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그릴라 >
'샹그릴라'는 원래 이 지역 명칭이 아닌, 제임스 힐턴의 <Lost Horizon>에 나오는 숨겨진 낙원의 이름이다. 그 소설과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샹그릴라'는 동양에 숨겨진 신비한 낙원, 이상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그 이미지와 어울리는 도시를 찾고 '샹그릴라화'하여 관광지로 개발한 것이 지금의 중뎬 지역, 바로 이 샹그릴라다.
중국에는 샹그릴라를 자처하는 다른 지역도 있지만, 그 어느 곳이든 스스로를 샹그릴라라 드러내어 지칭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숨겨진 이상향의 의미로서의 샹그릴라가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곳을 샹그릴라라 칭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감은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의 문제, 비자 연장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장기체류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비수기라 관광객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침대 두 개 딸린 1인실 숙박비도 저렴한 것 같았다. 12박 13일, 하루에 50위안(약 8500원). 길게 머무르기에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필요한 책도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느긋하게 지내며 여행 중의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고성 안쪽에 있는 숙박업소들 상당수는 휴업 상태다. 박물관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숙소에서도 관광객은 나 혼자다. 동티베트로 넘어오면서부터 거의 이런 분위기였다. 캉딩에서는 6인실 도미토리를 3박 4일 동안 혼자 썼었고, 신두챠오에서는 내가 묵었던 호텔 전체에 손님이 나 혼자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조용했고, 나는 그런 고즈넉함이 정말 좋았다.
중국 비자 만료를 하루 남겨두고 연장에 성공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히 다 해결됐다. 이제 또 한 달의 여유가 생겼다. 며칠 후 여권을 다시 찾으러 가면 끝!
숙소에 머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일정이 없는 여유로운 나날들, 신체의 나태함에서 오는 사색의 순간들. 여행을 하면 막상 이렇게 온전히 자신과만 마주하는 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여행이 장기화될수록 이렇게 푹 쉬면서 그동안의 기억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자유롭게 살고자 애써보지만 무엇에 대한 자유로움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유롭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지금 나는 여기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2018. 12. 14. Shangrila, China >
쌍둥이자리 유성우 사진을 찍기 위해 장비를 다 들고 밖을 나섰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허탕을 치고는 뜻하지 않게 밤산책만 하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소에 있는 마당도 나름 좋은 장소인 것 같아 거기에서 시도하는 중이다. 지금은 문 밖에 일주 사진 릴리즈를 눌러놓고 따뜻한 침대로 들어와 글을 쓰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여태껏 별 사진은 항상 캠핑을 할 때만 찍었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2018. 12. 21. Shangrila, China >
샹그릴라의 겨울밤. 서늘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공기다.
조용한 길거리를 방황하는 떠돌이개와 그 위로 내려앉은 달그림자.
동짓날 밤. 밝음보다는 어둠을, 빛보다는 그림자를, 삶보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는 달리 밖이 환하다. 게으름을 이겨내고 나와 커튼을 열어보니 눈이 내린다. 하얗게 변한 고성과 골목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마치 새로운 여행지에 온 느낌이다. 설레는 맘으로 며칠간 자주 갔던 단골이 된 음식점 난로 옆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우육면을 먹는다. 여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알 만한 아무런 장식도 없지만, 그저 눈이 내리니 바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12박 13일. 비수기의 관광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꽤 길게 가졌다. 아름다운 경치, 운치 있는 고즈넉한 두커종 고성을 여유롭게 즐기다 떠난다. 성수기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한 곳이라는 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비자는 연장 완료. 남쪽으로 산 하나만 넘어가면 그다음은 계속 고도가 낮아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리장으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