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일일드라마도 아닌, 1990년대도 아닌, 2020년 tvN <사랑의 불시착>의 시청률이다. 드라마는 6%의 평이한 시청률로 출발해 매 회 상승을 기록하며 최종화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사실 극의 구조는 단순하다. 윤세리와 리정혁이라는 남녀 주인공과 그들을 가로막는 국경이라는 장애물. 위기를 극복하고 사랑을 달성하는 두 사람.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것이다. 이 뻔한 로맨스 스토리가 시청률 20%를 호가하며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손예진과 현빈의 상상초월 비주얼 케미스트리다)
“이거 완전 응팔아냐!?”
드라마를 보다 불현듯 저 말이 튀어나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사람들, 국가의 탄압, 모자란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정... 이 모든 것이 ‘1980년대’의 대한민국을 연상케 했다. '북한'이라는 과감하고도 신선한 설정으로 잘 숨겼지만, 사실은 레트로 타임슬립물과 다를 바 없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웬만한 복고는 모두 소비된 현재. 또 한 번의 복고는 사람들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북한이라는 장치가 영리하게 활용되며 마치 현대극인 양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기존 타임슬립 물에서 극복 요소로 여겨지던 ‘시간’이라는 요소가,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국경'으로 치환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개연성을 결정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감초 캐릭터다. 표치수(양경원 분)부터 박수찬(임철수 분)까지 어느 하나 ‘그냥’ 등장한 인물이 없었다. 표치수는 오늘날 보기 힘든 ‘의리파’ 캐릭터로 윤세리의 북한 생활 적응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박수찬은 지루할 수 있는 한국 내 전개에 ‘윤세리 생존’ 가능성을 주장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스토리 짜임새에 캐릭터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다음으로 좋았던 점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역전을 보여줬다는 것이다.(사실 이 요소는 최근 거의 대부분 드라마에 녹아들어 있다). 북한에서는 리정혁이 윤세리를, 한국에서는 윤세리가 리정혁을 보호한다. 장소적 특성을 이용해 신데렐라 스토리를 통쾌하게 역전한 것. 이 연출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쟤 언제 죽어?"
드라마 내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크게 집중해서 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악에 받친 건지 잘 이해가지 않았다. 자신을 신고하려던 절친(하석진 분) 살해하고 그 집안까지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캐릭터. 거대하다. 이 정도 캐릭터라면 주연으로 등장해 심리묘사까지 절절하게 구현해 냈어야 이해가 되는 정도다.
거기다 불로장생 약을 먹은 듯 절대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까지... 후반부에 그가 총에 맞고도 살아나는 부분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패러글라이딩으로 북한에 불시착한다’는 얼토당토않는 설정도 “드라마니까~”라며 넘겨온 내게, 그의 불사신적 면모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윤세리와 리정혁 사이 ‘위기’를 '남북 국경’ 자체로만 규정짓기에는 정치적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한 인물을 잡아 ‘절대 악’으로 설정한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가... 조철 강은 극 중반부까지만 장애 요소로 활용하고, 후반부에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위기감을 조성했으면 어떨까 한다. 마치 ‘사랑의 큐피드’처럼 리정혁과 윤세리를 이어 준 국정원의 역할은 없느니만 못했다.
여하튼! ‘사랑의 불시착’은 잘 만든 드라마임에는 명확하다.(마지막 화는 제외) 메인 러브라인부터 서브 러브라인, 조연까지 이렇게 모든 캐릭터가 사랑을 받은 적도 드물 것이다. 1년에 최소 두 편은 대박을 치는 스튜디오 드래곤...지금 주식을 사면 너무 늦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