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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Dec 12. 2023

영국의 다크다크함 (Dark side)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영국에 살면서 본 영화 중에 기억에 소름 끼치게 남는 영화 두 편이 있다. 바로,


This is England: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743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Harry Brown':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4545





둘 다 2009년에 개봉한 영국의 갱스터 문화를 다룬 영화인데, 내가 이 두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지독히도 현실적인 공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조폭 영화가 있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은 평소에 잘 접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모르는 음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영화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물론, 영화가 나온 년도를 지난 지금까지도 일상생활에서 아주 친근(!)하게 볼 수 있고, 재수 없으면 직접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일들의 단편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런던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밤 10시가 넘어 뒤통수에 피를 철철 흐르며 들어오던 친구의 하우스 메이트.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10대의 청소년 세 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그중 한 명이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후려치고 갔다고 했다.


난 훤한 대낮이거나, 버스가 아주 분주하거나 하지 않으면 런던에서 이층 버스의 위층에 타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예전에 이층 버스가 신기해서 줄곧 이층에만 앉아 타고 다니다가 한번 뒷자리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올라가 앉자마자 뒤에서 낄낄거리며 웃고, 욕설을 내뱉고, Monkey, Chinese 따위의 소리를 지르더니 내가 반응이 없자 급기야 들고 있던 콜라캔을 내게 던졌다. 화가 나서 뒤를 홱 돌아봤는데 마치 잘됬다는 듯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려던 두 명의 남자.  

그 순간 소름이 쫙 끼쳐서 그대로 바로 아래층으로 도망가서 드라이버 옆에 바로 서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내가 내리려던 곳이 아님에도 무턱대고 내렸다. 그 뒤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데도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러대며 캔을 바깥으로 던져대던 아이들.


그뿐인가, 안전하기로 유명한 케임브리지에서 유학하던 시절 저녁에 Formal Hall (컬리지에서 여는 만찬 파티 같은 것)을 끝내고 다른 여자친구 2명과 컬리지로 돌아오는 길. 차 한 대가 뒤따라 오면서 타고 있던 남자 셋이 자꾸 추근거리길래 신고하겠다고 경고를 한 뒤 폰을 꺼내 들자 갑자기 차를 세우고 뛰쳐나오던 남자들.

진짜 셋이서 소스라치게 놀라 근처 아무 컬리지 건물에 무작정 뛰어 들어가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다.


예전 웨일스의 수도인 카디프에 살 때, 집 근처에는 주거 지역을 나누는 경계에 산책로처럼 한적한 공간이 있었다. 그 길로 가면 빠르게 레저 센터에 운동을 하러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주 사용했는데, 어느 날 저녁 조금 늦은 시간에 습관처럼 그 길을 접어들려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로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을 가로막고 십 대의 아이들이 여럿 몰려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온갖 계산이 왔다 갔다. 저 사이를 지나칠 때 내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계산. 그들이 그냥 나를 보내 줄 수도 있겠지만, 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봤을 때 지나가다가 모욕을 당할 확률, 혹은 제대로 지나가지도 못할 확률도 만만치 않게 높아서 결국은 포기하고 먼 길을 돌아서 집에 왔다.


늦은 밤 출장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적한 도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 골목에서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내 차를 향해 다가오던 남자. 심장이 쿵쿵 울리고 차 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확인하고, 그 남자를 못 본 척해보려 했지만, 결국 남자가 운전석 바로 옆까지 다가와 주먹을 올렸을 때는 신호고 뭐고 그대로 차를 출발시켜 버렸다. 그때 F 욕설을 내뱉으며 출발하는 내 차 뒷좌석 문을 주먹으로 내려치던 남자.


웨일스 시골에 살 때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리 집 담을 넘다가 걸린 적도 있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누군지 다 알고 있다며 가서 타이르겠다,라고 했다. 그 뒤 그 아이들이 울타리 너머에서 소리를 지르고 발로 차서 울타리 한 부분을 망가뜨린 적도 있지. 남편은 길길이 날뛰며 정식으로 신고하겠다, 경찰에 항의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도리어 남편을 말렸다.

당시에는 육아휴직 중이라 나 혼자 아이를 돌보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나 혼자 있을 때 보복당할까 봐 두려워서. 실제로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에 오는 길, 동네 근처에서 고작 해봐야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욕을 하며 들고 있던 우유통을 내 차에 던진 적도 있고.


