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시인이다
앰뷸런스/ 김미희
에용에용
앰뷸런스가 달려갑니다
내 심장도
에용에용
쿵닥거립니다
누가 다쳤을까?
어쩌다 다쳤을까?
얼마나 다쳤을까?
앰뷸런스가 달려가는 곳으로
내 눈길도 따라갑니다
전쟁 세대도 아닌데 나는 민방위 훈련 공습경보가 울리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119 소방차 소리만 들려도 주위에 큰일 난 거 아냐? 이를 어째? 걱정스럽다. 길을 가다 앰뷸런스가 경광등을 켜고 달려가면 다친 이가 누군지는 모르나 제발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나는 내가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 중 하나가 별것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얼마나 잘 우는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볼 때면 민망하다. 그런데 나보다 더 잘 우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았다. 글을 쓴다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가보면 나보다 더 울보들이더라. 나만 눈물이 헤픈 게 아니구나 위안이 된다.
감성이 풍부하다는 건 쉽게 동화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화된다는 걸 나쁘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 말에 쉽게 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꼭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이해타산이 적다는 것이고 순진무구해서일 게다. 요즘 아이들은 덜 그렇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즉각 반응으로 이해타산을 따지는 게 정말 본능적일 만큼(물론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려를 생각해야만 하는 깍듯한 예의도 어쩌면 이해타산이다.)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느낀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은 진심으로 같이 슬퍼한다. 위로의 기교를 부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내 얘기에 슬퍼하는구나. 즐거워하는구나 바로 느껴진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다. 그 친구가 왜 좋은지 이유를 모른다. 좋은 것엔 이유가 없는 것이 맞는 말 같다.
또래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친구와 어울리라고 일찍부터 유치원 보내고 학원도 보낸단다. 그만큼 또래집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곳에 보내지 않아도 마음 맞는 이웃끼리 골목 친구같이 어울릴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픔을 나눌 친구, 기쁨을 나눌 친구, 소중한 사람을 만들어주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아이들이 119 소방차 같은 소리에 무감각해진다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원래 나와 이웃한 사람들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느낄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요즘 어른들이 자꾸 그 마음을 무디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원수 선생님은 아이들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겨울나무에 보내는 시선도 참 따뜻하다. 따뜻함을 가진 아이는 결코 나쁜 아이가 될 수 없다. 절대로 사회에 악을 끼치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원수 선생님한테서 흘러나온 따스한 전류가 우리에게로 흐르기 때문이다.
『겨울나무』
이원수
나무야, 옷 벗은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오늘의 TIP:감성은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
다양한 경험과 공감력을 부르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전래동화나 창작동화 등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