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가는 길

안식월의 시작

by 지오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 말은 어쩜 그리도 잘 들어맞는 걸까.

어떤 이는 코로나 환자가 1 천명씩 나오는 이때 굳이 제주도를 가야겠나며 쌤통이라고 하겠지만, 오랜 세월 이 날만을 기다려온 내게 영하 12도의 날씨와 대설로 인한 비행기 결항은 너무 야속하기만 하다.


'드디어 제주에서의 안식월이 시작된다'라는 기쁨에 들떠 제주에 눈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비행기 결항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11시까지 모든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걸 아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럼 그렇지, 왜 나는 모든 일이 이렇게 어려운 걸까......'

포기하는 심정으로 오후 늦은 비행기와 내일 새벽 비행기까지 추가로 예약해 놓은 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띠링~ 체크인 중'이라는 문자 도착. '아...... 하늘이 완전히 버리시진 않는구나!'

체크인을 도와준 직원은 "제주공항의 기상악화로 여전히 지연과 결항의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지만 비행기표를 받는 순간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제주에 도착하니 눈보라가 심상치 않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제주의 거센 바람이 합쳐져 눈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겁이 덜컥 났다. 제주 유일의 고속도로인 평화로를 렌트한 경차로 엉금엉금 기어 집에 도착했다.

'아...... 정말 집에 왔구나...... 휴우......'


우리 집은 한라산 아래 첫 마을, 겨우 스무 가구 남짓한 작은 중산간 마을 어귀에 있다.

제주의 찌는 듯한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만큼 선선하고 습하지 않은 곳이지만 한겨울,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면 길이 얼어 가끔 고립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만일을 대비해 마트에 들러 며칠 동안 먹고도 남을 만큼 장을 보고, 비싼 제주의 LPG 가스 난방비를 아껴줄 펠릿도 다섯 포대나 사서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제주에 내려가 살 날을 꿈 꾸며 집을 지은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여전히 그 꿈은 꿈으로 남아있고 한국 직장인의 휴가라는 것이 그간 한 번도 일주일 이상 이 집에 머무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휴직이 시작되자마자 제주에서의 안식을 계획한 건 내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집은 이제껏 내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휴식을 선사한 적이 없다. 자주 갈 수 없기에 갈 때마다 고칠 곳, 손볼 곳 투성이었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면 눈 깜 박할 사이에 며칠은 그냥 사라져 버렸다.


오늘은 이 집에 밀린 빚을 받으러 온 냥, 더 이상은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동안 못한 휴식을 제대로 해 보겠다며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