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경 Jun 01. 2020

<패왕별희-디 오리지널>

우리는 과연 역사속 개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런 영화가 있다. 보고 나서 한마디로 정리하고싶은데 도저히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감히 내가 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겁이나는. <패왕별희>가 내게는 그랬다. 처음 영화를 보 건 대학교 어느 교양수업에서였고, 얼마 전 확장판이 개봉했다 하여 다시 보고왔다.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 생각도 못 하다가...결국 오늘, 여유로운 업무 시간을 틈타 브런치를 열었다.


영화는 중일전쟁>국공내전>문화대혁명 등 역사 속 큰 사건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집중 하는 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각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이다.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주인공 뎨이(장국영 분)가 버림받은 이야기다.


1. 어머니

뎨이의 첫 번째 버림받음은 어머니로부터다. 유곽에서 육손이로 태어난 뎨이는 5~6살 즈음 어머니에 의해 경극학교에 맡겨진다. 선생이 뎨이를 보고 '육손이라 배우가 되기는 글렀다'고 하자, 그녀는 뎨이의 손가락을 꽁꽁 얼려 잘라버린다. 사실 이 장면은 초반 10분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후 서사의 대부분은 뎨이의 러브스토리로 이어지기에 관객들은 어머니의 존재를 잊어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감독(첸 카이거)은 마치 "진짜 중요한 건 이거야.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었어"라는 듯 뎨이의 깊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낸다. 스타 배우가 된 뎨이는 매일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불태운다. 아편에 취해 울부짖으며 어머니를 찾는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린시절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다.


2. 샬루

영화의 대부분은 뎨이와 샬루(장풍의 분)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샬루는 어린시절부터 뎨이에게 각별했다. 밤에 뎨이를 꼭 품고 자는가 하면, 그를 위해 기꺼이 벌을 받기도 한다. 샬루의 마음은 안타까운 동생을 돌봐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뎨이는 샬루를 사랑했다.


샬루와 뎨이가 연기한 경극 <패왕별희>는 전쟁에서 진 패왕과 그의 첩 우희의 이야기다. 샬루는 왕을, 뎨이는 우희를 연기한다. 경극 속에서 둘은 연인인 것. 샬루는 극이 끝나면 곧바로 현실로 돌아와 뎨이를 '불알친구'처럼 대하지만, 뎨이는 그렇지 않았다. 술집을 드나드는 샬루에게 토라지고, 샬루의 애인 주샨(공리 분)과 기싸움을 한다.


"너는 진짜 우희 해! 나는 가짜 패왕 할테니!"


극에서 못빠져나오는 뎨이에 신물이 난 샬루는 결국 화를 낸다. 이후 샬루와 주샨이 결혼 하게 되고, 뎨이는 처음 실연의 아픔을 맛본다. 사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동성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여기까지는 뎨이도 어떻게든 참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샬루의 배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샬루는 극단에 들이닥친 일본군과 크게 다투다 끌려가게 된다. 그가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뎨이가 아오키 대좌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뎨이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샬루의 결혼 후 데면데면하던 뎨이는 곧바로 옷을 챙겨입고 샬루를 구하러 떠난다. 그는 굴욕적인 노래를 일본군 앞에서 부르고, 샬루를 구해준다. 하지만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돌아오는 건 샬루의 모욕이었다.


"퉤!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게 사실이야?" (못돼 처먹음...)

샬루의 마지막 배신은, 문화대혁명 후 인민재판 때 일어난다. 일본군에게 꾸준히 경극을 선보인 극단은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하게 된다. 샬루와 뎨이는 홍위병들에게 잡혀 조리돌림을 당한다. 이때 샬루는 겁에 질려, 옆에 있던 뎨이를 고발하고 만다.


"뎨이는 일본군이고 깡패고 가리지 않고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또 아편도 했어요"


뎨이는 그런 샬루를 보며 세상을 다 잃은듯한 눈빛을 보인다. 샬루의 아내 주샨조차 "그러지 말라"며 치를 떤다. 샬루는 주샨까지 배신한다. "저 여자는 창녀에요. 술집에서 몸을 팔았죠" 샬루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 배신할 수 있는 사내였다.


3. 극단

어머니에게, 샬루에게 버림받아도 절대 뎨이를 버리지 않던 건 극단이었다. 경극은 뎨이가 노력하는만큼, 아니 그 이상의 보답을 주었다. 경극은 뎨이의 운명이었다.


문화 대혁명 이후 오래된 것은 모두 청산 대상이 된다. 경극도 그 중 하나였다. 극단은 이제 고급 향유예술인 경극일랑 하지말고, 새로운 시대의 정치극을 하자고 주장한다. 극단의 배우들은 점차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화를 내며 <패왕별희>를 지켰던 뎨이는, 결국 극단에서 버림받는다.


감독 첸 카이거는 문화 대혁명 세대다. 실제로 고리타분한 아버지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그 감정을 영화에 고스란히 녹였다. 뎨이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틀딱' '꼰대'의 전형이다. 감독은 그 꼰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뎨이를 보며 그 누구도 일면만 보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 틀딱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들 개개인의 역사를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뎨이는 오로지 할 줄 아는 것이 연기뿐이었고, 그것이 진실인 세상에 살아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힘과 권력이 아니었다. 오로지 내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작은 무대만 있으면 족했다.

그렇게 뎨이는 총 세번에 걸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뎨이는 샬루 앞에서 자살한다. 자살로 끝나는 영화의 대부분은 충격과 비탄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오히려 왜 편안함을 주는 걸까. 이 지독한 세상에서 떠나 뎨이가 그저 평온해졌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한 배우가 비슷한 캐릭터로 여러번 연기하면 지루함이 생긴다.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배우가 내게는 장국영이다. 아비정전-패왕별희-해피투게더 모두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항상 마음이 아릴까. 장국영이 살아 있었다면 보여주었을 수많은 작품들이 그리워진다.

작가의 이전글 시트콤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