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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Mar 06. 2024

잘못된 간섭

서울의 우리은행 종로지점 버스 정류장은 흥미롭다. 우선 광역버스와 시내버스 정류장이 같은 곳에 있어서, 멀리서 온 승객과 근거리의 승객이 섞인다. 지리적으로는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에 있다. 자세히는 종로 1가와 을지로 1가, 그리고 인사동과 안국동이 근처에 있다. 신도심과 구도심이, 빌딩 숲과 갤러리가 맞대고 있다. 거리에는 사증을 목에 건 회사원과 캔버스를 옆구리에 낀 예술가가 동시에 교차한다. 배낭 멘 외국인과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정류장 근처 카페에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재미있다. 동네에서 느껴보지 못한, 서로를 모르는 군중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다. 버스를 타고 달려온 보람이 있다.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여기, 씨족 사회라고 불려요.”

얼마 전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근거리 배정을 하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네에 대한 설명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 학원, 놀이터, 슈퍼, 빵집, 세탁소도 같이 다닌다는 의미다. 어느새 아이 친구 집의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알 정도가 된다는 의미기도. 서로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좋은 소문, 안 좋은 소문 할 것 없이 금세 퍼진다. 그녀는 이곳에 온 후, 안 좋은 평을 듣거나 따돌림을 당하게 될까 봐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동네가 유독 조용했구나. 이해가 됐다. 그렇다, 이곳은 씨족 사회. 초등학교를 공유한 우리 사이, 어쩐지 무섭다. 동네 사람들과 교류 없이 지내온 서울 출신이라 그런 걸까.     


올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이사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동네에서 아이는 어렵게 친구들을 사귀었다. 동네 친구들과 잘 지내게 하려고 나 역시 무던히 노력하기도 했다. 자주 집에 아이들을 초대하고, 간식을 공수해 날랐다. 어느 날부터 동네 아이들 사이엔 따돌림 현상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설이가 표적이 되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설이를 따돌리기 위해, 아이들은 정글짐 위로 올라가서 놀았다. 설이가 그네를 타면, 아이들은 그네에서 내려 정글짐으로 달려가 버렸다.     


유난히 태양이 뜨거웠던 날이었다. 땡볕 아래 놀이터에서 지쳤던 걸까. 한 시간째 설이만 교묘하게 따돌리는 아이들이 미워서였을까.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목격하고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아이 엄마들이 야속해서였을까. 자신을 따돌리고 있음에도, 친구가 아쉬워 그 아이들에게 매달리고 있는 내 자식이 답답해서였을까. 그날만은 참고 넘어가질 못했다.     


“너희들! 친구 셋이 한 명을 따돌리면 되니!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마침내 균열이 발생했다. 불의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차마 넘어가지 못한 엄마 때문이었다.   

  

며칠은 계속 비가 내렸다. 동네의 광장에도, 놀이터에도, 소공원에도 사람이 없었다. 비와 함께 내려간 온도에 아이들은 열이 나고 기침했다. 그날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도 비와 함께 씻겨나가길 바랐다. 달아오른 열이 가라앉을 때쯤 비는 그쳤고, 동네는 다시 조용한 오후를 되찾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놀고, 엄마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같은 놀이터를 가고, 같은 골목길을 걷는다. 그러나 설이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 엄마들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따돌림은 지속되고 있었다. 바람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일이니 끼어들지 말자고 뒷짐 지고 있었더라면. 지금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아이의 친구 문제에 잘못된 간섭을 했던 건 아닐까. 내가 아이의 친구 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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