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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13. 2021

남자 때문에 모녀가 싸워본 사람 나밖에 없을걸?

패룬 여행기, 호주편EP4

네 번째 패륜 : 문화 차이, 세대차이 좁힐 수 없는 간격이라면, 미리 쳐냈어야 했다



지난 편에서, 모든 액티비티 시간이 끝나고 육지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엄마가 말했다.



"아까 우리 가르쳐준 외국인(아마 중국사람) 스태프한테 시원한 음료수라도 하나 사주고 오렴. 아까 우리를 잘 챙겨주는 것 같더라"


아니 뭘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남들 챙겨주는 것만큼 챙겨주던데... 그것도 그렇고 스태프라서 자기네 배인데 마실 거야 음료수도 그냥 마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해서 영 안 내켜서 처음에 엄마 말을 거부했다.


"빨리 가서 한잔 사주고와!"


아효.. 엉덩이 들고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우리 엄마가 아까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음료수라도 대접하고 싶으시대, 뭐 마시고 싶은 거 없니?" 하니 "아냐 괜찮아. 음료수는 언제라도 먹을 수 있어 마음만 받을게"


내 그럴 줄 알았지. 엄마에게 돌아와서 상황이 이렇다고 하니


"그럼 음료수 말고 먹을 거라도 사주고 와, 너무 고마워서 그래"



아... 또 발동했다. 엄마의 파워 오지랖. 거기서 내가 오지랖 좀 부리지 말라고 차라리 팁을 주면 줬지 이건 이상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냐고 정말 강하게 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고집을 못 꺾고 결국 또 그에게 다가갔다.


"어게인 익스큐스 한데, 음료수 말고 내가 사줄 수 있는 건 없니?" 하니 그는 "괜찮아, 정말로" 하고 대답했다.

그랬는데... 한 십 분쯤 뒤에 우리 모녀에게 다가와서 "그럼 저녁같이 먹을래요"라고 되물었다.

어떻게 면전에서 거절을 하겠는가..... 두 번이나 먼저 다가가서 물어봐놓고는. 엄마는 당황한 얼굴 그대로 오케이 오케이라고 그냥 말하셨지.



바로 이것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작은 오지랖으로 여행이 폭망! 했다!



그와 엄마와 나는 아귀찜을 하는 한식당을 갔다. 유일한 좋은기억은 엄마가 이곳의 음식을 정말 맘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호주 여행 동안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물론 이건 내가 음식다운 음식을 한 번도 안 먹였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차차 풀겠다.



식사시간 내내 그와 나는 계속 영어로 얘기했다. 유일하게 통하는 언어가 영어니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영어를 못하니 나를 통해 그와 대화했다. 대화는 유쾌했다. 여행의 묘미는 원래 갑작스러운 인연에서 낯선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알게되는거니까. 그렇게 엄마가 저녁 턱을 내고 나니, 그가 고마우니 케언즈 시장 구경을 도와주겠다며 시장으로 안내했다. 내 관광 계획에는 어차피 시장을 가볼 생각이었으니 수락하고 동행했다.  


이후 헤어지면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받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엄마가 짜증을 내셨다. "그 사람은 밥만 먹고 가면 되지, 왜 우리랑 자꾸 같이 다니려고 그러니? 그리고 메신저는 왜 교환하고 그러니? 너 개랑 또 연락할 거니?"  


황당스러웠다. 나는 처음부터 말렸는데 엄마가 음료수 사주라고 시작해서 이렇게 된 거고, 밥 사 줬으니 관광 도와준 거고, 또 호주 오면 연락하라면서 메신저 친구 맺은 건데 뭐가 문제야? 하고 나도 짜증을 내니


"몰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니, 아무튼 너 개랑 연락하지 마. 외국인이랑 사귀는 거 아냐"




무슨 알고리즘이지?

호의->맞호의->지인->국제연애-> 결혼?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참았다.


이 일이 그다음 날도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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