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주 수다스러운 새가 산다.
수다새는 가히 대한민국의 텃세라 할 만하다.
그게 여고라면 서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임이 틀림없다.
갓 여고생이 된 수다새는 9시 야자를 마치고 오면 꼬박, 정말 꼬오~박 1시간 동안 13시간 학교 감금스토리를 풀어놓는다. 딸은 내가 쓰는 청소년시의 보고이기도 하다.
내 시 저작권의 일정 지분을 보유한 딸의 어제 이야기이다.
학교에는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는 국어 선생님이 계시다. 학교 화분의 팔 할을 돌보시는 분이다. 만약 훈민정음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면 날마다 물을 주며 말을 건네고 눈 맞춤을 하며 우리말 꽃을 피워냈을 거라고 딸은 증언한다.
‘5교시’.
발음하는 순간, 교실에는 No. 5! 졸음 향수가 퍼진다. 향이 딸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연세 지긋한 선생님의 애도사를 들은 몇 안 되는 산증인이니까.
봄이라 전파력이 상승하는 한낮, 졸음을 몰고 온 바이러스 숫자 5에 아이들은 가물가물. 서서히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국어 선생님께서,
"너희들 자는 거야? 그렇다면 지금부터 깜짝 놀랄 얘기, 지구가 두 쪽 날 얘기, 잠이 번쩍 달아날 얘기를 하겠다.”
지구 멸망을 감지한 표정으로 울먹이며 전한 국어 선생님의 슬픈 소식은 이렇다.
"글쎄, 내가 심은 장미가 아침에 와보니 다 죽어 있었어.”
한껏 기대했던 딸은 풋, 웃음이 터져버렸다.
남은 시간 지구는 멀쩡했고 친구들은 달콤히 주무시었단다.
나무를 끔찍이 사랑한 그 마음은 여고생 졸음 퇴치에는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좋은생각 2022.9월호/김미희(시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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