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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Dec 02. 2022

휴직일기를 닫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작년 초 난 휴직을 앞두고 있었다. 13년 만의 장기 휴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그때 그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오랜 세월 묵혀놨던 내 마음 깊숙한 그 어딘가에서 매일매일 시도 때도 없이 활자가 쏟아져 나왔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써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물밀듯 밀어닥치는 그 감정들을 어떻게 전부 해소했을까. 되돌아보니 그 경험은 모두 갑작스러운 휴직으로 인한 허망함과 불안을 글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보잘것없고 두서없는 텍스트들의 집합이지만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순수함이 날 심으로 위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기록 덕분에 작년 한 해는 하루하루가 생생하다. 제주에서의 한 달 살기를 시작으로 꿈만 꾸던 일들을 현실로 구현도 해봤고 실업자나 다름없던 휴직자의 삶을 통해 취업난에 던져진 청춘들의 아픔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바깥일로 집을 비운 사이 아이와 할머니가 어떤 하루를 보내며 얼마나 돈독한 연대감을 쌓았는지도 직접 목격했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하루는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바쁘고 정신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뿐이던가! 항상 차를 타고 출퇴근하며 지나쳤던 동네 어귀를 찬찬히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고 소문만 들었던 동네 오일장에 가서 아이와 함께 먹은 잔치국수와 녹두전은 생각만 해도 여전히 군침이 돈다. 평일날 한적한 도서관에 앉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독서를 하고 궂은 날씨에 집 안에 앉아 창 너머 꽉 막힌 도로를 볼 땐 그 도로 안에 갇혀 있지 않음에 내심 작은 희열이 내 안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던 지인은 자신에게 꼭 맞는 신발 같은 직장을 찾아 출근을 시작했다. 그 사이 난 8개월 만에 이직한 회사와 짧은 5개월의 겨울을 보낸 뒤 힘겨운 결별을 다. 그 5개월은 내게 맞지 않는 커다란 신발을 신고 발을 꼼지락거리며 용을 쓰고 한 발을 떼어보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큰 신발은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자꾸만 벗겨지는 신발을 억지로 신고 다니다 결국 밤마다 쥐가 난 종아리를 부여잡은 채 차마 소리도 못 지르고 참아내는 격이랄까? 그 이별을 뒤로하고 다시 나와 연이 닿은 회사는 또 그 나름대로의 시련을 주는 중이다.


이직 후 9개월쯤 되니 100퍼센트 원격 근무에서 오는 외로움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얼굴 보고 의사소통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긴 버퍼링이 생기고 모든 일에 내가 갖고 있는 최대치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곧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그 스트레스는 상사가 괴롭히는 등의 일반적인 오피스 환경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가끔씩 한국 오피스 구성원을 실제로 만나 함께 행사를 치르면서 맞부딪히는 많은 일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실망이다. 그들의 프로답지 못한 처신과 무능함에 안타까움을 넘어 가끔씩은 화가 난다. 나도 그들과 도매급으로 묶여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할 정도.

 나보다 한참 어린 이들을 보며 나도 저 때는 좌충우돌 했다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려 노력해봤지만 중요한 행사날 술 먹고 뻗어 연락두절 후 점심시간에 겸연쩍은 표정으로 나타나는 종류의 일들은 도저히 내 머리론 용납이 안 된다. 것도 한 둘이 아니라 돌아가며 아무렇지 않게 '실수'를 반복하며 서로 놀리는 이 분위기를 어째야 할까. 가끔은 내가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에 가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으쌰 으쌰 하고 같이 즐거우면 뭐든지 무마되는 대학 동아리.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경력을 쌓은 것이 아닌데 그들의 상사가 아닌 나로선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혼자서 그들과 심적인 거리를 두는 것 외에는.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그들과 나는 자꾸만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애초부터 섞이기 힘든 조합이긴 했다. 속해 있는 팀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그들처럼 술도 먹지 않는 나는 물에 뜬 기름처럼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둥둥 떠다닌다. 처음에는 팀장 시절 팀원들을 대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싶었다. 그들보다 조금 더 오래 일해본 경력이 있으니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 의미 있는 의견을 개진하고 외부와의 협력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그들에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그냥 난 내 월급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일하며 이곳에서의 경력이 내 능력을 하향평준화시키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이로써 내 휴직 일기는 이만 쉬어가야 할 시간이 왔다.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때에 퇴직을 하기 전까지는 다시 이 휴직 일기를 쓰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비록 완벽한 회사에 정착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입버릇처럼 말하던 원격근무 소원을 이뤘으니 당분간은 이에 만족하며   밥벌이를 이어 나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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