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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14. 2024

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

은혜

아침에 집을 나서는 건 다시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품고 떠나는 여정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필연적인 거라 여겼다. 누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결코.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 고기를 사고, 떡국떡을 준비하던 그 순간에도. 산뜻한 설날 밥상을 차려 오붓하게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둘러앉아 있던 그 순간에도. 커피를 마시고, 티브이에서 나오는 미운오리새끼를 보다가 추임새로 웃음소리를 넣어 느긋하게 보내던 오후 시간에도. 아버님의 목소리가 점점 소리가 쇠하여져 마음에 근심이 차오르던 그 순간마저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확인했다.


신정 모임 때 이미 한차례 드렸지만, 다시 설날 세배를 올리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을 누군가가 앞서 가며, 그 길을 예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우리 인생길을 그저 믿음 하나로 발걸음을 내딛고 사는 게 아니겠는가?


중앙선을 넘어 달려드는 차량을 보았다. 어느새 도로 위에 검푸른색과 흰색 차량 두 대가 멈추어 섰다. 흰색 차량이 검푸른색 자동차의 왼쪽 앞바퀴를 밟고, 문짝까지 다 훑고 지나가버렸다. 두 차는 주저앉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 펑하고 울려 퍼진 굉음 소리와 함께 그대로 얼음처럼 멈추어 서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났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는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이 호흡을 가쁘게 했다. 겨우 떨리는 손을 가슴 중앙 명치 위에 올려 진정시키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냉정한 판단과 행동이 따랐고, 눈앞에 경찰과 레커차가 두 대 서 있었다.  


렌터카를 타고 떨리는 핸들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 알았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는 것을.


집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던 세 마리의 반려견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우리가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더 우리를 기다려야만 했을지를.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우리가 먼저 달려드는 차를 보고 핸들을 틀 수 있었던 것도.

 1도의 차이만으로 운전석이 남아나지 못했을 텐데, 1도를 비켜가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그 은혜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천사가 보호한 그날의 그 순간에 감사한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기로 작정한다.


몸의 통증쯤이야 넉넉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치료받고 쉬라고 병원에 붙잡아두신 그 특별한 선물? 에도 감사하다.

딸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6일을 껌처럼 붙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내게는 유익이지 않겠는가?

처음 먹어보는 병원밥

다시 돌아갈 집이 있는 것 또한 은혜이고.

내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기다린다.


집을 좀 더 심플하고, 단정하게 관리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내가 돌아가지 못하는 그 어느 날 누군가가 내 뒷감당을 해야만 한다면.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자.

내게 더 간소하게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도 소중한 교훈으로 얻는다.

소박한 설날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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