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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20. 2022

직장생활, 이래서 힘들지

이게 술인지 눈물인지...

얼마 만에 와본 워크숍이더라... 코로나가 터지기 전 2019년 6월, 당시 팀원들과 가평으로 훌쩍 떠났던 워크숍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성격도, 나이도, 갖고 있는 장점도 제각각 다른 팀원들과 인천 앞바다가 훤히 내다 보이는 션에 함께 있는 이 현실이 참 새삼스럽다. 화상 미팅에선 차마 하지 못했던 사적인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고 술 한잔 기울이며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한 어린 팀원은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길고 긴 하소연 끝에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 그런 그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회사생활 오래 하다 보면 이보다 더한 일도 많아요.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니!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겪었던 회사생활의 어두운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에피소드 하나. 선배의 갑질과


2008년 5월, 5년간의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영국 파운드가 2300원을 넘나들던 그때 환율에 적응이 안 되어 한국 물가가 엄청 싸게 느껴졌던 애송이 시절. 100만 원짜리 헬스장 회원권을 아무렇지 않게 일시불로 결제하고 일주일 뒤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월급의 절반이 빠져나간 뒤였다. 이렇게 아직 영국 물이 덜 빠진 그때 보수적인 아재들만 가득했던 회사는 내게 지뢰밭 같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시절이다. 업무 시작 15분 전까지 출근하라는 팀장의 지시로 매 30분씩 일찍 출근했다. 그 시간이 아까워 업무 시작시간까지 탕비실에 앉아 조간신문을 정독하며 하나둘씩 출근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겐 꼴불견이었나 보다. 빈 회의실에 끌려가 '어디 신입사원이 아침에 신문을 보고 있냐'며 혼이 났다. 퇴근시간이 15분 지난 시각, 팀장 눈치를 보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내일 뵙겠다고 먼저 퇴근한 다음날 어김없이 또 회의실로 불려 갔다. 자신은 냄새에 민감하니 뿌리지도 않는 향수를 뿌리지 말라며 선제 경고를 받았고 주말엔 기러기 아빠였던 심심한 팀장님이 부르면 마시지도 않는 술 동무를 하러 나가야 했다. 어느 날은 옆에 팀원과 얘기하며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가 또 회의실로 불려 갔다. 외국생활을 해서 자유로운 건 알겠지만 그런 행동은 버릇없어 보인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던 기억. 그중에서도 날 지속적으로 회의실로 부르던 한 명은 자신에게 물어봤던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또 물어본 걸 봤다며 자신을 무시하냐며 급기야 스토커처럼 전화를 해서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시각까지 전화를 해대는 통에 당시 혼자 자취를 하던 나는 혹시라도 집에 찾아올까 봐 엄청 겁이 났었다. 요즘 같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라도 할 수 있으련만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이 실패할까 봐 엄청 전전긍긍하던 소심이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엄청 인정받는 직원이고 그래서 나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면 모두가 믿을 거라며 자신에게 잘하라고 협박하던 그 망상가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때마침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안 났다며 아마도 그 회사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에피소드 둘. 인성 쓰레기 상사와의 조우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난 후 좋은 팀원들과 다시없을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지만... 육아휴직을 간 선배 대신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 유형이다. 그는 아픈걸 꾹 참고 일하다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조퇴를 하겠다는 한 신입사원에게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며 욕을 해댔고 자신이 쳐놓은 사고의 수습을 이제 갓 입사한 사원에게 전가하기 일쑤였다. 자신이 시킨 일이 처리되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며 상대방을 채근했고 심지어  사원은 그 전날 시킨 일이 아직 안되었다는 이유로 출근하자마자 가방도 못 내려놓고 불려 가 30분씩 욕을 들어야 했다. 회사 카드로 회식을 하는 것이 본인이 한턱내는 것인 양 선심 쓰듯 했고 그렇기에 미리 잡힌 회식자리도 본인 수틀리면 당일 취소도 예삿일이었다. 인은 집이 멀어 명절 전날 오전 근무를 하고 고향에 내려가겠다며 퇴근해버렸으면서 후배들은 6시까지 자리를 꼭 지키는지 확인하던 양심 없는 인간. 저히 눈뜨고 못 볼 만행들이 펼쳐졌고 1년도 안된 신입사원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그중 한 명이 마지막 날 울먹거리며 했던 얘기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과장님... 전 여기서 인간의 밑바닥을 본 것 같아요."

 

에피소드 셋.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어디서나 진리이다. 좋은 팀원들이 많았지만 개 중 한 둘은 언제나 그 법칙이 건재함을 일깨우곤 했다. 지각을 안 하는 날이 드물고 명분 없이 아무데서나 법인카드를 긁고 다니단 인간. 입찰제안서를 제때 내지 못해 회사에 피해를 주고 술만 먹으면 인사불성으로 고객에게 안겨 함께 간 나를 창피하게 만들던 그녀. 새빨간 립스틱에 새하얀 털코트를 입고 PT 장소에 나타나 자기 자랑만 5분 넘게 발표하던 그 어이없는 과장은 어느 날부터는 아예 출근을 안 하고 외근을 하고 있다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6시가 되면 외근이 끝났으니 현지 퇴근하겠다며 통보를 했다. 당시 마음 약한 팀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고 보다 못한 팀원들 직접 이  미꾸라지를 잡기로 했다. 외근을 했다면 만난 고객이 있을 터 그 고객한테 직접 확인해보니 그녀의 외근은 예상대로 전부 거짓이다. 그 일로 1년 정직을 당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직을 시도했던 그녀는 직원들의 냉소적인 반응에 결국 짐을 쌌다.


과거에 이런 일들을 겪었다고 해서 현재 겪는 일이 괜찮을 리 없다. 다만 현재 날 힘들게 하는 모든 일들에 결국엔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견뎌낼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 내 앞에서 눈물짓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이 상황이 사회가 나만을 겨냥해 벌이는 테러는 아니라는 사실과 이 또한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업무용 자아와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분리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인지 눈물인지 구분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펑펑 쏟아 내고 있는 그녀가 내일 아침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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