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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Dec 20. 2021

언덕에서 불어온 바람

바람 덕분에 걸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8시는 세상으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가방에 책 한 권, 마음에는 설렘을 담아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읽는 책은 마음을 흔들었다. 낯가림이 있고 누군가 앞에서 말하는 것을 심히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지만 새로운 만남과 낯선 공간이 오히려 활력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소개하는 독서 모임에서 다시 내 이름을 찾았다. 누군가의 엄마로 만난 자리가 아니었기에 온전한 나로만 존재하면 됐다.


독서 모임에는 책과 사람이 있다. 그곳에 있으면 다정한 온도가 느껴진다. 책을 통한 유대감과 따끈따끈한 이야기 덕분이다. 이야기는 살아온 환경과 배경 지식에 따라 색이 다르다. 다름은 배움이 되고 공감은 기쁨이 된다. 독서 모임은 책 속의 사람과 나를 연결한 후, 마주 앉은 사람과 다시 연결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책에서 느낀 벅차오름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말처럼. 나눌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실거렸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독서 모임은 '육아'라는 틀에 갇혀 육아서만 읽던 내게 다른 길을 보여줬다. 세상은 넓은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삶 전체를 보지 못하고 유아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했다. 책은 인생을 걸어볼 목표를 찾으라고 했다. 인생에서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내게 질문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것은 꿈꿀 수 있다는 뜻이고 '너의 삶을 살라'는 명령 같았다. 참 반가웠다. 

    

길의 방향을 바꿨다. 아이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삶을 사는 것.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찾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겪은 '엄마의 노하우'를 말해주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니 하루하루가 새롭다. 이 길에도 좌절과 실패가 있고 안갯속 같지만 그럼에도 흥미롭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길은 나를 발견하는 일이고 삶의 주제를 찾는 길임으로 작은 성공에 감사하며 뚜벅뚜벅 간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나를 키우는 게 좀 더 쉽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오르던 언덕길. 너무 힘들어서 팔을 쭉 뻗고 고개를 숙여 땅만 보고 걸었다. 어디까지 올라왔을까 고개를 들어볼 겨를도 없이 밀고 또 밀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청량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환기시켰다. 바람 덕분에 다시 걸었다. 독서 모임은 그런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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