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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pr 21. 2023

야채값이 폭등했지만 월남쌈은 먹고 싶어

모두들 무병장수하세요 | [1] 에세이를 싫어하는 에세이

안녕, 브런치! 내적 반가움으로 그려보았어요


에세이를 좋아하시나요?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대상을 세 개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고심 끝에 고른 세 편의 에세이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야채값이 폭등했지만 월남쌈은 먹고 싶어' 같은 이름의 에세이를 피해 다니는 편입니다. 하지만 왜 제가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제대로 싫어하기 위해 한 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특정인을 싫어하는 악성 안티팬카페, 별 이유도 없이 서로의 정당을 물어뜯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 읽어보지도 않은 에세이를 싫어하는 제가 있습니다. 저는 무차별적 다독임을 어필하는 이름의 에세이들을 제 무차별적 불신과 짜증의 표출구로서 배척해 왔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기회에 한 권 사서 읽어보려 합니다. 야채값이 폭등했지만 월남쌈을 먹고 싶은 마음이 찡한 울림을 줄지, 반대로 월남쌈에 야채를 덜 넣고 먹는 사람이 될지 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용도의 변경 ]

반으로 잘린 까망 댕댕이의 엉덩이를 걸어두는 것으로 우리는 수납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효과적인 용도의 변경입니다. 이러한 용도 변경 사례는 생활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관 베란다에 상시 비치하는 싸이클링 자전거에는 음료 홀더가 두 개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나간 것이 삼 개월쯤 전이니까, 벌써 100일 동안 자전거는 텀블러 케이스로 용도가 변경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손이 잘 가지 않는 붙박이장 속 가방은 다 소진된 궐련형 전자담배 액상 쓰레기통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사용되고 남은 보도블록은 어떤 가정집의 양변기 등판 속에서 물값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자고 둔 노트북에서는 게임이 너무도 잘 돌아갑니다.


용도의 변경은 자전거의 의지가 아닙니다. 철 지난 유행 가방의 의지도 보도블록의 의지도 아닙니다.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입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역할을 요하는 물건을 요리조리 찾아다닐 때 적당한 대체제로써 눈에 띄면 용도 변경이 일어납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용도가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악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이용할 줄 압니다. 때문에 친구라는 용도명과 실제 사용처가 다른 경우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저의 용도는 무엇일지 한 번씩 짚어보는 것은 저 자신의 방어력을 높여주는 좋은 방책입니다.



[ 사랑의 완전성은 취약한 뱃살로부터 ]

고양이가 배를 보여주는 행위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에게 무언가의 어필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어필할 때에 어떤 방법을 쓰나요? 갈고닦은 18번 곡 부르기. 반팔을 한 단 접어 잘 부푼 삼두근 드러내기. 경제력을 티 낼 수 있는 자동차 키와 서브마리너 시계의 조합. 그 누구도 밀린 월세 내역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의 손을 잡아 술을 마시고 쏟은 본인의 토로 이끌지 않습니다. 전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새긴 타투를 피카츄 캐릭터로 덮은 흔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정말로 관대합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반년은 지나야 허락할 뱃살 흔들기 권리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양도합니다. 이리저리 복잡한 이유가 필요한 사람과는 다르게, 고양이들의 이유는 단순히 꽤 마음에 드는 인상이다, 목소리가 친절하다, 츄르가 있다 등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면의 마음은 사람도 츄르킬러들과 크게 다름이 없을지 몰라요. 모두들 자신의 취약한 부분까지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보여주는 축 쳐진 배를 양손으로 정성스레 만져줄 사람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한 사랑에 다가가기 위해 필수적인 그 취약점을 드러낼 용기는 쉽게 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 무엇이 긍지 높은 고양이들로 하여금 자존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걸까요?


츄르는 강력합니다. 누군가에게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을 때 주머니에 츄르를 하나 넣고 골목을 쏘다니세요. 단, 얼린 짜요짜요와 헷갈리는 일은 없어야만 하겠습니다.



[ 문장의 재능 ]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저주의 채찍을 내리치셨다. … 고혈압으로 쓰러져 구운 오징어 같이 뒤틀린 몸이 되었다. … 딸들은 임종 찬송을 불렀고 아들은 졸도하였다. 그때 나는 꿈을 꾸듯 두 천사가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종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문장은 우측 상단에 쓰인 대로 박용규 목사님의 문장입니다. 작품은 안국 근처 공중화장실의 소변기 위 패널 공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같은 내용도 재미있게 전하는 이런 익살스러운 묘사 능력을 ‘문장의 재능’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문장의 재능. 무엇보다도 으뜸인 능력입니다. 같은 마음이 아니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일부 종교의 일부 목사님들은 문장의 재능 하나만으로 교단을 설립하고 인생을 좌우할 만큼 커다란 요소인 신념을 처음 만난 사람들의 마음에 이식합니다. 문장의 재능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실이 사실이 아니게 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될 수도 있나 봅니다.

어쩌면 저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인 지식들 또한 자명이 아닌 누군가의 신념에 불과할 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음모론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통 속의 뇌’처럼 어떠한 방법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몇 음모론에는 흥미가 갔던 적이 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만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예전만큼 많은 흥미가 가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문장의 재능을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노력하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 까끌까끌한 표면의 자연 ]

하남 스타필드 젠틀 몬스터
리움 미술관 상설전 1층

8살 때 LA의 한인타운을 방문했습니다. 마이너스의 마이너스는 플러스. 외국에서 외국인 지역을 가니 저는 현지인이 되었습니다. 대신에 20년 정도의 시차는 느껴진 것만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LA 본토 제주흑돼지 전문점 옆에 위치한 빵상교 잡지가 널부러진 컨테이너 여행회사에서 버스를 예약해 그랜드 캐니언을 보러 갔습니다. 정말 거대한 광경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 8살짜리 아이가 더 작아진다고 느낄 정도로 커다란 바위들이 끝도 없이 나열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1km 아래에 1km 높이의 바위건물들이 들어선 도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km 상공에서 보았다면 그저 까끌까끌한 표면의 자연으로 보였겠죠. 혹은 다 갈라진 논바닥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까끌까끌한 형태의 자연은 신기합니다. 우리는 풍화 작용을 통해 암석의 모난 부분이 갈려 자갈이 되고 자갈이 모래가 된다고만 배웠지 반대로 솔방울 바위 또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무뎠습니다. 처음보다 지금이 더 무디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10년 뒤의 저는 덜 깎은 수염 같은 성격을 지닌 까끌까끌한 표면의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상공에서 본 그랜드 캐니언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끔 그렇게 변하는 친구들을 보게 됩니다. 나는 무뎌지기만 해야지. 하지만 저 또한 스스로도 모르게 까끌까끌해지지는 않았을까요? 일단 수염은 손이 닿을 때마다 깎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풍화작용은 바람뿐 아니라 220 볼트 전기로도 가능합니다.


[ 세상을 너무 모르는 테리 ]

세상을 너무 모르는 테리 사진입니다.

테리는 제시간에 캔을 따주지 않는 저를 보고 제가 세상을 아직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모두들 무병장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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