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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Nov 02. 2020

자작나무 숲, 가을 단풍

오르막길엔 끝이 있다

 최근 직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몰리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바로바로 처리해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닌 하나씩 분석해보고 여러 방안들을 고민하여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쌓이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지만,
반대로  삶은 정체된 것만 같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데에서 오는 속도감이나 성장감보다는 계속해서 가파른 산을 똑같은 속도와 똑같은 스킬로 힘겹게 오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면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맞닦들이게 되었고, 하나를 해내고 나면 또 다른 어려운 일이 주어졌다. 일을 해낸다기보다 쉴틈 없이 일을 해치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쯤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지, 성장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정체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었다.


 오르막길 끝에 정상은 가까워지고 있는 건지 의심만 가득 안은 채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자작나무 숲의 가을 단풍을 보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하루 휴가를 내고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자작나무 숲은 워낙 유명한 인제의 관광지이기도 하고 사진으로도 많이 봤던 곳이라 기대를 가득 안고 출발했다. 도착 후 펼쳐진 등산로는 사실 내가 생각한 느낌은 아니었다. 여타 수목원처럼 입구 들어가면 바로 자작나무 숲이 쫙 펼쳐져있고 한적하게 한 바퀴 돌 수 있는 가벼운 산책로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절대 가벼운 산책로가 아니었다. 자작나무 숲은 산 정상에 있었고 약 4~50분이 걸리는 긴 산책로였다.


 등산로 초입에는 두 갈래 길이 존재한다. 왼쪽 길은 가파르고 다소 험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고, 오른쪽 길은 잘 정돈된 둘레길이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코스라고 했다. 내려오시는 분들의 추천에 따라 조금이나마 시간이 덜 걸린다는 가파른 등산로길을 선택해서 호기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리얼한 등산길이었다. 가파르기도 하고 가을이라 낙엽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올라가다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이십 분쯤 등산했을 때에, 순간 왜 나는 사서 이 고생길을 걷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하고 쉬려고 온 여행인데 막국수 하나 먹고 등산을 이렇게 길게 하려니 힘들었다. 하지만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심히 올라갔다. 힘들면 중간중간에 경치도 감상하면서 쉬고 올라가고를 반복하다 보니 사진에서 보던 그 광활한 자작나무 숲이 등장했다. 길고 긴 자작나무 숲 한가운데 앉아있으니 피톤치드의 상쾌함과 힘들었던 게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인제 자작나무 숲   by @namu

 

 삶도 등산로와 같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막상 그 길은 가파르고 험난하며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인생길일 수도 있다.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는 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중간중간 이정표가 없으면 알 수가 없다. 눈앞에는 끝없는 오르막길만 보이고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계속 똑같은 등산길이다 보니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곳에 정체된 것이 아니다


 나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고 정상과의 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분명 가까워오고 있다. 최근에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분명히 한 단계씩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지만 막상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어렵게만 느껴졌고 지쳐갔던 것 같다. 자꾸만 새롭고 어려운 일들에 부딪힐 때마다 다 놓고 그냥 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멈춰있던 게 아니라 오르막길을 열심히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이 보이지 않을 뿐 정상을 향해, 성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고 곧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성장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삶의 피톤치드를 흠뻑 마실 수 있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는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 중이어서이다


 헬기를 타고 보면 저 사람은 조금만 가면 정상 도착하겠네 하고 한눈에 보이지만 정작 그 길을 오르고 있는 나는 얼마큼 왔는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주변에서도 내가 얼마나 왔고 얼마큼 남았는지 잘 얘기해주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등산로를 걷기에도 충분히 벅차다.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쉬지 않고 잘 올라왔다는 것과 곧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휴가가 끝나고 주말이 지나면 또 어김없이 일의 파도 속으로 들어가서 할 일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오르막길에는 반드시 정상이라는 끝이 있다. 지치고 힘들수록 나는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가볍게 달려보아야겠다. 중간중간 풍경도 감상하고 여유도 챙기면서.





인제 자작나무숲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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