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보다 서울에서 촬영팀을 태운 버스가 자주 들락거리는 제주의 한 작은 시골 마을 안 경로당. 이곳이 나의 첫 근무지였다. 경로당의 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모든 인사를 핸드폰 하나로 해결하는 세상이 닫히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는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수업 중간 잠깐의 쉬는 시간이 생기면 경로당 회장님의 바다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역으로 회장님이 이 바다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위해 50분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마을 회장님의 이야기는 늘 바다로 시작해 바다로 끝이 난다.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지만 바다이야기를 하며 신이 난 어르신의 목소리에서 뭍에서 지낸 시절보다 바다에서 지낸 시절이 많았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생업을 이어가는 바다는 해가 비치는 바다의 물결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전복과 소라가 진줏빛을 그리며 밤하늘을 비행하는 생경한 이야기도 어르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타고 선명하게 그려졌다.
-예? 전복과 소라가 하늘을 난다고요!?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순간, 커다란 너울이 철썩 밀려들어왔다.
“1년이라도 빨리!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물에 들어가야 된다니까 예”
회장님의 목표는 하나. 나를 해녀로 만드는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 바다이야기는 어느새 직업양성 실무수업으로 변해갔다. 공기통을 매지 않고 맨 몸으로 자기의 숨으로만 바다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해녀의 길은 환상처럼 멀어졌다. 해녀가 되면 받게 되는 의료를 비롯한 혜택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은 엉뚱하게도 회장님의 소라이야기에 또다시 휘청거렸다.
"그럼~ 그렇고 말고요. 물에 익숙하지 않으면 소라를 품지 못해."
-예? 소라를 품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소라를 품어야지 그럼~ 초보는 한 손에 하나씩 딱 두 개 가지고 올라오거든. 상군해녀는 가슴에 소라를 여서 일곱 개까지 품을 수 이서(있어)~ 바다에 익숙하지 않으면 소라가 가슴에 딱 붙지를 안 하거든. 올라오면서 다 물에 흘러가버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