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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아 Jun 29. 2020

머리의 영역, 마음의 영역

'아는 것'과 '마음'의 간격을 좁혀나가기


첫 상담을 앞둔 내 기분은 참 복합적이었다. 예약할 때만 해도 기분이 착 가라앉았었는데 상담 당일이 되자 오히려 설레면서 에너지가 돌았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게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환경 밖의 사람이 환경 속의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담 선생님이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 나는 내가 속한 상황과 그 속의 인간관계와 이해관계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풀어 설명해야 했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피곤한 일이다.

나는 상담 센터가 위치한 건물로 가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내 상황과 감정, 증상을 선생님께 전달할 수 있을지 내내 궁리했다. 마치 면접을 보듯이 예상 답안을 준비했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러는 와중 내 감정에 취해 울컥하기도 했는데 애써 가다듬고 내가 말해야 할 내용을 다시 정리했다.


.


처음 만난 선생님과 나는 좀 어색했다. 나는 쾌활하게 행동하려 했다. 힘들어서 상담을 받으러 간 거였는데도 왠지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사회 부적응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행동하려 했던 것 같다. 의기소침하거나 침울하거나 차마 말을 잇지 못하거나 내내 울거나 하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어떤 부분에서 상담을 받고 싶냐는 예상 질문이 나오자 나는 준비했던 답안을 줄줄이 읊었다.

요즘 무기력이 너무 심해요. 내일이 오는 게 싫어서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가 늦게 눈을 감으면 자꾸 잡생각이 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퇴근 후에 휴대폰 진동이 오면 업무 메일이나 전화일까 깜짝 놀라구요, 왠지 모르게 속이 답답해서 입맛도 없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모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상담을 받게 됐어요.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은 질문을 몇 개 더했다. 나는 ‘역시 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질문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예상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미리 준비한 대로 내가 처한 상황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잘 들어줬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정확한 질문이 뭐였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대충 현재 상황이 힘드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 나는 부정했다. 긍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힘들죠. 부담감도 심하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웃었던가.

“잠도 못 자고, 소화도 안 되고, 입맛도 없고, 휴대폰 알람에 깜짝 놀라고…되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별안간 둑이 무너졌다.

나는 내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내 얼굴은 몇 번 눈물을 참으려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네, 맞아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함께하면서.


왜 거기서 그렇게 울음이 터졌을까?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고, 실제로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는데.

아마 그때 그 공간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흐름이 나를 건드렸겠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분명한 건 내가 그토록 꾸미려 했던 내 모습이 그 순간 깨졌고, 내가 선생님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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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내게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따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론으로만 알고 경험해 본 적 없는 것.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공식은 알지만 어떤 문제에 적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지식은 있지만, 지혜는 아닌 것.

즉, “마음을 따르라”는 것.

책이나 강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소재라 그런지 선생님이 한 말을 듣자마자 바로 여러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문장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열거한 표현이 나타내는 바가 비슷하다는 걸 ‘알’ 뿐이다.

이론과 실재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나는 그 틈이 아주 먼 사람인 듯하다. 이론이 앞서 나가고 마음이 한참 뒤에서 따라가고 있지 않을까?

나의 불안과 힘듦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나는 책을 읽고 ‘마음을 따라가야 한다’를 새로운 문장으로 또 배웠다.

이론을 배우는 건 때때로 내가 그 분야에 통달한 것 같다고 느끼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 느낌과 성취감으로 허물어가는 마음을 붙잡았겠지.

나는 상담을 통해 '아는 것'과 '마음'의 간격을 좁혀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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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시간을 얘기했을 뿐인데 나는 충족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심지어 준비한 ‘예상 답안’을 반도 말하지 못했는데 아쉽지 않았다.

"상담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좋았어." 이상으로 자세히 말할 수 없었는데 앞서 말했듯 환경 밖의 사람에게 환경을 이해시키는 건 아주 에너지 소모가 큰일이라 상담으로 진이 빠진 나는 내가 느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눌 힘이 없었다.

다만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한동안 나는 나 혼자 보는 글도 쓸 수 없었다. 켜켜이 쌓여 오래 묵은 감정은 엉망진창으로 얽혀 어디서부터 손을 대 써 내려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덩어리를 차근차근 살펴 시작점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그저 참기만 했다.

상담을 통해 외면해왔던 덩어리를 직면하게 되니 글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간단히 일기로 시작해서 문단을 쓰고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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