문제가 있는 가정들을 돕는 사회복지 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는 가정 방문을 할 때 절대 코트를 벗거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다. 위생상태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앉을 만한 곳이 없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곳도 많다고 하지만), 어디에 needle (주삿바늘)이 박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택시 기사로 만난 운전기사는 뉴포트 (Newport)에 사는데 그 거리에 흑인 가족이 자신들 밖에 없어서 매일 일이 생긴다고 했다. 누가 창문에 돌을 던지고, 정문에 낙서를 하고, 밤에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침입 시도도 있었고.. 예전 집주인이 빨리 이사 가는 바람에 집을 싸게 구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주인이 휴가를 간 동안 그 집에 도둑이 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도둑은 금방 잡혔는데 바로 그 집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끔하게 셔츠를 차려입고, 차 안도 깔끔하고 방향제까지 뿌려두며 손님을 배려하던 그 운전기사는 내가 사는 곳은 살기 좋냐는 말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런 속내를 털어놨다.


그런 까닭에 남편과 나는 이사를 하기 전에 꼭 경찰청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지역별 범죄율과 자주 신고되는 범죄의 유형을 확인한 뒤 소거법을 사용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역들을 제외한 뒤 집을 보러 갈 때도 꼭 주변을 먼저 확인했다. 살기 좋은가, 교통이 좋은가, 그런 게 아니라 주로 보는 건,


첫째. 집들의 형태와 주변의 관리 상황. 따닥따닥 붙은 Terraced house 밀집 지역이 근처인데 대부분 앞정원이 관리되어 있지 않고 쓰레기로 덮여 있거나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수상하게 창문이 틀어 막혀 있는 집이 여러 곳이다? 그러면 피하는 게 낫다.


둘째. 주위에 버려진 건물이나 공간이 있는가. 그리고 근처에 버려진 캔이나 병들이 많은가. 주위에 그쪽 근방을 체크하는 CCTV가 있는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인가. 이런 곳은 주로 사람들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 무리들이 저녁에 모이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아주 자석처럼 그 동네뿐 아니라 대충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모든 동네 어둠의 무리들을 끌어당기니 피하는 게 좋다.


셋째. 주위의 편의시설들과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돌아오는 길이 안전한가. 가로등이 제대로 켜져 있고 음침한 지름길이 없는가. 한적해 보이는 산책로라도 대놓고 산책로로 만들어서 정부가 관리하는 곳이 있고, 어쩌다 보니 빈 공간이라 산책로가 되어 버린 곳이 있다. 이럴 때는 그 산책로의 관리 상태를 보면 된다. 쓰레기가 무단 투기 된 곳이 많고, 특히 맥주병이나 캔이 아침에 자주 발견되고 수풀이 무작위로 자라 있으면 그곳은 해가 진 뒤에는 피하는 게 낫고.


넷째. 이웃들 파악. 이웃들의 정원이 잘 관리되어 있는가. 차는 몇 대가 있으며 어떤 종류인가. 그들의 거실 창문에는 어떤 장식이 되어 있는가 (보통 영국의 집은 정문 옆에 거실이 있고, 창이 크기 때문에 대충 안을 볼 수 있다). 쓰레기통 상태는 어떠한가 (영국에서는 집마다 녹색, 검은색의 쓰레기통이 배치되어서 정해진 날에 정부에서 수거해 갈 수 있도록 밖에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도를 정말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내 바로 옆집뿐 아니라 내 뒷 정원이 어디로 통하는지, 울타리가 어디를 어떻게 지나는지. 울타리의 뒤에 나무와 수풀 밖에 없다면 그 뒤에는 어디로 연결되는지. 혹시 샛길이 만들어 진건 아닌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인지 등등.




너무 민감한 거 아니냐고요?


이렇게 난리를 쳐서 이사를 해도 영국에서는 그림자처럼 그런 다크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ㅠ_ㅠ


지금 새로 온 이사 온 곳은 정말 이것저것 다 따져서 최선이라고 생각한 곳이죠. 실제로 아무런 문제도 없긴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첫째 아이가 그런 소릴 하더군요.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싸움판이 벌어진다고. 도대체 무슨 싸움판? 하고 놀라서 물어보자 학교에 CCTV가 없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몇몇 남자아이들이 싸운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걸 모여서 구경하고, 어떤 아이들은 아예 비디오를 찍어 snapxxx 같은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더군요.


그러면서 자기 친구 중 한 명이 누가 찍은 비디오를 공유해 보내줬다고 보여줬는데... 와.... 정말...

어떻게 이제 고작 11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게 주먹으로 치고 박을 수 있는지.

그것도 진짜 화가 나서 싸우는 게 아니라 마치 그게 게임인 것처럼.

맞은 아이는 이마에서 피가 나던데...

(학교에는 따로 연락했습니다)


물론 이게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일반화를 시킬 문제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죠.

그런데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자동반사처럼 경고등이 울려 대기 시작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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