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귀신이 온 것처럼 '휘잉~휘잉~' 무시무시한 바람소리에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 귀신이 눈을 무르팍만치 가져다 놓았다.
아파트에 살면 지붕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처음 여기서 잠들던 날 생경한 소리들에 잠을 설쳤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필 철로 만든 지붕을 얹어놓아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태풍이 오는 날이 되면 꼭 지붕이 날아갈 것처럼 무서운 소리가 난다. '탁! 탁! 휘잉! 끼익! 덜커덩!'
어디서 나는 지도 모르는 이상한 소리에 몇 번이나 깨어 나가 봤지만 다행히 지금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어젯밤 그 무서운 바람소리가 쌓아놓은 눈을 보니 과연 이 경차를 가지고 시내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볼 일이 있어 오늘 꼭 나가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구르다 차 안에서 스노우 체인을 발견했다.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설치하고 호기롭게 눈 길을 나섰는데 얼마 못가 무언가 '철컹!!', 앞에서 차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확인해 보니 왼쪽 바퀴 체인이 끊어졌고 그 때문에 차가 뒤뚱거리더니 옆으로 스윽 미끄러진다.
'하...... 정말 쉬운 게 없구나.'
내가 제주의 눈을 너무 우습게 봤지.
5년 전 딱 이맘때 폭설로 제주 공항이 3일 간 셧다운 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엄청 고생했었는데 사람의 기억은 이럴 때 보면 별로 쓸모가 없다.
견인차는 오늘 예약된 차만 벌써 40대라 올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통제된 1100 도로에 고립된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하니 근처에서 일하는 동생을 보내준단다. 그 동생은 사륜구동차가 있어 올 수 있을 거라고...... 멋지게 눈 위에 살포시 주차하는 그분을 보는데, 백마 탄 왕자도 이보다 반갑진 않았을 것 같다. 집에 오는 내내 제주에서 다시 살게 되면 꼭 사륜구동차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상처만 남긴 위험천만한 마실을 뒤로하고 다시 집.
거센 눈보라는 멈출 기미가 없다.
흩날리는 눈을 보다 문득 이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있게 되니 이러한 물음이 떠오른다.
'이것이 네가 원한 쉼 아니었니? 하루 종일 따뜻한 난로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는 것'
말로만 되뇌었을 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게 어쩌면 때론 이런 극약처방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이런 방법도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