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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Feb 14. 2023

디지털 노마드, 그 후 1년

100% 원격 근무를 하는 회사로 이직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간 여러 차례의 국내 행사와 두 번의 해외 출장을 경험하며 너무나도 생소했던 산업분야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일 년은 내가 과연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한 지속가능하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을지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 주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에도 어느덧 완벽하게 익숙해져 오늘처럼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새벽녘에 눈이 떠져도 피곤해질 하루에 걱정이 앞서지 않는다. 외려 출근 걱정 없는 편한 마음으로 오직 시곗바늘만이 정적을 깨는 고요한 지금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장착하게 되었다.   


지난 1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그렇게도 염원하던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업무 환경에 꽤 만족하는 편이다. 특히 워킹맘으로서 항상 시간이 없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해낸다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크다. 한낮에 아이의 수영 레슨을 위해 수영장을 오갈 수 있고 아이가 방학을 해도 혼자 집에 있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학원 가기 전 든든하게 점심을 챙겨주고 잠시 집에 들른 시간엔 간식거리도 입에 물려준다. 이렇게 10년 넘게 밖으로만 돌던(?) 엄마가 매일 집에 있음으로써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것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출퇴근을 안 하니 교통비가 확 줄었고 계절별로 옷을 딱히 살 필요가 없어 불필요한 지출도 줄어든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집에서 하루종일 처박혀 일하다 보니 하루 세끼 꼬박 시간 맞춰 먹던 식사 루틴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아침에 눈을 뜨면, 배가 고프면, 짬이 나면 계속해서 무얼 먹는다. 그렇게 난 확 찐자가 되어버렸다.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하나 들여놨으나 나보다는 빨래들이 그 위를 점령하는 시간이 더 많고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배우기 시작한 골프는 비싼 부대 비용 때문에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되어 포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자유로운 시간활용을 위해 포기했던 지금보다 높았던 연봉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돈을 많이 벌면 쓸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으면 쓸 돈이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내 잠시 잊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그립다. 하루종일 정적 속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가끔씩 채팅으로 말을 거는 동료들의 인기척을 제외하면 완벽히 혼자라는 사실이 때로는 쓸쓸하다. 그럴 때면 주저 없이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 많은 카페에 가서 일을 한다. 북적이는 소음에 파묻히면 그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바로 옆에 있었다면 1분이면 해결했을 궁금증과 시급한 업무 논의가 동료들과의 시차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핑계 삼아 차일피일 늘어지는 것도 긍정적일 순 없다. 이러한 업무 방식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직원들이 함께 업무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일이 속도 있게 진행되기 어려운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동료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할 말이 좀 많다. 회사가 속한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 특성 때문에 동료들의 배경이 참으로 다양하다. 임상병리사처럼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하다 온 사람도 많고 제대로 회사 한번 다녀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컨설팅을 할 만큼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사가 개최하는 행사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입사를 한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본사가 있는 일명 외국계 회사지만 보통 우리가 외국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상하는 무언가 샤프하고 수준 높은 업무 역량을 기대하기엔 2% (실은 그 이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항상 타이트한 데드라인과 명확한 목표를 갖고 정말 똘똘한 사람들과 일을 해온 나로서는 기암 할 일이 너무 많다. 첫 6개월은 계속 그렇게 놀람과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편한 것에 길들여지기는 쉬운 법. 시간 엄수를 목숨처럼 여기던 나도 이들의 고무줄 같이 한정 없이 늘어나는 'soon'이 어쩌면 'never'와 같은 의미일 수도 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받아들였다는 것이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내 성격으로는 죽어도 적응이 안 되는 문제다. 다만 이 시스템에서 답답해 가슴을 치며 숨 넘어가지 않으려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지 어떤 문제는 그냥 간과해도 될지를 매번 잘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대로 틀이 잡혀 있지 않은 인사 시스템에는 지속적인 요청과 문의로 끈질기게 회신이 올 때까지 대응할 생각이다. 1년이 되어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봉협상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가 몇 개월째 공석임을 알기에 더더욱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애초에 이 회사에는 매년 연봉협상을 한다라는 전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라 큰 기대는 없지만 내가 내 밥그릇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랴. 해줄 때까지 계속 요청할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중에서도 마음 맞는 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비록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일을 하지만 매번 내가 괜찮은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봐 주고 물어봐 주는 그녀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다. 게다가 그녀도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 보통의 회사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내 답답한 마음을 공감해 준다. 그녀도 처음에 나처럼 심한 멘붕을 겪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함께 바꿔나가자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들어 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내게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했다. 일을 하는 목적이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원초적인 것을 넘어서서 언제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실현이 커다란 목표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동료는 내게 커다란 힘이자 하루를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동료들이 물리적으로 내 곁에 있지는 않지만 화면을 통해, 목소리를 통해, 글을 통해 그리고 이모지를 통해 전해오는 그들의 인정과 격려, 공감이 물리적인 교감 못지않은 커다란 힘이 됨을 인정해야겠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또 다른 1년을 버티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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