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해라"는 말에 가려진 담백한 사실
행복에 대해 인생의 선배들과 여타 많은 강연들이 하는 공통된 말이 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나는 지금까지 산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어린 애송이지만,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해 일어났던 일들과 그로 일어난 나의 변화를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에서 서술해보려 한다.
나는 5살 때부터 로봇공학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유아기 때 과학상자, 로보로보, 레고 마인드스톰(RCX, NXT)등 안 만져본 키트, 교구가 없었고 중학생이 된 후 천운인지 부산정보영재로 뽑혀 배우기 시작한 전자공학에 심취해 그것만 바라보고 살았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매일 하교 후 다음날 등교할 때까지 무언가를 만들거나 관련된 자료를 찾는 일에 열중했다. 달걀에서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며 온/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주기적으로 알을 자동으로 굴려주는 자동 부화기를 만든 일도 있었고, 집에선 의자에 붙여있다 보니 그대로 자는 시간이 늘어 의자가 뒤로 젖혀진 상태로 5분을 유지하면 무선으로 방의 불이 소등되는 장치라던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3D프린터, RC잠수함 등 여러 장난감을 만들었다. 시판되는 기판들을 사용해 만들다 보니 기판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PCB(보통 전자회로 하면 생각나는 초록색의 기판) 설계를 독학하고 그 뒤로 오락실의 리듬 게임기를 똑같이 만들어 팔다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을 정도로(그땐 정말 인생이 어떻게 되나 싶었다.) 열심히였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고 하는 편이 올바를 것이다. 성적은 항상 중위권을 달리고 교사들의 주옥같은 욕을 들으면서도 나는 이 길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달렸다. 졸업 후 활동 내용 덕분인지 성적보단 훨 나은 지방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붙게 되었지만 학교 커리큘럼을 보고 실망한 나는 1달 만에 자퇴를 하고 20살이 된 그 해, 처음으로 부산을 벗어나게 된다.
어떠한 군수산업체에 취업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월급 80만원에 회사에서 살 듯 일을 했다.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그 일을 계기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고, 기회의 존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성수동 지하에서 5명이 시작한 회사는 어느새 강남에 빌딩을 하나 삼키게 되었고 그때쯤 내 머릿속을 두드리는 생각이 있었다.
"내 취미는 어디 갔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PCB를 설계하고 땜질을 하고 테스트, 납품을 하던 나는 퇴근 후 도저히 취미였던 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처음엔 강한 업무강도가 문제라 생각하여 업무량을 조절하기도 했지만 학생 시절 그 순수한 열정은 전혀 타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번아웃 상태임을, 내가 지쳤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생활이 결코 지속 가능한 생활이 아님을 확신했을 때, 20대 초반을 바친 회사에서 떠나며 '제1개발팀장'이라는 나름 자부심을 가졌던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 일 이후 박사과정을 수료한 동종업계의 친한 형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번아웃 상태에 대해,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에 대해 공감해달라는 이기적인 자리였지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매일마다 퇴사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비하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은 상태라 말해주면서도 사실 그러한 타인의 사정을 배제하면 내 의견에 동의하며 진심으로 동감을 표하더라. 좋아하는 일을 일로써 하는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라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실, 하고싶은 일을 하라는 달콤한 말에 가려져 비교적 덜 주목받는 말이 있는데, "좋아하는 일이 '일'이 되면 다르다."라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와 내 주변 인물들과는 다르게 좋은 결과만을 이끌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 말만큼 담백한 현실을 담은 말이 또 있을까.
개인적 경험을 길게 쓴 탓에 영양가 없는 글이 돼버린 것만 같아 아쉽지만, 어쨌든 취미와 일과 관련된 행복에 대한 내 결론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