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진 않겠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며칠 전에 idus에 책을 등록하는 게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들어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codelabor/22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하며 가졌던 좋은 기억, idus에서 선물을 구매하며 경험한 좋은 인상이 있어서였을까? 작가 입장에서는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idus의 정책과 기능에 의구심과 짜증이 요동치는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몇 차례 더 idus에 책을 등록하는 시도를 해봤다.
할 말은 많지만 일방적으로 idus를 비난하는 내용일 것 같아 담당자에게만 불편 사항을 전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필자가 대처한 방식과 생각의 변화에 대해 써보려 한다.
아무리 봐도 이 플랫폼은 기존의 온라인 서점이나 스마트 스토어와 같은 성격으로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높은 수수료 (낮은 듯 보이지만 배송료를 감안하면 온라인 서점보다 불리)
도서 정가제 정책이 시스템에 반영되어 있지 않음 (기획전 할인율 설정 시 도서 정가제 위반)
상세 정보 입력 기능이 도서 정보 입력에 부적합 (들여 쓰기가 중요한 위계 정보를 넣어야 하나 가운데 정렬)
도서 정보 특성상 입력할 텍스트가 많으나 작가 페이지가 앱 위주라 입력이 사실상 어려움
웹용 작가 페이지는 현재 베타 테스트 중 (불편한 온라인 서점 입력기보다 기능이 더 떨어짐)
배송료 (유료 멤버십 가입해야 무료 배송 적용)
적립 혜택 (온라인 서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적립률)
요컨대 작가 입장에서는 일반 온라인 서점보다 조건이 열악하니 등록할 이유가 없고, 독자 입장에서는 일반 온라인 서점보다 비싸니 살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결국 ISBN이 부여되는 출판물, 즉 일반 온라인 서점에 유통 가능한 책은 idus에 등록되더라도 작가도, 독자도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설마 그렇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렇다. 다방면으로 고려해봤지만 1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짜내어 idus의 장점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직접적인 도움은 거의 안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작가 스토어가 있다 (부자재 가격은 오픈 마켓이 유리할 수 있음, 단 한 곳에 모여있어 보기 편하다는 정도)
한진원클릭 (택배비는 편의점 택배 사업자 회원보다 비쌈, 단 수거해감)
무료 사진 촬영 (idus에서 사용 가능하나 idus에서 판매가 일어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
부연 설명을 하자면 작가가 포장재를 준비할 때 편리하도록 각종 부자재를 판매하는 스토어가 있는데 한 곳에 모여있어 살펴보긴 편하다. 하지만 사실 오픈 마켓에서 발품 팔면 더 좋은 조건에 내게 맞는 규격을 살 수 있다.
택배는 수거하는 것 말고는 오히려 비용은 더 비싸다. 제휴가 최소 3,000원인데 편의점 택배는 사업자 회원이면 최소 2900원에 이용 가능하다. 둘 다 무실적인 조건이다. 편의점이 집 주변에 있고 24시간 한다는 걸 감안하면 수거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편의점에 갖다 놓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무료 사진 촬영은 참 고마운 일이지만 idus에서 아무리 예쁜 사진을 올려놓은 들 위에서 언급한 배송료와 적립 혜택이 온라인 서점보다 불리해서 판매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빛 좋은 개살구?, 신포토? 암튼 그렇다.
만약 내가 독자라면 idus에서 예쁜 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게 ISBN을 부여받은 책이라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면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한다에 500원을 건다.
그래서 나는 idus를 결제가 되는 인스타그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등록한 책은 아래와 같다. 참고로 무료 사진 촬영은 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미리 캔버스 템플릿에 발라서 프리미엄 기능인가로 이미지로 도배한 케이스다. 왜냐면 텍스트 입력기가 위의 단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저히 도서 정보를 넣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본 텍스트 입력기가 95년 인터넷 초창기의 홈페이지 CGI 방명록 수준인데 현재 쓸만한 오픈소스 텍스트 입력기보다 못한 것을 '프리미엄' 기능이라고 하니 어이가 살짝 없을 수 있다. 하지만 idus가 칭하는 이름으로 말하자면 프리미엄 기능을 써서 텍스트는 도저히 불편해서 입력을 하지 못하고 쇼핑몰 상세 페이지 전단지 바르듯 이미지에 텍스트를 심어 내용 검색도 못하는 상세 페이지를 도배했다. 입력 과정에서 몇 번 작업한 게 날아가 다시 수십 장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업로드한 건 덤이다.
이렇게 등록한 게 과연 idus에서 노출이 되겠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출이 된다면 아마도 idus 독자가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하는 전단지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 idus 작가 안내에 보면 제품 이미지나 안내 등에 타 사이트 접속을 유도하는 정보를 넣지 마라고 가이드를 한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 타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하는 건 idus의 도서 제품에 대한 배송료, 적립 정책이 타 사이트보다 불리해서 그런 것이라 작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다. 왜? 할인폭은 도서 정가제를 준수해서 10%까지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결국 떠나는 독자는 작가가 호객하거나 떠밀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시장 환경 분석에 실패한 idus의 도서 판매 정책 때문이다.
idus 정책 중에 일정 금액 이하의 매출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앞의 단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idus에서 책을 팔면 온라인 서점보다 불리한데 만약에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책을 등록할 때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 선에서 매출이 발생하도록 재고량을 조절했다.
재고량 10개, 다 팔더라도 플랫폼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개수다. (결제 수수료는 발생함) 자, 여기까지 해두니 평화가 찾아온다. 입력 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와 짜증이 수반되지만 상세 페이지는 입력했고, 쉽게 노출되진 않지만 어렵게 검색하면 작품도 볼 수 있다. 혹시 재고가 다 팔리더라도 플랫폼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오, 천잰데? 하는 순간 잊은 게 떠 올랐다.
건 팔릴 때 얘기지.
아 맞다. 배송료.
플랫폼엔 타 사이트와 같은 배송료를 제시하라고 하니 2500원이 쓰여 있는데 실제 배송료는 3000원이다. 독자는 온라인 서점을 이용할 때보다 2500원을 더 부담해야 하고 작가는 표기된 것보다 500원을, 무료 배송이라면 온라인 서점에서는 내지 않아도 되는 배송료를 부담하게 된다.
이건 팔릴 수 없는 구조다.
사는 사람이 호구지.
미안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ISBN이 부여돼서 온라인 서점에 유통되는 책은 idus에서 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팔리지 않을 거다. 그래서 idus에 등록된 책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이미지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영리한 독자라면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하는 전단지로 활용할 테고 영리한 작가라면 왜 여기다 책을 올렸지? 라며 신기하게 볼 것이다.
왜냐면 텀블벅과 idus가 연결된다니 궁금했고, 작가 정책은 어떤지 궁금했고, 시스템은 어떻게 구현했나 궁금했고, 프로세스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냥 기획자 관점에서 궁금했고, 개발자 관점에서 궁금해서 이 과정을 겪은 것이지, 작가 관점에서, 독자 관점이었다면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스타그램 샵 기능을 활성화는 했지만 샵에서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는데 시작이 이 정도면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 충분히 많구나(?)라는 기대감에 idus 입점 후기를 마친다.
우선은 독립 출판물에게는 좋은 마켓이 되기를,
더 나가서는 ISBN 부여된 출판물에도 좋은 채널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아래는 도배한 이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