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K(Third culture kid)로 살면서 받은 '부러움의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살면서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독서, 운동, 그리고 제2외국어라는 말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제 2,3 외국어 사용은 실제로 활용도도 굉장히 높고 한국의 경우에는 토익이나 기타 영어 성적은 취업의 기본일 정도로 취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일반인이 TCK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큰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운 것처럼 보여 일시적으로는 부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실상은 조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운다고?>
우선 당연한 것은 없다.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운다고 말하는 것은 개개인이 언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을 순식간에 무시해 버리는 말이다. 평생을 해외에 살아도 국제학교라는 버블 안에 살면 생존 현지 언어밖에 모르고 나라를 떠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몇 년 살지 않았지만 스스로 노력을 해서 언어를 많이 배우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성장기인 아이의 뇌는 스펀지라는데?>
맞는 말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Input이 들어가면 스펀지처럼 빨리빨리 습득하고 기억도 잘하는 것은 맞다. 실제로 언어는 만 14세가 되기 전에 배우면 큰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노력도 없이 언어가 절대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게 아니다. 언어가 자연스럽게 배워지길 기대하는 것은 과일나무 밑에 누워서 언젠가는 과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언젠가는 과일이 익어서 떨어지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해외에 3년 이상 거주한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는 재외국민 입시 학원에서 영어 선생님들이 수업시간 중 종종 하던 말이 있다.
"이걸 3년 전에 했어야지. 지금 와서 단어 외워봤자 무슨 소용이냐"
그 정도로 해외 살다 와도 기본적인 영어 실력이 구비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걸 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magical road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예쁜 과정이 아니다>
학교 졸업연사는 주로 기억에 안 남는 법이지만 국제학교 졸업식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한국인 선배가 자신이 이 학교에 처음 전학 온 날, 영어를 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로 졸업연사를 시작했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말에 완전히 다른 대답을 했던 시절을 유머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정말 하나도 예쁘지 않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창피하고 쑥스럽다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유아적이고 전혀 폼 없는 단계이다. 하지만 그런 단계가 낯설다고 물러서고 말을 안 하면 언어 실력은 절대로 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국제학교로 전학을 간다는 것을 알고 생긴 2주간은 영어 단어만 계속 외웠다. 가족들이 무섭다고 말할 정도로 몰입해서 영어 기사만 읽었다. 어차피 보내야 하는 학교 생활인데 영어 단어를 그때 그때 배우는 것보다 빨리 다 외우고 편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그 2주 생활로 밥벌이를 하고 산다고 생각한다. 가끔 사람들이 '너는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와서 영어를 잘하는구나~'하고 말하면 그게 전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나는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절대적으로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영어를 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나의 영어 실력은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낸 경우 많은 부모들이 "내 자녀는 TCK니까 '당연히' 다른 환경에도 빠르게 잘 적응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도 배우고 다문화적인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서 봤을 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계속 대화하고 싶어 하는 성격, 배우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언어도 빨리 빼운다. 배우고자 하면 고고해서는 안 된다.