점에서 따라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더 유연한 태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와 대립하는 철학자의 책도 읽어보고,


그 둘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사상을 펼쳐나간 철학자의 책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방대한 철학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철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팁을 얻으셨을 겁니다.


이번 글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며 삶을 조금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철학 공부의 계기가 되셨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내용 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꼭 남겨주세요.


그럼 저는 유익한 철학 콘텐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







인용

1)1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2021.p.17~19


참고문헌

[철학 vs 철학], 강신주, 오월의 봄, 2021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2021.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향연], 플라톤, 왕학수 역, 동서문화사, 2019

작가의 이전글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에 따라 살면 인생이 꼬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